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하다 보니 김치와 국수 이야기가 많았다.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가난해도 집마다 김치는 있었고 밀가루가 쌀보다 저렴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쌀을 아끼기 위해 하루 한 끼는 분식을 하고 죽을 끓여서 먹었다. 된장을 풀어놓은 큰 가마솥에 싸리기와 아욱을 넣어 아욱죽을 끓였다. 커다란 나무 주걱을 두 손으로 잡고 저어 가며 끓이던 할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욱죽 끓였다고 드셔 보시래요."
이웃집 아주머니께 죽을 가져갔다.
"아이고야. 맛나겄네. 잠깐 기다려봐."
부리나케 그릇을 비워서 들고 나오시는 죽그릇 속에는 사탕이 들어 있기도 하고 자식들이 사다 준 귀한 과일을 넣어 주기도 했다. 음식을 이웃과 나누던 할머니 큰손을 보며 우리 집은 부자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많아서 나눈 것이 아니라 오히려 먹을 것이 귀했기 때문에 나누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음식을 나누고 담아간 그릇을 빈 접시로 보내지 않았던 시절이 그립다고 하면 진정성에 의심을 받을까? 주지도 받지도 않는 시대, 주려면 명품 가방 정도 내밀어야 하고 금액을 정해 놓고 마음을 전하는 이 시대가 나와 안 맞는지도 모르겠다.
불행하고 딱한 삶이라는 감정을 끌어안고 지냈다. 연재를 시작으로 떠난 추억여행,
'밥 한번 먹자.'는 행복한 기운을 다시 찾아오는 시간이었다. 실제사건이나 원래 느꼈던 맛이 희미했지만 행복한 감정은 또렷하게 남아서 나를 안아 주었다. 과거를 떠올리면서 잃어버렸던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돌아가신 할머니와 아빠 귀가 간지러웠을 것이다. 사랑받고 당당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시간이 되었다.
"연재가 부담스럽지 않니?
글을 쓰는 일이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될까 봐 걱정스럽게 친구가 물었다.
"스트레스는 있는데 쓰다 보면 좋아. 하다가 힘들면 그만두지 뭐."
15회가 목표였지만 글을 쓰면서 나는 행복했다. 내 아픈 상처가치유되길 바라주고 공감과 응원을 아끼지 않은 많은 분들이 있어서 매주 즐겁게 연재를 할 수 있었다. '글 쓰는 작업은 나에게 감사를 가르쳤다.'
가장 큰 행복은 이 글을 공감해 줬던 작가님들이다. 내 필력과 상관없이 훌륭하신 작가님들이 진심 가득한 '응원과 댓글', '구독과 좋아요.'를 아끼지 않고 표현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다 함께 밥 한번 먹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