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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May 11. 2024

그 많던 고추장 김자반은 어디 갔을까?


'엄마~ 할머니~ 학교 다녀왔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왔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부엌으로 들어가서 '삐그덕'  문을 열고 뒷 뜰로 갔다. 외양간에 소가 없는 걸 보니 밭이나 논에 일하러 간 것이 분명했다. '출출한데 없나?' 주변을 살펴보았다. 장독대 옆, 딸기 밭으로 갔다. 빨갛게 익으려고 폼을 잡으면 바로바로 따먹어서 먹을 만한 딸기가 없었다. '윗동네 미경이네 집처럼  딸기 농사를 지으면 좋겠다.' 덜 익은 딸기 몇 개를 손에 들고 밭에서 나왔다. 장독대 위에 광주리가 내 눈에 들어왔다. 광주리 안에는 햇빛을 받아서 쪼그라들고 있는 고추장 바른 김이 보였다.

"김자반이네."


"누나들 김자반 기억 안 나? 나는 어릴 때 먹은 반찬 중에 그게 젤 맛있었어."

막내가 기억하는 추억의 음식은 김자반이라고 말했다.

"나도 그거 임신하고 먹고 싶어서 해 먹었어. 그런데 그 맛이 안나."

나의 말에 동생은 김자반 얘기를 시작했다.

"몰래 먹어야 그 맛이 나지."

동생의 말에 우리 형제들은 '맞다. 맞다.' 손뼉을 쳤다.

"학교 갔다 와서 아무도 없으면 할머니가 장독 안에 숨겨둔 김자반 찾아서 한 장씩 꺼내 먹었다."

초등학교 1학년으로 돌아간 동생은 생각만 해도 재미있었다는 표정으로 40년 전 비밀을 털어놓았다.

"너도 그랬어? 나도 그랬는데. 소금독 안에는 노가리도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가 그 시절로 돌아가서 맞장구를 쳤다.


"하루는 아빠가 술안주 필요 하다고  하니까, 할머니가 김자반을 꺼내러 간 거야. 그런데 김이 하나도 없다고 난리가 났어. 알지? 우리 할머니 숫자에 철저한 거."

할머니는 김 한 톳으로 며칠을 먹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숫자를 세가면서 나눠주는 분이셨다. 김자반을 만들고 몇 번 먹지 않았는데 없어졌으니 도둑이 들었다고 말씀하셨다.

"그 뒤로 김자반을 장독이 아니라 실겅으로 옮겼잖아. 그러고 보니 여기에 도둑들 다 모였네."    

우리는 김자반을 만들어서 팔면 대박 날 거라고 사업계획을 세우며 즐거웠다.


그때는 사람들이 참 좋았다. 부족하게 살았어도 남에 집에 있는 것을 함부로 손대지 않았다. 대문은 항상 열어놓고 다녔고  장독대에 간장, 고추장, 김치 다 내놓고 먹어도 누군가 나쁜 짓을 할까 봐 걱정하지 않았다.


입덧을 하면서 엄마가 만들어 준  김자반이 먹고 싶었다.

"엄마, 요즘은 김자반 안 만들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했다.

"김에 지름도 다 발라서 파는디, 무슨 김자반을 만들어. 그건 말리기가 고약해."

뜬금없는 김자반타령에 만난 거 많은데 그런 걸 왜 찾느냐고 엄마가 말했다.

"옛날 음식이 땡겨. 만드는 법 알려줘."

나는 엄마의 레시피를 받아서 김자반을 만들었다. 파래를 좋아해서 파래가 많이 섞인 김을 샀다. 갖은양념을 한 고추장에 부추를 썰어 넣었다.  숟가락으로 양념을 떠서 김 위에 발랐다. 다 바른 김을 대나무 채반 위에 옮겼다. 장독대 대신 해가 잘 드는 베란다 빨래 건조대 위에 채반을 옮겼다. 며칠 지나고 나니 김이 꾸덕꾸덕하게 말랐다.

  

쌀밥을 찬물에 말아서 한 입 넣고  김자반을 찢어서 입에 넣었다. 부추맛과 함께 매콤 달콤한 맛이 입맛을 돋게 만들었다. 장독대 위에서 맑은 공기와 바람이 말려준 그 맛은  아니었지만 도둑들이 들끓을 만한 맛이었다.


주택에 살고 있지만 황사와 미세먼지로 실외에서 건조하는 음식을 만들기가 어렵다. 마당과 담, 지붕 위에 무엇이던 마음대로 건조해서 먹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다시 만날 수 없는 그 시절의 공기와 바람이라서 더 그립고 소중하다. 빨래건조기부터 고추, 무말랭이, 호박꽂이, 과일 건조기까지 그 시절의 햇빛과 바람을 대신하고 있다. 위생에 집중하다 보니 깨끗한 환경을 잃고 말았다.


말로만 환경 걱정이지 사실 환경을 위해서 하는 일이 없다. 1회용 컵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정도다. 세제도 쓰고 비닐팩도 습관적으로 쓴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실천으로 이어가지 못한다. 그게 내 한계다.  환경 관련 적금 통장이라도 만들겠다는 계획은 꼭 실천하하려고 한다.


지나고 보니 사람도 환경도 많이 변했다. 장독대는 집안으로 들어왔다가 김치냉장고로 옮겼고 바람을 마시며 달리던 입은 마스크로 가렸다.


'먼지가 묻어도 한 번은 괜찮지 않을까?' 텃밭에서 부추를 잘라왔다. 공장을 해도 될 맛이 나오는지 두 장만 만들기로 했다.  해가 잘 드는 2층 데크에서 말려야겠다. 송홧가루 김자반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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