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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Dec 30. 2023

  눈 오는 날


우리 집은 야산을 개발해서 택지를 만든 곳에 집을 지었다. 동네가 내려다 보이는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비가 많이 올 때는 집이 잠길까 봐 걱정이 없지만 오늘처럼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은 긴장을 해야 한다. 눈이 쌓이면 출근과 등교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겨울에는 일기예보를 체크하는 성실함을 보여야 한다. 눈이 온다고 하면 집 아래 입구에 차를 주차하고 올라와야 하는데 어제는 일기예보 체크를 깜박한 것이다.


"엄마, 눈이 많이 왔는데?"

아침에 아르바이트를 가야 하는 둘째 아들이 창문을 보면서 나에게 말했다.

"어제 일기예보에 눈 온다고 했니? 일요일 오전에 온다고 봤는데."

나는 서둘러서 옷을 입고 밖에 나가 눈이 얼마나 쌓였는지 체크했다.

"일단 더 쌓이기 전에 빨리 나가자."

처음 운전대를 잡고 도로 주행을 나갔던 때처럼 조심조심 언덕길을 내려갔다. 중간중간 차가 미끄러졌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고 길 끝까지 내려가서 큰 도로에 도착했다. 아들을 데려다주고 오는 중에도 눈은 계속 내렸다. 제설 작업이 무색하게 도로는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이고 있었다.


'눈을 쓸어야 하는데..'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쌓이는 눈을 보고 생각했다. 자동차를 집까지 끌고 오지 않고 집아래 길가에 주차를 했다.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맘껏 즐길 수 없는 현실 앞에 아쉬운 마음을 사진으로 남기면서 눈 내린 아침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왔다. 아이들은 아직 일어 난 기척이 없었다.


좋아했던 배우의 마지막소식이 나와 우리 가족에게도 표현하기 힘든 슬픔을 전해 주었다. 나는 다시 찾아온 무력감에 집안일을 미루고 시간을 보냈다. 눈길을 걷고 보니 계속 움직이고 싶어졌다. 일단 싱크대 정리로 시작한 청소를 냉장고 청소까지 끝을 냈다. 창 밖에 쌓이는 눈을 보면서 차를 한 잔 마셨다.


"아들아, 눈이 많이 온다. 언덕 아래 차를 세워 놓고 왔어. 며칠은 걸어서 내려가야 할 것 같아."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내려오는 큰 아들을 보면서 말했다.

"눈이 많이 쌓였네. 두껍아, 밥 먹고 눈 쓸자. "

커튼을 제치고 밖을 보면서 큰 아들이 딸에게 말했다.


"눈이 많이 쌓여서 힘들 텐데 그냥 밑에 세워놓고 며칠 걸어 다니자."

눈치울 복장을 갖추고 나가는 남매에게 말했다.

"날씨가 추워지면  얼어서 다니기 힘들어서..."

어디서 많이 들은 얘기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남편과 아들이 겹치는 지점이다.


고구마를 구워 놓고 밖으로 나갔다. 언덕길에서 남매가 눈을 치우는 건지 노는 건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도와주세요~~"

큰길을 지나가는 제설차를 향해서 들고 있던 빗자루를 흔들면서 딸이  장난처럼 소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잠시 후에 제설차가 언덕길을 향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제설차는 언덕길을 올라와 집 앞까지 눈을 치워 주고 내려갔다.


"진짜 두꺼비가 불러서 왔나? 이장님이 보냈나? 아니면 조리사님 네 아저씨가 말해줬나?"

우체부 아저씨부터 우리 집 사정을 잘 아시는 분들이 알게 모르게 도와주는 상황이라서 온갖 추측을 하면서 제설차를 존경스럽게 바라다봤다. 수많은 날 눈을 쓸었지만 처음 있는 일에 감동하면서 제설차를 향해 감사의 몸짓을 보냈다. 제설차가 언덕 아래까지 무사하게 도착하는 것을 보고  감사의 손짓과 인사를 멈췄다.


"우리 이사 왔을 때 저기에서 아빠가 눈썰매장 만들어줘서 놀았었는데."

눈이 오면 옆집 땅에 눈썰매 장을 만들어서 놀았던 기억을 아들이 말했다.

"아빠가 벽에 그린 그림이지. 나도 놀고 싶다."

그림 속에는 있지만 실제로는 태어나 지 않았던 막내가 아쉬워했다.

"작년에 우리 식구들 눈치 울 때 작은 오빠랑 나랑 눈싸움하다가 이거(넉가래) 휘둘러서 날아갔던 거 동영상에 다 찍혀 있어."

15년 전 눈썰매장의 추억이 생각나는 큰 아들과 작년 영상 속 눈 오는 날을 회상하는 딸의 마음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들은 여름이 시작되는 날에 아빠대신 창고에 있던  선풍기를 꺼내서 닦았다. 아빠의 부재와는 상관없이 무럭무럭 자라는 잔디밭을  정리하기 위해  예초기 들었다. 아빠와 공을 차고 놀았던 추억도 함께 했을 것이다. 가을과 함께 찾아온 뒷산의 참나무 잎은 데크는 물론 집 주변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낙엽을  쓸어 모아서 버리는 일도 아들의 몫이 되었다. 눈이 오면 새벽길을 여는 일도 아들이 맡아 주면서 계절이 지나가고 새로운 달력을 탁자 위에 올려놨다. 그렇게 2023년이 가고 있다.


눈은 많고 춥지는 않은 날은 눈싸움하기 좋은 날이다. 오늘이 그런 눈이 오는 날이었다.


2023년 아픈 기억으로
 힘들었던 모든 분들이
2024년 행복했던 추억으로
덮어쓰기 하면서
행복해 주길 간절하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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