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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Apr 13. 2024

사랑은 고등어 덮밥을 싣고

'인연에 연연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  공감하면서도  그곳에 가면 꼭 찾는 사람이 있다. 20년 전에 맺은 인연의 끈은 생각보다 단단하다.


"선거하는 날, 뭐 해?"

내가 보낸 톡을 보자마자 답장이 왔다.

"원장님 제주 오세요? 무슨 일 있어요?"

말을 하기도 전에 알아채고 물어보는 강 선생의 질문에 '그동안 내가 제주도에 갈 때만 연락을 했나?' 잠깐 생각을 했다.

"일은 없고, 선거 전날 반차내고 가보려고 하는데..."

즉흥적으로 정한 여행이라는 티를 내면서 답장을 보냈다.

"원장님 몇 시에 도착하는지 알려 주세요. 제가 오시는 날 반차 쓸 수 있어요. 랜트도 하지 마세요."

여행을 망설이던 나는  선생의 일정 통보를 받고 1박 2일,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강 선생 육지에서 지낸 9년을 빼고 제주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위로 언니와 쌍둥이 오빠는 제주를 떠나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강 선생달랐다. 제주를 떠나 육지에 있는  대학에 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졸업하면 바로 돌아온다.'는 거짓 약속으로 어머니와 협상을  제주 다.  강 선생의 어머니는 해녀다. 80세가 가까운 지금도 물질을 하고 계신다.

"제가 그때 무슨 용기로 엄마 말을 안 듣고 육지로  가겠다고 나섰는지 모르겠어요. 지금도 우리 집에 절대 강자는 엄마지만 30년 전에는 더 무서웠거든요."

육지로 나오게 된 과정을 말할 때면 강 선생의 눈빛은 비장함으로 변했다.


"집은 걱정 말고 다녀와."

큰 아들의 협조로 나는 아침 운행까지 끝내고 공항으로 떠났다. 평일이었지만 공항에는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 속에 서 있는 내가 낯설고 어색했다. 구석자리를 잡아서  앉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혼자만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원장님~"

맑고 기분 좋은 음성으로 나를 부르며 손을 흔드는 선생의 모습이 보였다.

"잘 지냈지? 너무 좋다."

 손을 잡고 발까지 구면서 인사를 했다. 늘 아이들과 함께였던  제주도 여행을 오늘은 아줌마 둘이서 하게 되었다.


유채꽃 보러 간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유채꽃이 가득한 산방산 근처 꽃밭으로 나를 데려다. 꽃밭에는 젊은 연인들과 가족단위로 여행을 온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우리도 '찰칵' 인물 위주가 아니라 배경 위주로 사진을 남겼다.


강 선생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바닷가를 달렸다. 요즘 핫하다는 카페에 도착했다. 바로 앞에 바다 야자수 나무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는 사람들 보였다. 우리도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원장님, 잘 지내시죠?"

혹시나 무슨 일이 있어서 훌쩍 떠나왔는지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안부를 물었다.

"갑자기 평일에 여행도 오고 놀랐구나? 아무 일 없어.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 번 해본 거야. 이 짠 밥에 반차 정도는 맘대로 써도 되는 거 아냐?"

삶에 대한 태도를 조금 바꿨고 가끔은 즉흥적으로도 살고 싶다는 말로 강 선생을 안심시켰다.

"유치원 면접 가서 덜덜 떨었던 게 바로 어제 같은데 시간이 참 빨라요. 제가 끝까지 집으돌아오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도 가끔 해요." 

대학을 졸업하고 초임부터 제주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 우리 유치원에서 함께 근무했었다.


"당장 집으로 와라. 거기 계속 있으면 결혼도 못하고 노처녀로 죽는단다."

졸업만 하면 돌아다고 약속했던 딸이 5년이 지나도 돌아 올 생각을 하지 않자, 해녀 어머니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엄마가 믿는 무속인의 말과 함께 더 이상은 못 기다린다는 마지막 경고의 전화를 받고 강 선생은 제주로 돌아왔다. 육지에서 맺은 모든 것을 정리하는 모습이 하기 싫은 숙제를 하고 있는 학생 같았다. 내 멋대로 살아온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엄마말에 순종하는 강 선생이 참 효녀라는 생각 들다.

"계속 있었으면 노처녀로  살고 있겠지. 지금도 여기가 답답해?" 

제주로 돌아와서 결혼하고 워킹맘으로 살았던 30대가 참 힘들었고 마음을 바꾸고 나니 40대가 된 지금은 조금 낫다는 얘기를 털어놓았다. 동료교사로 만나서 아내와 엄마로 이어지는 서로의 삶공감했다. 측은함에 붉어지는 서로의 눈을 보았다.


강 선생의 예쁜 두 딸과 저녁을 먹었다. 우리 막내와 강 선생 둘째 딸은 나이가 동갑이다. "다음에는 정이랑  꼭 같이 오세요."

둘째 딸당부하듯이 말했다.

"원장님 쉬세요. 내일도 멀리 가고 싶으시면 연락하세요."

강 선생은 체크인까지 확인하고  생을 혼자 두고 떠나는 언니처럼 돌아갔다.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아서 포도주 한잔을 마시고 맥주를 반 캔먹다가 잠이 들었다. 알람을 끄고 잤는데 6시에 눈을 떴다. 바로 앞에 제주 바다가 보였다. 탑과 레깅스를 입고 해안가를 다리는 여자를 따라서 내 시선도 달다. 젊고 이쁘다. '너무 기죽지 말자. 나에게는 아직 근육으로 만들 수 있는 이 남아있다.' 


바닷가를 산책하는 사람들을 따라서 나도 산책을 나갔다.

"혼자 보내고 싶으신데 제가 방해된 건 아니죠? 산책하고 커피도 마시기 좋은 곳  몇 군데 알려 드릴게요."

강 선생의 친절한 안내 톡이 도착했다.


바닷가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바람소리와 파도소리, 가끔 지나가는 비행기 소리가 제주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2시간쯤 걷다가 칼국수 집에 들어갔다. 테이블 4개 중에 한 군대만 남아 있었다.'보말칼국수' 시원하고 담백다. 내가 좋아하는 맛이다. '구들하고 와서 먹고 싶다.'


머리 위로 날가가는 비행기를 보다가 신혼여행 마지막 날이 생각났다.

"여기서 공항까지 거리가 얼마나 될까요?"

호텔에서 나오면서 남편이 카운터에 물었다.

"거리는 멀지 않아요. 저기 보이는 곳이 공항입니다."

우리는 멀지 않다는 말을 가깝다는 말로 해석을 했고 걸어가는 것이 가능 일인지 묻지 않았다.

"비행기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산책 삼아서 걸어갈까? 가다가 힘들면 택시 타지 뭐."

남편은 걸어가고 싶어 했다.

"나는 복장이 이래서 걷기가 불편한데..."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걷다가 여의치 않으면 택시를 타면 된다는 남편에게 설득당하고 말았.


우리 부부의 삶에 예고편이었을까?  공항 가는 길은 가깝지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길도 아니었다. 시내를 벗어나서 공항 가는 차를 따라서 무작정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횡단보도 자체가 없는 자동차 전용 도로를 건너야 공항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원피스에 굽이 있는 부츠를 신고 2시간을 넘게 걸었다. 택시를 잡을 수 있는 도로는 이미 지났고 여행가방을 끌고 목숨을 건 무단횡단을 하면서 공항으로 향했다.  화를 낼 기운도 없이 공항에 도착했지만 약한 비행기 떠지 오래였다. 신혼여행으로 갔다가 이혼 여행으로 마무리할 뻔한 이다.


'그때 이혼을 했어야 했나? 여기 어디쯤그 호텔이 있었던 거 같은데...'시내를 두리번거렸다. 멀리 공항이 보인다. 걷다 보니 약속시간이 가까워졌다. 설다.


"작가님~"

 공항에서 만난 강 선생처럼 나를 향해 손짓하는 사람이 보다.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이다.

제주에 오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연락하고 싶었지만 망설였던 브런치 작가님이 있었다. 고민을 하다가  용기를 내서 아침 일찍 멜을 보냈다. 오직 글로만 소통했던 생판 모르는 사람이 보고 싶었는지 설명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불쑥 연락한 나를 위해서 본인의 일정까지 조정하고 만나러 나와 주신 작가님은 모습도 예뻤다. 오래전부터 만났던 지인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었다. 함께 걸었고 커피를 마셨다. 오늘의 용기 있는 선택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제주도가 더 아름다워지는 순간이었다.


"딸이랑 와서 먹었는데 맛이 좋았어요."

고등어는 구이나 조림만 먹어 봤는데 '고등어 덮밥' 차려졌다. 으로 먹기에도 만족스럽다.

 나물인 줄 알았는데 김가루와 톳이 들어간 밥 위에 저미듯이 썰어서 구운 고등어와 생강절임, 락교가 가지런하게 올려져 있다. 고등어 위에 생강절임 올리고 간장소스 찍어서 입안에 넣었다. 정갈하고 담백한 맛이 작가님과 닮았다.  내가 좋아하는 비릿한 바다 향기도 느껴진다.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음식이야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여기도 아이들과 와야겠다.'


"조심해서 가시고 브런치에서 다시 만나요."

작가님의 배웅을 받으며 제주를 떠났다.


그동안 우리 부부는 음력으로 생일을 챙기고 미역국을 끓였다. 여행을 떠나 던 날이 남편의 생일날이었다. 납골당 가기 싫었다.

그렇게 떠난 제주에서 나는 외롭지 않았다. 

버리고 싶은 것 버리고 나니 마음에 공간이 생겼다. 그  공간  더 많은 것 담아서 돌아왔다. 남편이 받을 생일 선물을 나에게 돌려준 것 같다.


"동희선생님, 제주도 작가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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