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고추장 김자반은 어디 갔을까?

by 앞니맘


'엄마~ 할머니~ 학교 다녀왔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왔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부엌으로 들어가서 뒷문을 열고 뒤뜰로 갔다. 외양간에 소가 없는 걸 보니 밭이나 논에 일하러 간 것이 분명했다. 출출한데 뭐 없나? 주변을 살펴봤다. 장독대 옆, 딸기밭으로 갔다. 빨갛게 익으려고 폼을 잡으면 바로바로 따먹어 먹을 만한 딸기가 없다. 윗동네 미경이네 집처럼 딸기 농사를 지으면 좋겠다. 덜 익은 딸기 몇 개를 손에 들고 밭에서 나왔다. 장독대 위에 광주리가 내 눈에 들어왔다. 광주리 안에는 햇빛을 받아서 쪼그라들고 있는 고추장 바른 김이 보였다.

"김자반이네."


"누나들, 김자반 기억 안 나? 나는 어릴 때 먹은 반찬 중에 그게 젤 맛있었어."

막내가 기억하는 추억의 음식은 김자반이라고 말했다.

"나도 그거 임신하고 먹고 싶어서 해 먹었어. 그런데 그 맛이 안 나."

내 말에 동생은 김자반 얘기를 시작했다.

"몰래 먹어야 그 맛이 나지."

동생 말에 우리 형제들은 맞장구를 쳤다.

"학교 갔다 와서 아무도 없으면 할머니가 장독 안에 숨겨둔 김자반 찾아서 한 장씩 꺼내 먹었다."

초등학교 1학년으로 돌아간 동생은 생각만 해도 재밌었다는 표정으로 40년 전 비밀을 털어놓았다.

"너도 그랬어? 나도 그랬는데. 소금 독 안에 노가리도 있었다."

우리들 모두가 그 시절로 돌아가 소금 독을 들려다 보고 있었다.


"하루는 아빠가 술안주 찾으니까, 할머니가 김자반을 꺼내러 간 거야. 그런데 김자반이 하나도 없다고 난리가 났어. 알지? 우리 할머니 숫자에 철저한 거."

할머니는 김 한 톳으로 며칠을 먹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숫자를 세어 가며 나눠주는 분이셨다. 김자반을 만들고 몇 번 먹지 않았는데 없어졌으니 도둑이 들었다고 말씀하셨다.

"그 뒤로 김자반을 장독이 아니라 실겅으로 옮겼잖아. 그러고 보니 여기에 도둑들 다 모였네."

우리는 김자반을 만들어서 팔면 대박 날 거라고 사업계획을 세우며 즐거웠다.

그때는 사람들이 참 좋았다. 부족하게 살았어도 남에 집에 있는 것을 함부로 손대지 않았다. 대문은 항상 열어놓고 다녔고 장독대에 간장, 고추장, 김치 다 내놓고 먹어도 누군가 나쁜 짓을 할까 봐 걱정하지 않았다.


입덧하면서 엄마가 만들어 준 김자반을 먹고 싶었다.

"엄마, 요즘은 김자반 안 만들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했다.

"김에 지름도 다 발라서 파는디, 무슨 김자반을 만들어. 그건 말리기가 고약해."

뜬금없는 김자반 타령에 만난 거 많은데 그런 걸 왜 찾느냐고 엄마가 말했다.

"옛날 음식이 땡겨. 만드는 법 알려줘."

나는 엄마의 레시피를 받아서 김자반을 만들었다. 파래를 좋아해서 파래가 많이 섞인 김을 샀다. 갖은양념을 한 고추장에 부추를 썰어 넣었다. 숟가락으로 양념을 떠서 김 위에 발랐다. 다 바른 김을 대나무 채반 위에 옮겼다. 장독대 대신 해가 잘 드는 베란다 빨래 건조대 위에 채반을 옮겼다. 며칠 지나고 나니 김이 꾸덕꾸덕하게 말랐다.

쌀밥을 찬물에 말아 한 입 넣고 김자반을 찢어서 입에 넣었다. 부추 맛과 함께 매콤달콤한 맛이 입맛을 돋게 했다. 장독대 위에서 맑은 공기와 바람이 말려준 그 맛은 아니었지만, 도둑들이 들끓을 만한 맛이었다.


주택에 살고 있지만 황사와 미세먼지로 실외에서 건조하는 음식은 만들기가 어렵다. 마당과 담, 지붕 위에 무엇이든 마음대로 건조해서 먹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다시 만날 수 없는 그 시절의 공기와 바람이라서 더 그립고 소중하다. 빨래건조기부터 고추, 무말랭이, 호박꽂이, 과일 건조기까지 그 시절의 햇빛과 바람을 대신하고 있다. 위생에 집중하다 보니 깨끗한 환경을 잃고 말았다.


지나고 보니 사람도 환경도 많이 변했다. 장독대는 집 안으로 들어왔다가 김치냉장고로 옮겼고 바람을 마시며 달리던 입은 마스크로 가렸다.


먼지가 묻어도 한 번은 괜찮겠지?' 텃밭에 부추를 잘라 왔다. 공장을 해도 될 맛이 나오는지 두 장만 만들기로 했다. 해가 잘 드는 2층 데크에서 말려야겠다. 송홧가루 김자반이 될 수도 있다.


말로만 환경 걱정이지 사실 환경을 위해서 하는 일이 없다. 일회용 컵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정도다. 세제도 쓰고 비닐 팩도 습관적으로 쓴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으로 이어가지 못한다. 그게 내 한계다. 환경 관련 적금 통장이라도 만들겠다는 계획은 꼭 실천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