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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Mar 30. 2024

간절함과 사랑이 비벼진 쫄면 맛은 이길 수가 없다.

좋아하는 음식도 나이와 상황에 따라 변하고 내 입맛과 음식의 맛도 재료와 환경에 따라 변했다. 모든 것이 변하는 중에도 변하지 않고 좋아하는 음식이 하나 있다.


학교가 끝나고 교문 앞을 쏟아져 나온 학생들은 각자의  자취방과 하숙집으로 흩어졌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까지 자취를 하지 않고 집에서 통학을 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는 버스를 타는 터미널까지 친구와 수다를 떨면서 한참을 걸다. 시내 중앙의 사거리, 신호등 앞에서 초록불을 기다리고 있자면 위를 자극하는 음식 냄새가 우리를 더 배고프게 만들었다. 튀김 냄새부터 달콤한 소스 냄새가 내 코에 도착하면 뱃속에서는 꼬르륵 신호를 보냈다.

"너도 배고프냐?"

같이 걷던 친구가 내 배를 흘끔 보면서 물었다.

"저 분식집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면 배가 더 고파지는 거 같아."    

새로 생긴 분식집을 바라보았다.  입구에 크리스마스 전구 같은 조명도 달려 있고 음악도 흘러나왔다.

"저기 가봤니?"

나를 빼고 갔을 리 없는 친구에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었다.

"아니, 비싸지 않을까?"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 분식집은 '풍미당'이었다. 풍미당은 메뉴판이 밖에서도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메뉴판을 보면서 어떤 맛일까? 우리는 궁금해했다. 

"돈가스는 알겠고 오므라이스, 카레라이스, 떡볶이... 쫄면?"

 메뉴판을 보다가 생소한 이름이 보였다.'쫄면'.

"쫄면은 쫄깃쫄깃해서 쫄면인가?"

친구와 나는 매일 그 신호등 앞에서 풍미당의 음식을 눈과 코로만 먹을 수 있었다.


용돈을 따로 받아본 적 없는 우리는 차비를 아끼면 집에 올 수가 없었고 보충수업비를 삥땅 칠만큼 간이 크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돈 있는 친구에게 사달라고 할 비굴함이나 뻔뻔함도 갖고 있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제일 잘하는 기다림을 선택했다. 명절에 친척들을 기다리는 것이 제일 빠른 방법이었다.


추석까지 6개월을 넘게 기다렸다. 추석이 지난 후에 지갑에 천 원 자리 몇 장이 모아졌다.  수업이 끝난 토요일 오후, 친구와 나는 경보선수로 변신해서 사거리에 있는 풍미당향해 걸었다. 우리는 당당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밖에서 보다 음악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가게 안은 상상보다 넓었다. 아르바이트하는 언니와 오빠들이 앞치마를 하고 안내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를 보자 자리를 안내했다. 친구는 오므라이스를 시키고 나는 쫄면을 시켰다. 보기에는 노란 비빔국수 같은 데 돈가스를 먹을 때 나오던 양배추와 콩나물, 오이가 색을 맞춰서 올려져 있었다. 그 위에 빨간 고추장 소스와 삶은 계란이 살포시 자리를 잡다. 얼마였는 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맛있는데 매워서 같이 나온 어묵 국물을 계속 먹었던 기억이 난다. 단맛과 신맛이  매콤한 맛과 섞여서 콧물을 닦으면서 계속 먹었던 쫄면은 용돈을 모으면서 기다릴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 먹었던 풍미당 쫄면제일 맛이 좋았던 쫄면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 뒤로 엄마가  김치비빔국수를 만들면 계란을 삶아서 올려 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20년 뒤에 더 맛있는 쫄면을 만나게 되었다.

"자기야, 나 쫄면이 먹고 싶은데. 나갈 기운도  없고 포장은 안 해주나?"

첫 아이를 임신하고 입덧이 심했던 나는 갑자기 쫄면이 먹고 싶었다.

"쫄면은 내가 얼마든지 사다 줄 수 있지."

마감을 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입덧하는 내가 먹고 싶다는 것을 대령하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해 줬다.  내가 먹고 싶다고 주문하는 것이 상추와 막장, 무말랭이 무침, 국밥, 누룽지 뭐 이런 종류라서 남편은 저렴하고 구하기 쉬운 것을 찾는다고 좋아라 했다.

"내가 빨리 가서 사 올게. 그런데 어디서 팔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쫄면이 맛있는 집을 물었다.

"쫄면은 경찰서 알지? 그 옆에 골목으로 들어가면 왕만두집이 있어. 그 집 쫄면이 젤 맛있어. 학생들 많아서 기다려야 할 수도 있." 

친구는 역의 맛집을 알려 주었다.

"포장을 해오려면 통을 가져가야겠지? 비닐봉지에 싸 오기는 그렇잖아."

남편이 싱크대문을 열면서 물었다.

"그릇에 담아 주겠지?"

통을 찾아서 남편에게 건네줬다.

그때는 짜장면 배달도 1회 용기를 쓰지 않았다. 다 먹은 그릇을 밖에 내놓으면 다시 회수해 가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쫄면을 사 오려면 통을 가져가서 포장을 부탁해야 했다.


분식집을 향해 통을 들고 출동한 남편이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휴대폰도 없어서 연락을 해 볼 수 없었다. 베란다문을 열고 길 아래로 목을 쭉 빼고 몇 번을  내려다다. 언덕 아래에서 남편이 자전거를 끌고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이 많았어?"

문을 열어주면서 쫄면을 찾았다.  

"애들이 바글바글하더라고."

가방에서 쫄면통과 국물통을 꺼내면서 남편이 말했다.

"가게서 비벼왔어?"

뚜껑을 열고 쫄면을 비비려고 보니 이미 다 비벼져 있었다. 나는 한 젓가락을 입에 넣었다.

"아니, 들고 오다가 놓칠까 봐 가방에 넣고 와서 자동으로 비벼졌나 봐."

 남편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소파에 앉아서 대답했다. 나는 오랜만에 쫄면을 맛있게 먹었다. 마음 같아서는 끝까지 간직하고 싶었지만 잠시 후에 하던 대로 모두 토해냈다.

"내가 그 쫄면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아깝게 다 토하냐."

등을 두드리던 남편이 하소연하듯이 말을 뱉었다.


남편은 쫄면집에 도착해서 그릇에 담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뭐? 어디에 담아?"

 바쁜 시간에 와서 주문부터 남다른 것이 할머니 심기를 건드지만 남편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기다렸다. 그릇에 예쁘게 담아준 통을 비닐봉지에 넣어서 흩어지지 않도록 자전거 핸들에 걸치고 오고 있었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면서 횡단보도를 는데 맞은편에서 뛰어던 학생이 쫄면 통을 치고 지나간 것이다. 손이 미끄러지면서 비닐봉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오 마이갓.'떨어지는 순간에 뚜껑 열리면서 쫄면도 함께 쏟아져버렸다. 학생은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고 급하게 사라지고 남편은 자서 쫄면을 수습했다.


'그냥 집으로 가? 아니면 다시 가서 하나 더 사?' 기분으로는 당장 집으로 오고 싶었지만 빈손으로 왔다가 평생 들을 원망이 더 무서워서  다시 왕만두집으로 향했다. 쫄면을 하나 더 주문했다.

"할머니 죄송한데 이 통을 닦아서 담아 주세요."

남편의 느닷없는 설거지 부탁에 주인머니는

'뭐 이런 게 다 있지?' 하는 정으로 바라보셨다.

"내가 산모가 먹는다고 해서 이렇게 해주는 거야. 잘 들고 가."

또 오지 말라는 주의까지 주면서  쫄면을 통에 담아주셨다.


뱃속에 아들이 아니었으면 아마 그날 내가 쫄면을 못 먹었을 확률은 99.9%라고 확신한다. 아빠 마음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담자마자 가방 속에서 바로 비벼져서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날의 쫄면 맛이 풍미당 쫄면 이기고 베스트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간절함과 사랑이 함께 비벼져서  만들어 낸 쫄면은 잊을 수 없는 맛이 되었다.


횡단보도에서 허둥대쫄면과 씨름했 젊디 젊었던 초보아빠꼭 닮은 아들, 그날 그 쫄면을 먹게 해 준 주인공이 새로 생긴 쫄면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계란대신 메추리알 2개가 올려져 있다. 채소를 많이 주는 이  쫄면도 맘에 든다.


 남편의 엉뚱함을 부끄러워했던 적이 많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나에게 없는 그런 엉뚱함도 내가 사랑한 이유였다.
우리는 지나고 나서  후회하고
깨닫게 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본래의 내 마음에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삶의 중간중간에 쉬어 갈 의자를 하나씩 마련해 놓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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