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었고.....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싫다고 하셨어.' - 지오디의 어머니께-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시골에 살았고 남들 다하는 외식 한 번 한 적이 없었고....
어머님은 가마솥에 춘장을 볶았어. 어머님은 짜장면을 만들어 주셨어. 만들어 주셨어.'
-나의 어머니께-
중국집 짜장 맛을 알기 전에는 엄마가 만들어준 짜장면 맛이 원조 짜장면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몰랐다. 엄마표 짜장면은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를 듬뿍 넣은 짜장 소스에 국수를 직접 밀기도 하고 넓적한 국수를 삶아서 만들었다. 찌용으로 사 온 돼지고기 중에 비계 부분만을 잘라 놓았다가 짜장면을 만들었기 때문에 씹히는 것은 지방 덩어리뿐이었다. 녹말가루를 넣지 않은 짜장 소스는 걸쭉한 느낌이 아니라 국물이 적은 국 같은 형태로 만들어졌다. 간짜장 같은 느낌의 짜장면이었다.
"엄마, 내일 합창대회 갈 때 돈 줘야 하는데."
합창 단복을 챙기며 엄마에게 짜장면값을 달라고 했다.
"얼마나?"
갑자기 단복 맞추고 짜장면값도 줘야 엄마가 힘없이 물었다.
"250원은 꼭 필요하다고 하셨어."
드디어 진짜 짜장면을 먹을 수 있는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학교는 시골의 작은 학교였다. 학교 이미지와 맞지 않는 교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랜드 피아노가 주인공이다. 피아노 연주자는 교감 선생님이었다. 교감 선생님은 2학년 2반 담임선생님이셨고 나는 2학년 2반이었다. 다른 반은 풍금이 있었지만 우리 반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멘델스존 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베토벤의 몸짓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던 선생님은 음악 교과서에서 본 예술가 같았다. 그랜드피아노가 우리 학교에 오게 된 이유는 정확하게 모른다. 전국 합창대회 우승상품으로 받았다는 말도 있었고 시범학교로 지정서 받았다는 말도 있었다. 그 당시에 군 전체에서 그랜드피아노가 있는 학교는 우리 학교뿐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자랑이었다.
프라타나스 나무 아래서 공기놀이를하며 듣던 합창단 언니들 노랫소리는 예쁜 꽃과 맑은 하늘 같았다.
"노랫소리 좋다."
"언니가 그러는데 합창대회 나간다고 하더라."
친구가 공깃돌을 잡고 내 얼굴을 쳐다봤다.
"우리 선생님은 피아노도 잘 치고 노래도 잘하고 좋겠다."
손등에 올라온 공깃돌을 흔들며 말했다.
"4학년 되면 합창단도 하고 커서 선생님도 하면 되겠네. 나는 노래 부르는 건 재미없어."
친구는 합창단 선생님이 되는 방법을 단계별로 쉽게 설명해 줬다.
친구는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합창단이 연습하는 우리 교실로 갔다. 문밖에서 교실 안을 빼꼼히 들여다보며 선생님과 언니들의 노래 연습을 관찰했다.
"푸른 푸른 푸른 산은 아름답구나. 푸른 산 허리에는 구름도 많다. 토끼구름 나비구름....."
멀리서 들려오는 합창단 노래를 따라 불렀다.
"너, 저 노래 다 외웠어?"
노래를 흥얼거리며 공기하는 나에게 친구가 물었다.
"연습하는 거 매일 가서 봤더니 외워지더라. 우리 같이 가서 보자."
공깃돌을 땅에 묻으면서 친구에게 말했다.
"그래."
친구와 나는 교실 뒷문을 빼꼼히 열고 연습하는 모습을 훔쳐봤다. 선생님은 피아노 반주를 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언니들에게 소리와 화음 지도를 하시고 다시 피아노 반주를 반복하셨다. 숱이 모자라는 곱슬머리,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도 음악에 따라 움직였다.
"호리야, 들어와 봐."
선생님이 문 뒤에서 구경하던 나를 불렀다. 나는 그날 이후로 공기놀이 대신 언니들과 합창 연습을 했다. 주말에도 학교에 나가서 연습했다. 간식을 싸가기도 하고 선생님이 준비한 빵을 먹기도 했다. 합창 연습 하러 가는 학교길은 평소와 다르게 가깝게 느껴졌다. 아무도 없는 들길을 걸으며 새들보다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엄마, 나 합창 단복을 준비해야 하는데?"
대회를 앞두고 늦게 합류한 나만 단복이 없었다. 엄마는 대전에서 양장점을 하는 이모에게 부탁해서 부랴부랴 단복을 만들어 오셨다. 원래 단복과 똑같은 원단이 없어 내 치마는 검은색이 아니라 네이비색 시폰 원단으로 만들었다.
"다녀오겠습니다."
합창 단복으로 갈아입은 나는 엄마에게 500원을 받고 춤을 추듯이 학교로 달려갔다.
잘하고 오라는 친구들과 선생님들 배웅을 받았다. 학교에 남아서 수업하는 친구들 부러움 속에 교문을 나오며 어깨가 으쓱했다. 스쿨버스가 없었기 때문에 군내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버스터미널에서 대회가 열리는 대학교 부속 고등학교 강당까지 걸어갔다.
"들길을 지나 저 멀리 고개 넘고 강을 건너서 비바람 부는 날에도 달려간다 달려간다 우편 마차.
길 건너 다시 쓸쓸한 들킬지나 마을길로 저기 불빛 보인다 달려간다 달려간다 우편마차.
달려라 달려라(랄랄랄라랄랄랄라 랄랄랄라랄랄랄라) 나팔을 드높이 울리며 떠난다.(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랄랄랄라랄랄랄라 랄랄랄라랄랄랄라) 말발굽 소리도 가볍게 랄라.(달려라 달려라)"
새벽밥을 먹고 산과 강을 건너 버스를 타고 달려온 우리 이야기와 딱 맞는 노래, 온 마음을 다해 연주했다. 흔하디흔한 검은색 주름치마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었지만, 반듯한 재킷에 모자까지 쓴 읍내 합창단에 쫄지 않았다.
"초등부 1위 '푸르다와 크시코스의 우편마차' 두 곡을 부른 **초등학교 합창단 축하합니다."
화려한 조명과 커다란 무대에 기죽기보다 낡은 교실에 있어 더 빛나던 그랜드 피아노처럼 우리도 그렇게 빛나고 있었다.
"점심 먹으러 가자."
초록색 구슬이 엮인 발을 헤치고 터미널 옆,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250원을 쓰는 순간이었다. 노란 단무지를 바라보며 짜장면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침샘을 자극하던 그 냄새는 엄마표 짜장면 냄새와는 달랐다.
"언니는 짜장면 먹어봤어?"
내 옆에 앉아 있는 정순 언니에게 물었다.
"아니 나도 처음이야."
처음이라는 언니의 대답이 내 마음을 안심시켰다.
짜장면은 정말 맛있었다. 영순각 짜장면을 맛본 후에 엄마표 짜장면 대신 250원을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사실 250원은 단체 가격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오랜만에 모인 고향 친구들과 드라마 얘기로 시작해서 우리끼리만 아는 고향 사투리를 쏟아내면 '겨, 아녀.'를 연발했다.
"우리 짜장면이나 먹을까?"
짜장면이라는 말에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초등학교 졸업 선물이 짜장면이었어. 500원씩 주면서 언니랑 가서 먹으라고 해서 그날 짜장면 처음 먹었다."
선희는 초등학교 졸업식 날 처음 짜장면을 먹었다.
"나는 합창대회 나갔다가 영순각에서 짜장면을 먹었거든. 너무 맛있어서 읍내 가서 짜장면 사달라고 엄마를 4년을 졸랐어. 6학년 어린이날인가? 엄마가 1,000원 줘서 동생이랑 버스 타고 읍내 가서 짜장면 먹었잖아. 동생은 그 짜장면 맛을 잊을 수가 없다더라."
나도 짜장면 추억을 추가했다.
"나는 짜장면 냄새도 맡기 싫어. 어린이날, 졸업식 날 짜장면 먹는 사람들이 제일 싫었어."
친구의 말에 '너는 ?' 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친구네 집은 면사무소 옆에서 짜장면집을 운영했다.
우리에게는 행복했던 그날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