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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May 04. 2024

우리 집 맷돌에는 어이가 있었다.


농사짓는 땅 몇 마지기 소유하고 있는지가  부의 기준이 되었고  벼를 몇 섬 했고 쌀이 몇 가마니 나왔는지가 그 집의 경제 사정이었다.  농사가 수입의 전부였던 우리 집도  돈이었다. 그러니 쌀을 아끼는 것은 돈을 아끼는 일과 같았다.  할머니는 참 지혜롭게 가정경제를 꾸렸다. 교에 다니는 나는 도시락을 싸갔지만 어른들은 하루에 한 끼는  분식이나 죽을 끓여 먹었다.

 그때는 쌀을 아끼기 위해서  먹는다는 것을  몰랐다.  나는 할머니가 해주는 특별한 밀가루 음식 좋다.


"언니, 아침은 제대로 먹고 다녀?"

동생에게  안부전화가 왔다.

"막내 밥을 해줘야 해서 아침은 꼭 하는데 나는 그냥 갈 때가 많아."

아침밥을 차려 주고 출근준비를 하는 나는 딸과 함께 아침을 먹지 못하고 나갈 때가 많다.

"우리는 두유 제조기 사서 마시고 출근하는데 든든해서 좋더라. 언니도 굶지 말고 그거라도 해서 먹어."

전화를 끊고 두유제조기를 찾아보았다.  이미 판매를 시작한 지 오래됐다는 동생 말이 맞았다. 홈쇼핑 여기저기에서 많이 팔고 있었다.

"이렇게 간단합니다. 여기에 얼음 동동 띄워서 드시거나, 콩국수를 해서 드시면 뭐~"

쇼핑호스트의 맛깔난 콩국수 요리에 군침을 삼다.


콩을 삶기 위해 아궁이 불을 살피 할머니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혔다. 가마솥이 눈물을 흘리자 솥뚜껑을 잽싸게 열고 아궁이에서 장작을 뺐다. 주걱으로 몇 개 건져 올린 콩을 찬물에 담갔다가 맛을 보았다.

"먹어봐."

할머니가 내 입속에 콩을 넣었다. 물하지도 않고 비린맛도 아닌 고소한 맛을 내는 콩으로 삶아졌다.

콩을 건져서 찬물에 담갔다.

"이리 와. 콩 비벼서 껍질 벗겨."

할머니가 나에게 콩껍질을 벗기는 임무를 내렸다. 삶기 전에 불려서 벗기기도 했지만 남아 는 껍질을 제거하는 것이다. 양손을 마주대고 살살 문질러서 껍질을 벗겨 냈다.  콩 껍질이 미끄러지듯이 분리되었다.  나는 콩 껍질을 벗기는 놀이를 즐겼다. 할머니는 마루에 하얀 광목을 펴고 맷돌을 준비하셨다. 함지박에 Y자 모양에 나무 받침대를 받치고 맷돌을 올리셨다.


"콩 좀 그만 먹어. 배 탈라."

콩을 계속 집어 먹는 나에게 할머니가 말했다.

"고소하고 맛있어."

한 손에 국자를 들고 대청마루에 할머니와 마주 앉았다. 할머니가  맷손을 잡고 돌리기 시작하면 나는 가운데 구멍에 콩을 넣기 시작했다. 콩과 물을 적당하게 넣어야 잘 갈아진다. 두 국자 정도가 들어가면 돌과 돌 사이에서 콩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할머니, 나도 돌려보면 안 돼?"

할머니가 맷돌을 돌리는 것이 재미있어 보였다.

"그려. 해봐. 쉬워 보이냐?'

내가 맷돌 손잡이를 잡았다. 힘껏 왼쪽으로 돌리는데 맷돌은 돌아가지 않고 손잡이만 '쑥~' 빠져버렸다. 손잡이를 끼고 다시 돌렸지만 마찬가지였다.

"힘만 준다고 되는 게 아녀. 다시 잡아봐."

내 손위에 할머니손을 올려 잡고 천천히 맷돌을 돌렸다.

"힘을 빼고 살살 돌려봐. 돌아가는 힘을 이용해서 적당하게 밀어줘야 잘 돌아가는겨."

할머니의 말처럼 맘만 앞서서 되는 일이 없다. 애만 쓴다고 되는 인생도 아니었다. '드르륵, 드르륵 ' 거칠게 돌아가던 맷돌소리가 그날의 풍경과 잘 어울렸다.


다 갈린 콩을 자루에 넣고 할머니가 콩물을 짜기 시작하엄마는 미리 밀어 놓은 국수를 삶았다.  나는 탄산처럼 톡톡 튀는 시원한 물이 나올 때까지 펌프질을 했다. 그렇게 퍼올린 물은 콩물과 썩서 시원한 국수 국물이 되었다.

'호리야, 밖에 가서 오이 따와."


대청마루 한가운데 커다란 상이 졌다. 며칠 전에 담근 열무김치와 굵은소금이 자리를 잡았다. 내가 퍼올린 지하수에 손국수를 헹궜다. 똬리를 튼 국수가  커다란 스테인리스  대접에 담겼다. 방금 따온 오이가 고명으로 올려졌다. 한 국자 가득 콩물을 먹은 대접이  상 위로 올라왔다.

"맛있겠다. 엄마, 또 있어?"

 먹기도 전에  동생이 물었다. 일곱 식구의 밥상은 풍성했다.


두유제조기가 도착했다. 콩과 견과류를 넣고 갈았다. 가끔씩 들리는 콩 갈리는 소리에는 낭만이 없다. 30분이 채 되지 않아 두유가 완성되었다. 어처구니를 돌려가면 하루종일 만들었던 콩국수를 30분 안에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참 빠르고 편리하다. 슈퍼에서 사 온 오이를 채 썰어서 얹었다.

"음~, 이거 맛있는데?"

한 젓가락만 맛을 보겠다던 딸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농자재마트에서리태콩 씨앗과 오이 모종을 샀다. 비록 맷돌은 최신형이지만 오이도 키우콩도 심어서  느릿느릿하게 할머니표 콩국수를 만들계획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멈출 수 없으니 내가 잠깐씩 멈춰가면서 살아야 한다.
멈칫 멈칫 가는 길이 행복을 만나기에
 유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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