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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Jan 10. 2024

마중


"원장 선생님 퇴근 안 하세요? 눈이 많이 온다고 하는데 내일 출근 못 하시는 거 아니에요?"

퇴근하는 교사들이 인사를 하면서 나를 걱정했다.

"그러게, 올해는 눈 오는 날이 많은 것 같네. 차를 집 아래다 세워 놓고 걸어가지 뭐. 빨리 퇴근해요."


방학 1주일을 보내고 출근을 해보니 제출기한이 지난 서류도 많고 할 일이 쌓여 있었다. 휴가라고 잠시 친정 다녀온 후에 쌓여 있는 집안일을 해결하는 기분이다. 이런 상황이 싫어서 방학 동안에도 집을 떠나는 것을 싫어했다. 다녀와서 보면 보일러나 수도가 얼거나 주방이 엉망이 빨래는 쌓여 있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다 보면 휴가에서 충전한 에너지 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일이 쌓일 때 쌓이더라도 잠시 잊고  떠나 온 시간을 즐기려고 노력한다. 제때 못하면 큰일이라도 닥칠까 봐 스스로를 다그치면서 보낸 시간들이 나를 얼마나 고단하게 만들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누구 때문이 아니었고 내 마음과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살아온 내 탓이다. 그렇게 고단하고 힘들게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 더 솔직한 마음일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교육청에 보낼 서류를 미룰 수가 없었다.


급한 일을 마무리하고 보니 9시가 넘었다. 책상 위를 주섬주섬 치우고 밖으로 나왔다.

"엄마 언제 와."

"지금 출발할 거야."

하늘을 보니 눈발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했다. 자동차 시동을 걸 라이트를 켜고 보는 하늘은 눈이 더 선명하게 보이면서 눈송이의 크기도 커지고 있었다.


아들에게 마중을 나오라고 해야 할지 말지를 망설이다 보니  집아래까지 도착했다.  '귀찮게 뭘 부르나. 그냥 올라가 보자' 걸어가면서 들을 음악을 찾아서 플레이를 누르고 차에서 내렸다.


아침잠이 많은 남편이었지만 겨울이 되면 출근 전에 일어나서 내 차에 성애를 제거하고 시동을 걸어줬다. 눈이 오는 날은 더 바빴다.

"눈 쓸어 놨으니까 차 가지고 집까지 올라와도 될 거야."

"눈을 못 쓸었으니까 아래다 차 세워 놓고 전화해."

지나고 나니 참 고마운 일인데 가족이라서 고마운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것이 후회로 남는다.

 

"어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이 나를

'어무니'라고 부르면서 언덕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미끄럼을 타면서 내려오는 아들놈의 모습즐겁다.

"조심해~ 미끄러져. 혼자 갈 수 있는데 뭐 하러 나와."

"멧돼지가 엄마 보고 놀라까 봐."

"저! 이 씨"

남편이 귀찮으면 가끔  아들을 보냈는데 오늘은 아들이 스스로 나왔다. '고맙다.'는 말대신 '저~이 씨 '라고 핀잔을 했다. '나라는  사람 참~~~'


"아들도 남편도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눈이 무릎까지 덮게 내리던 그 겨울밤
동네 아줌마들과  놀다 오던 마누라를
숲 속길 입구에서 기다려 주던 사람,
우산과 패딩으로 나를 감싸주던 남편은
오늘 눈이 되어서 내 어깨를 감싸고
유쾌한 아들을 보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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