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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서 살아남기
고구마 캐기 반 흙놀이 반
by
앞니맘
Oct 1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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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고구마 이야기를 쓸 때만 해도 10월의 내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다. 올해는 고구마 심기를 이사장 스님께 부탁했다. 새벽마다 풀을 뽑아주면서 내가 지은 농사보다 훨씬 친환경으로 고구마를 키워 내셨다.
"애들하고 체험할 것은 몇 고랑 필요해요?"
"간식용까지 여섯 고랑이면 충분합니다."
"
열
고랑 줄 테니 주고 싶은 사람들도 나눠 주세요."
아침부터 완전 무장을 하고 출근을 했다. 기운 나는 영양제도 먹었다. 3월 이후로 체력이 많이 떨어져서 사실 조심스러웠다. 100미터 정도의 열 고랑은 사실 쉬운 작업은 아닌 것이다.
아침 운행을 마치고 고구마 박스, 장갑, 박스 테이프, 호미, 생수를 챙겨서 차에 실었다.
아이들이 오기 전에 밭에 가서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밭으로 먼저 출발을 했다.
7개월 만에 밭에 나왔다. 2월인가 3월에 과일나무에 유황을 주고 간 것이 마지막이었다.
멀리 아저씨가 쇠스랑을 가지고 열심히 고랑을 파고 계셨다. 아이들이 캐기 쉽도록 만들어 주시는 작업이다. 내가 혼자 해야 하는 것을 알고 조리사님 남편분이 기계까지 가지고 오셔서 일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오늘 이걸 다 캐실 수 있으시겠어요?"
"하는데 까지만 할 거예요. 덕분에 다 할 수
있겠는걸요."
"저쪽부터는 관리기로 파 놓을게요."
풀이 많이 섞인 끝 고랑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도착했고 장갑을 끼고 삽을 하나씩 들고 검은 비닐봉지를 휘날리며 '돌진'이라고 외치는 모습으로 고구마를 향해 달려왔다. 검은 봉지에 고구마를 먼저 담으면 본격적으로 흙놀이를 할 수 있다.
"원장님 조금만 캘 거예요."
"왜?"
"무거워요. 그리고 빨리 모래놀이 하려고요"
"저도요. 우리 집에
고구마 많아요."
"나는
가득이요. 우리
엄마가 많이 가져오래요."
아이들과 농작물 수확을 하다 보면 아이들 성격이 그대로 나온다.
♡고구마 하나하나에 흙을 털고 잔털을 떼서 담는 녀석
♡줄기체 봉지에 욱여넣는 녀석
♡작은 것만 고르는 녀석
♡ 큰 것만 넣는 녀석
♡봉지 가득 채우는 녀석
♡ 식구수만큼만 담는 녀석
♡ 아예 자기 봉지도 못 찾고 뛰어만 다니는 녀석 ♡계속 서서 지켜만 보는 녀석
♡ 누군가 해주기를 기다리는 녀석
♡고구마보다 벌레에만 집중하는 녀석
시끌 시끌 각자의 욕심대로 고구마를 담으면 담임 선생님의 검열을 받는다. 양이 너무 적거나 크기가 작은 경우, 고구마보다 흙이 많은 경우 학부모들의 민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대략 맞춰서 넣어 주어야 뒷 탈이 없다.
아이들의 땅파기 놀이가 시작되고 밭에는 꽤 깊은 구덩이가 여기저기 생길 때쯤 버스가 도착했다. 아쉬운 듯 삽을 바구니에 놓고 장갑을 벗으면서 말한다.
"오늘 진짜
재미있었다. 빨리 가서 엄마랑, 아빠랑, 동
생이랑 고구마 먹어야지."
"다음에 또 오면 좋겠다."
흙을 밟고 흙냄새를 맡으며 노는 모습은 참 편안하고 행복해 보인다. 마음 같아서는 맨발로 뛰어놀게 하고 싶은데 참았다. 이유는 너무나 많다. 오늘 하루도 우리 아이들이 행복했다면 그것이 최고의 교육이라고 믿는다.
매년 오는 밭인데 매번 즐거워한다.
매일 보는 아이들의 웃음도
매번 예쁜 것과 같은 마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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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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