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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Apr 20. 2024

미나리는 먹고 절대는 빼고 다시 시작하기


작년 가을, 밭에 시금치 씨를 뿌렸다. 겨울에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이 아니라 달디단 겨울시금치를 먹으려고 뿌렸는데 관심 없이 지나갔다. 3월이 지나면서 월동 한 시금치 몇 포기가 쑥쑥 자라고 있다. 씨앗 뿌리자마자 새들이 먹어 치우고 남은  시금치가 가뭄에 콩 나듯이 남아 있는 것이다. 시금치를 볼 때마다 '저걸 언제 먹나.' 생을 했는데 봄비를 맞고 시금치의 키가 커질수록 먹어야 한다는 부담으로 내 눈에 더 잘 보였다. 며칠 지나면 시금치에 꽃대가 올라올 것 같았다. '김밥이나 싸?' 시금치를 뽑았다. 눈에 보이는 김밥재료는 시금치뿐인데 일단 뽑고  냉장고를 뒤져보기로 했다.


 "엄마, 소풍 갈 때 김밥 싸야 하니까 장에 가면 소시지 미리 사와."

소풍날 다가 오자 나는 엄마가 소시지를 뺀 김밥을 쌀까 봐 몇 번을 확인했다. 계란은 닭장에서 꺼내오면 되고 다른 채소는 밭에 나가거나  창고에 가서 찾아오면 된다.  하지만 소시지는 집에서 나오는 재료가 아니었다.

"걱정 마, 내일 할머니가 장에 가서 사 올 거야. 자꾸 성화 부리면 김밥이고 뭐고 없어."

몇 번을 확인하는 나를  안심시켰다.


지금도 내 고향은 1일과 6일에  5일 장이 열린다. 내가 사는 이곳 2일과 7일에  장이 열린다. 가끔  장날 시장에 간다.  분주한 사람들 을 지나고 참기름 냄새, 생선 냄새를 따라서  시장 구경하다 보면  할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따라다녔 그 시절이 떠오른다.


"할머니? 소시지 사 왔어?"

장에 다녀온 할머니의 짐 보따리 사이로 길쭉한 핑크색 소시지를 찾아냈다. 김밥에 소시지는 해결을 했고 다음 날 비만 오지 않기를 기도하 소풍 준비 끝다.


나와 동생은 가족에게 냉정하거나 솔직하다.  우리는 엄마를 닮아서 빈 말을 잘 못한다.

그래서 말인데  엄마의 요리솜씨는 한 마디로 별로였다. 겁고 자극이 없다.  료 자체의 맛에 의지한 음식맛이다. 요즘은 저염식이나 웰빙 음식이라고 해서 나오는 음식이 우리 엄마의 맛이라고 이해하면 빠르다.

"엄마, 오늘 진짜 맛있는데?"

가끔 평소와 르게 극적인 음식이 나리의  반응 뜨거웠다.

"내가 맘만 먹어봐. 잘하지."

우리의 칭찬에 엄마는 항 같은 말을 했다. 맘먹고 요리 솜씨를 발휘하기에 여건이 뒷받침되지 아서라 엄마의 일관성 있 주장다.  


엄마 말처럼  우리 엄마는 맘만 먹으면 못하는 게 없다. 농사일은 물론이고 옷도 잘 만들고 가족들 머리도 집에서 깎아 줬다. 게다가 엄마는 창의성이 뛰어났다. 엄마의 창의성은 대체가 필요하거나  동생을 맡기기 위해서 발휘하셨다. 한 가지 예로 포대기나 천 기저귀를 펼쳐서 아기를 업고 다녔던 시절에 요즘 같은 아기띠를 만들었다. 어린 나에게 동생들을 맡기기 위한 노력에서 나온 물건 중에 하나였다. 즘은 포대기 끈을 어깨에 걸어서 아이를 업는데 그때는 그렇게 업는 것을 몰랐다.  생을 업고 몇 발짝 움직이면  포대기랑 아기가 미끄러져  엉덩이에 걸쳐있기 일쑤였다. 그래서 동생을 오래 업고 있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모기장에 끼워 있던 고리까지 이용해서 양쪽에 어깨끈이 달린 포대기를 나에게 딱 맞게 만들어 줬다.  요즘 시중에 판매하는 기띠와 거의 비슷했다.

음식도 예외는 아니었다. 리를 하다가 재료가 떨어지면 텃밭으로 나갔다. 비슷한 재료를 찾아서  음식을 하셨다. 춘장을 사다가  짜장을 자주 해주셨는데 양배추대신 배추를 넣었고 호박도 넣었다. 짜장에 들어가는 재료는 그때그때  우리 집에서 나오는 야채를 몽땅 넣어서 만들어 주셨다.  애초에 계획한 맛은 아니지만 창의적인 요리가 탄생하는 일이 많았다.


"엄마 김밥 다 쌌어?"

소풍날 아침, 나는 운동화 뒤꿈치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섬머슴처럼 쌀쌀 거리고 돌아다니지 말고 얌전하게 놀다 와. 휘젓고 돌아다니다가 뱀 물."

엄마는 보자기에 싼 김밥과 물을 주면서 말했다.


소풍 장소는 매번 거기서 거기였다. 한참을 걷고 산을 넘어서 산 중턱에 있는 사찰에 도착했다. 정확한 이름기억이 나지 않는다. 유명하지는 않지만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사찰이라는 것만 기억이 난다. 잠깐 면서 사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시원한 곳에서 도시락 먹고 조금 쉬었다가 모이자."

담임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도시락을 풀었다.  '맛있겠다.' 핑크색 소시지와 노계란이 중심을 잡고  있는 김밥을 입속에 넣었다.

"우웩~"

나는 김밥을 뱉어 버렸다. 입에 들어가자마자 이상한 향기가 내 비를 건드렸다.

"도대체 무슨 맛이지?"

김밥을 코에 대고 킁킁거렸다.   냄새는 미나리향기였다. 시금치 대신 미나리를 넣고 김밥을 싼 것이다. 어제저녁에 엄마가 '시금치가...' 어쩌고 하는 소리를 얼핏 들었는데 밭에 시금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더 상상하지 것은 시금치 대신  미나리를  은 것이다. 나는 미나리를 싫어했다. 바깥마당 옆에 우리 집 우물과 연결된 미나리깡이 있었다. 리가 물을 쓰고 버리면 그 물이 미나리깡으로 내려가는 구조였다. 지금 생각하면 더럽다는 생각이 들지만  빨래는 개울에서 했고 비누나 세제를 거의 쓰지 않았으니 버리는 물을 이용한 미나리깡이었다.  음식을 하다가 필요하면 칼을 들고나가서 쓱쓱 베어다가 찌개에 넣고 나물로도 무쳐 먹다. 나박김치에 넣은 미나리를 보면서 붉은  국물과 잘 어울리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나는 미나리를  빼고 먹. 미나리향을 싫어했다. 그런데 엄마가 미나리를 넣고 김밥을 싼 것이다. 의 취향보다 김밥의 컬러에 집착한 것이다.

"짜증 나."

배는 고프고 미나리를 빼고 김밥을 먹었다. 미나리 향이 배어서 김밥 맛을 충분하게 즐길 수는 없었지만 시장이 반찬이었다.


"김밥에 미나리를 넣었어?"

소풍에서 돌아온 나는 도시락을 마루에 던졌다. 

"맛이 이상했어? 괜찮던데."

엄마가 도시락 보자기를 풀면서 말했다.

"버렸어." 

거짓말을 다.

"그럼 이제부터 네가 알아서 싸."

'그랬구나. 배고프겠다. 밥 먹어.'가 아니라

투정 따위는 누렁이나 주라는 의미의 답변을 던지셨다.  

"나는 이제부터 미나리는 절대 안 먹어. 절대."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지금은 미나리좋아한다. 쌈도 싸 먹고 나물도 해서 먹고 찌게에도 넣어서 먹는다. 미나리를  캐다가 함지박에 미나리깡을 만들어서 워서 먹기까지 한다.  5월쯤이면 논과 뚝사이 근처 도랑미나리가 많다. 모내기를 위해서 약을 하기 전에 미나리를  뜯어다가 한 번  다.


"저녁에 뭐 하려고?"

냉장고를 뒤지는 나를 보고 아들이 물었다.

"시금치가 있어서 김밥 싸려고."

냉장고에서 꺼낸 김밥재료를 식탁에 올려놓았다,

"김밥 재료가 있었어?"

식탁 위로 올라온 재료를 보면서 아들이 말했다.

"햄은 스팸으로 하고 나머지는 대충 다 있다. 맛살이랑 어묵 없어도 먹을 거지?"

나는 아들에게 물어보고

"당근이지. 당근김밥."

아들은 대답했다.


나도 우리 엄마를 닮아서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대충 만들어서 먹는 것에 익숙하다.

당근을 채 썰어서 소금 간을 하고 기름에 달달 볶기 시작했다.  김치도 국물을  짜고 들기름에 볶았다.


"맛있는 냄새."

밥 먹으라고 부르기 전에 아이들이 모였다. 썰기도 전에 한 줄씩 들고 먹기 시작했다.  

"썰어 줄게 제대로 먹어."

김밥을 썰던 칼을 들고 말리지만 소용이 없다.

"다음에는 미나리 넣고 싸야지."

김밥을 먹다가 내가 말했다.

"웩~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나는 절대 안 먹어."

딸이  말했다.


절대라는 말을 쉽게 쓰던 나이가 있었다. '절대 안 먹어. 절대 안 놀아. 절대 안 입어.' 절대라는 말을 고민 없이 쓸 수 있었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절대 **한 일은 하지 않아. 절대 **한 사람은 되지 않겠어. 절대 **한 일은 일어나지 않아.' 절대라는 말뒤에 뱉었던 말은 내 삶의 방향이기도 했다. 그 말을 지키기 위해서 애쓰며 살았던 시간이 후회스럽지는 않다.


맛 저 맛 다 보면서 간이 흘렀고 그 사이에 미나리를 좋아하는 입맛으로  변했다. 절대를 빼고  유연한 말로 내 삶의 방향을 조금 바꿔도 될 것 같다.


 절대라는  말로 나를 구속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된다고 나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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