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결정 직후에 해지라는 단어는 잠깐 기쁨을 주었다. 하지만 판결문을 받아서 전문을 분석하고 난 후에는 더욱 절망감을 느꼈다. 무지와 신뢰의 결과는 남편에게 가혹했고 그 어떤 제도도 남편을 보호해 주지 못했다.
항소를 하지 않아도 나와 딸은 1억에 가까운 돈을 출판사에 손해배상을 해야 했다. 10년 넘게 출판사로부터 받은 돈에 몇 배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 참 납득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해지된 계약서가 남편의 자식 같은 캐릭터의 완전한 자유를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남편이 있을 때는 어떤 상황이라도 끝까지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지만 판결 후의 내 마음은 '다 내려놓고 원점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항소를 고민할 것도 없이 반대편에서 먼저 항소장을 접수했다고 연락이 왔다. 예상은 했지만 상상외로 더 불쾌했다. 나에게 요구하는 금액은 더 인상이 되었고 해지를 취소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와의 계약도 그동안 나눠준 지분도 문제가 없다는 얘기로 들렸다. '너도 죽어봐라.' 하는 말로 전달이 되면서 내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그래 죽자고 덤비는데 죽자고 맞서줘야지. 살자고 도망갈 수가 없다.' 나는 그렇게 일어나야 했다.
10년도 채우지 못하고 더 이상 아빠라고 부를 수 없는 딸이 안쓰럽고 아이들이 아빠 얘기를 할 때 아빠가 보고 싶다는 딸에게 빚까지 넘겨줄 수는 없는 일이다. 훈훈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다음에 쓸 소설에서나 상상해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미래에 대한 욕심은 다 버리고 원점에서 시작하기 위해서 이 싸움은 끝을 내야만 한다는 마음으로 항소를 준비했다.
나는 시부모님 앞으로 들었던 보험을 조금 앞당겨 해지했고 엄마가 평생 쉬지 않고 모아서 유산처럼 주셨던 돈을 항소 비용으로 납부했다.
출판사와 싸우는 얘기를 브런치스토리에 쓰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살기 위한 내 마음을 쓰는 것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래서 재판 이야기도 당분간은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신문기사가 나왔다. 지인들에게 연락을 받고 서랍에 넣어놨던 글을 꺼내 본다.
하루종일 내리는 겨울비가 위로가 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