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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May 18. 2024

결국, 가족인 건가?


밥때가 되면 '오늘은 뭐 하고 먹나?' 엄마는 큰 바구니를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를 바구니에 가득 담아왔다. 이 모습은 봄부터 가을까지 반복됐다.

"엄마, 오늘 저녁은 뭐야?"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엄마의 바구니를 들여다보았다.

"오이랑 부추랑 호박이랑, 호박잎도 있고 고추도 있고."

오이 하나를 들어서 입에 물고 부엌으로 들어가는 엄마를 따라갔다.

"나 호박잎 먹고 싶었는데 많이 해."     

나는 마루에 앉아서 엄마가 따온 호박잎의 껍질을 깠다.

"호박잎 가져와."

밥 냄새가 솔솔 날 때쯤 엄마가 나를 불렀다. 후다닥 샘으로 달려가서 후르르 대충 씻은 호박잎을 엄마에게 전달했다. 엄마는 눈물을 흘리는 무쇠솥을 열고 밥 옆으로 호박잎을 재빠르게 집어넣고 솥뚜껑을 닫았다. 논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가 우렁이를 꺼내 놓으셨다. 우린 다 같이 앉아서 우렁이 속을 꺼냈다. 남동생은 하얀색 소금 같은 알을 가지고 놀았다. 호박 된장찌개가 우렁된장찌개로 변신했다. 오늘 밥상 메뉴는 우렁된장찌개, 호박잎쌈, 열무 겉절이, 오이, 새우젓 무침, 빨간 생고추가 들어가서 초록색과 빨간색이 어우러져 더 먹음직스러운 호박볶음이 차려졌다.     

"우렁이 맛있어."

된장 덩어리와 우렁이 사이를 오가며 뒤적이는 나에게 아빠가 우렁이를 찾아줬다. 나는 유난히 우렁이나 동태 눈깔 같은 걸 좋아했다.

"엄마는 요술쟁이 같아."

"요술쟁이?"

"밖에 나갔다가 오면 반찬이 막 생기잖아." 

    

그렇다. 우리 엄마는 요술쟁이가 맞다. 엄마는 평생 밥상만 요술을 부린 것이 아니라 우리를 키워내느라 끊임없이 요술을 부렸다. 자고 일어나면 학교 행사에 필요한 의상과 소품이 만들어져 있었고 없었던 보충 학습비가 마련되어 있었다. 새벽 첫차로 공장에 출근했던 엄마가 학교에서 돌아와 보면 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그렇게 요술을 부린 덕에 우리 4남매는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의 삶을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다.

 

엄마의 생신과 어버이날 맞이해서 그동안 받기만 했던 밥상을 제대로 차려보기로 했다. 남편의 사고를 시작으로 폭우에 집이 무너지고 지난 1년은 엄마의 몸과 마음도 상처투성이였다.

"더 연세 들기 전에 엄마 모시고 좋은 데 가서 생일파티 하자."

동생이 제안했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겹쳤다.

4남매가 매월 모으는 회비가 있어서 돈 걱정은 없었다.

"너무 멀면 엄마 힘드니까 이동이 적당한 곳으로 물색해 줘."

우리들의 의견을 모아서 총무를 맡고 있는 막내와 올케가 여행 준비시작. 생일파티 장소는 이모님들도 가깝게 사는 제부도와 대부도로 결정되었다. 


12시가 되자 흩어졌던 가족들이 예약한 식당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몇 시에 출발했어? 오는 길은 안 밀렸어? 그 사이에 키가 컸네."

셋째 이모 막내 이모까지 서로를 맞이하며 인사를 했다.

"4남매 식구 다 모인 거니?"

막내 이모부가 두 곳으로 나눠 앉은 식탁을 보면서 물었다.

"아니요. 우리 집 아들 둘이랑 언니네 둘째가 빠졌어요."

"다 모이면 많겠다."

아들 하나에 손자 하나뿐인 막내 이모부는 4남매가 엮어 온 가족이 많다고 느끼셨을 것이다.

"큰 이모네는 6남매라 다 모이면 우리는 깨갱인데?"

큰 이모부터 막내 이모네 손자들까지 모두 모이면 60명 정도가 된다. 꼭 한 번 다 같이 모여서 밥 먹고 체육대회도 해보자는 계획도 세워봤다. 


나와 동생 부부는 이모들 테이블에 앉았다. 이모부 고향 근처에서 근무하는 동생이 이모부 초등학교가 없어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요즘, 애들이 없어서 큰일. 너희들은 괜찮니?"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 때문에 자연스럽게 '출산 문제'가 화두가 되었다. 그리고 각자 손주들 자랑으로 얘기가 넘어가고 점심 식사 시간은 즐거웠다.  

   

"다음 코스는 해상케이블카 타고 바다 위를 건널 거예요."

막내가 준비한 계획에 따라 케이블카를 타는 곳으로 이동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타고 엄마와 동생 부부, 이모들은 나와 같이 합승했다. 서로 사진을 찍어 주면서 '길게 찍어라. 작게 찍어라.' 이모들의 주문이 까다로웠다. 70이 넘어서 80이 가까운 나이에도 사진 속에 내 다리는 길고 얼굴은 작아야 만족감이 크다.

'쭈글쭈글해서 사진 찍기 싫다.'라고 말해놓고 하나! ! 하면 이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참나. 들이란.'     


바닷가를 걷다가 힘들면 카페에서 커피 케이크를 먹었다. 이모들의 수다에 맞장구를 쳤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원하는 놀이와 산책을 했다. 어른들은 유자차와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젊은이들은 아이스크림과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세월 따라 취향은 달랐지만, 비슷한 외모와 목소리가 가족이라고 증명해 주고 있었다. 이모들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는 앉으나 걷거나 이어졌다. 먹다가도 자면서도 계속되었다.     


50평짜리 한옥 펜션에 도착했다. 다락방이 있어서 아이들은 모두 그곳이 좋다고 올라갔다.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가 고생 많았네."

고기부터 밑반찬, 술까지 챙겨 온 짐을 풀면서 나와 동생이 올케에게 말했다.

"아녜요. 제 맘대로 샀어요."

생수병에 정갈하게 담아 온 쌀과 작은 약병에 꼼꼼하게 넣어온 소스들을 보면서 깔끔하고 야무진 올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람을 배려한 식사 준비에 우리는 만족하고 고마웠다.     


남자 동생들이 불을 피웠고 제부와 큰아들은 아이들과 마당에서 공놀이, 줄넘기, 배드민턴을 치면서 놀았다. 엄마와 이모들은 거실에서 본인들만 아는 주변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릴 적 우리 집의 저녁 풍경 속에 있는 거 같았다.     

"무슨 할 말이 저리 많은지 얘기가 샘솟아."

쌀을 씻던 동생이 이모들의 수다를 신기해했다.

"살아온 만큼 이야깃거리가 쌓이잖아. 거기다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너랑 나랑도 얼마 안 남았다."

20년 후에 동생과 내 모습을 상상했다.

"올케, 나중에 우리가 한 얘기 또 하면 계속 듣지 말고 잘라줘. 우리는 상처 안 받으니까."

""

올케의 단호한 대답에 우리도 한바탕 웃었다.

오늘 귀에서 피날 것 같다.”

모두 내 말에도 동의했다.

    

바비큐장에 차려진 상은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 등심과 회가 전부였다. 엄마가 우리를 위해 차렸던 상차림과는 비교 안 되는 수고로 상을 차렸다.

"고기도 맛있고 심지어 밥까지 잘했어. 언니 때문에 우리까지 호강한다. 얘들아 고맙다."

셋째 이모의 칭찬에 우리는' 아니다.'라고, 반복해서 예의를 갖춰야 했다.

'누가 있었다면 누구도 왔으면.'아쉬움만 빼면 행복한 저녁 밥상이었다.

    

"2부는 제가 사회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동생이 마이크를 잡았다. 50이 넘는 교감 선생님이 아니라 노인복지관 오락 강사로 변신했다.

나이 순서대로 노래 한 곡씩 부르기 시작했다. 나와 동생들은 어린 시절 이모들 앞에서 재롱떨고 용돈 받던 시절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10살짜리 조카 공연이 끝날 때까지 탬버린과 손뼉을 부서지라 쳤다. 우리 남매들은 그날 밤 온몸을 던졌다.  

   

아침 일찍부터 다시 시작된 이모들의 수다와 비바람 소리에 눈을 떴다.

"저 낙숫물 모아서 빨래하면 때가 진짜 잘 지는데."

댓돌에 떨어지는 빗물을 보면서 이모의 입에서 나온 말에 빵 터지고 말았다.

"빨래라니? 모닝커피가 아니고? 나는 텃밭에 심은 상추랑 고추 잘 살겠다고 생각했는데."

뭐야. 이모나 누나나 똑같네     

빨래와 상추 타령을 하는 사이, 미역국 냄새가 식욕을 돋았다. 당일 생일이었던 제부와 엄마의 생신상이 함께 차려졌다. 빗소리를 뚫고 생일 축하 노래가 울려 퍼졌다.    

 

태어난 시대가 달랐고 공유할 이야기는 달랐지만 함께 먹은 밥의 횟수만큼 이해하고 배려했다. 부모라는 이름표를 달고 가족을 위한 밥 한 끼를 책임지기 위해 살아왔다는 점에서 우리는 동지다.


"다음에는 60명 모일 수 있는 곳 잡아서 또 봐요."     


결국, 밥 한 끼 타령은 가족이란 말인가? 김치 하나를 놓고라도 혼자서 편안하게 밥을 먹는 것이 소원이었던 때도 있었다. 다 경험해 보고 나니 정성으로 차리고 그 정성을 먹어준 가족과의 한 끼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다.     


오랜만에 둘째까지 네 식구, 완전체가 모였다. 냉동실과 텃밭을 뒤져서 정성껏 밥상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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