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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Mar 16. 2024

선희가 가방을 싸는 이유는 김치콩나물국을 끓이기 위해서

"호리야, 일어나서  밥 먹어."

'선희야~ 가방을 왜 쌓니~ 선희야~ 서울이 싫더냐~' 불타는 요일 밤을 음주가무로 함께한 친구가 밥상을 들이대면서 나를 깨웠다.

"대단하다. 너는 밥이 넘어가니?"

밥상 앞에서 '후루룩' 소리를 내면서 국을 마시는 친구를 보면서 대꾸했다.

"술은 술이고 밥은 밥이지. 일어나서 국이라도 마셔 속이 확 풀린다. 먹고 또자."

내가 깔고 있는 요를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나는 떼구루루 굴러서 반대쪽 벽에 붙었다.

"너를 진정한 술꾼으로 임명한다.  나는 아직도 토할 것 같아."

엄지 손가락을 들어서 친구에게 존경을 표했다.

"너는 빈대떡을 그렇게 많이 부쳤는데 아직도 나올게 남았냐? 빈속이라 더 힘든 거야. 억지로라도 먹어봐."

친구의 위와는 다르게 내 속은 뒤틀릴 때로 뒤틀려서 물 한 모금도 마실 수가 없었다.


우리는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다. 몰랐으면 좋을 사연까지 다 아는 친구지만 함께 다니면 '이모야?'는 질문을 많이 받았었다. 키도 20센티 가까이 차이가 났고 주량도 키만큼 차이가 났다. 나는 어느 순간 친구를 이모처럼 의지하고 있었다. 대학시절 대모를 하다가 구속된 상황에서도 나보다 한  직책이 높았던 친구가 책임을 지고 재판을 받았고 가난에 대한 베에서도 내가 한 수 아래였다.

"너는 비 오는 날 우 쓰고 학교 갔지?  나는 비료포대 쪼개서 쓰고 갔어. 비료포대도 늦게 나오면 언니랑 오빠가 쓰고 가서 못자리하고 걷어 놓은 비닐 찢어서 쓰고 갔다니까. 너는 크레파스 없어서 학교 못 간 적 없지? 나는 크레파스가  없어서 못 가져갔는데 선생님이 집에 가서 가져오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집에 크레파스 가지러 가는 척 왔다가 학교 안 간 적이 더 많아."


나는 형제 관계에서도 친구에게 밀렸다.

"가난한데 애를 너무 많이 났어. 시골에 전기가 늦게 들어온 게 문제야. 촛불아래서 분위기가 얼마나 좋았겠어."

6남매 중 넷째였던 친구보다 4남매 중 첫째인 나는 훨씬 유리한 환경이었다.


우리는 부모님 도움 없이 상경해서 기숙사를 제공하는 곳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친구는 먼저 월세로 독립을 했고 나는 금요일이 되면 의정부에서 인천까지 친구를 찾아갔다. 소주 한잔을 털어 넣는 표정만 봐도 어떤 마음으로 친구를 찾아갔는지 다 알아챘고 밤새 술을 마셔야 할지 노래를 불러야 할지 아니면 다를 떨어야 할지 친구는 다 알고 었다.


"너 무슨 일 었냐? 어제는 술이 술을 마시던데?"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시는 일이 드문 나에게 친구가 물었다.

"까였어. 나 또 울었냐? 난 한이 많은가 봐 술이 끝으로 가면 왜 울지?"

멀찌감치 누워서 밥을 먹는 친구에게 말했다.

"짝사랑이 까이긴 뭘까여. 그놈이  애인 생겼데? 그냥 고백이나 해봐. 나는 별로던데."

상처받기 싫어서 고백도 못하고 혼자 끙끙거리다가 정리했다고 울고 까였다고 억울해하는 나에게 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고백했다가 아니라고 하면 쪽팔려서 다시는 못 보잖아."

나는 밥상을 향해 기어가면서 말했다.

"삐삐 쳐도 연락 없는 놈 말고 너를 좋아하는 놈을 만나. 질질 짜는 용도로  신성한 술 모독하지 말란 말이지."

술을 많이 마시면 우는 나에게 술에 대한 예의가 없다는 말로 내대신 술에게 미안해했다.  친구가 취한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만큼 술과 한 몸인 친구다.

"나를 좋아하는 놈이 없어. 그나저나 너는 하이틴 로맨스를 그렇게 많이 봤는데 왜 모태솔로냐? "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뒤에 앉은 친구들이 책상 서랍 속에  몰래 넣어두고  보던 하이틴 로맨스로 연애의 기술 익힌 친구  애인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이틴로맨스 주인공 같은 남자가 없어."

친구의 말이 정답이었다.


"쪽팔리기는 뭐가 쪽팔려. 진짜 쪽팔린 얘기 한 번 해줘? "

친구는 고백했다가 까이는 정도의 쪽팔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 생각나니? 행사에 먹을 겉절이 하는 ,  못 나가서 너네가 했는데 맛이 진짜 없었잖아."

선희와 나는 학생회활동을 했다. 선희는 총학생회 간부고 나는 학과의 회장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오후에 타 지역 학교와 협의가 거나 행사가 으면 모두 만나서 늦게까지 일을 했었다. 막차가 끊기는 날에는 자취방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자고 오는 일이 있었다. 이상하게 보면 이상 할지 모르지만 그 당시 우리는 친구집에서 놀다가 버스가 떨어지면 자고 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건이 벌어진 그날은 친구가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마법에 걸려 있었다.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같이 간 선배 언니랑 회의를 주관한 형의 자취방에서 자게 되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이불에 마법의 흔적이 묻어 었던 것이다.

"내가 그때 전경들한테 끌려갈 때보다 더 아찔 했다니까. 그래서 어쨌는지 알아?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심정으로 친구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미쳤구나. 그래서?"

친구의 이야기에 점점 빨려 들어갔다.

"잠깐 누워서 천장을 보면서 이 사태를 어찌 해결할 것인가? 생각했지. 생각이 끝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방에 있는 이불을 다 들고 나와서 빨기 시작했어."

방에서 가지고 나온 이불과 요를 일단 물로 적시고 주인집 아주머니께 커다란 함지박을 빌렸다. 함지박 안에 다 집어넣고 발로 밟아가면서 빨래를 시작했던 것이다.

"너는 진짜..."

너무 웃겨서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하나만 빨지 왜 다 빨았는지 궁금하지?  완전범죄를 위해서지. 하나만 빨면 이상하잖아."

친구는 그날의 선택은 최고였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사실 친구보다 더 황당했던 사람은 같이 자고 있던 선배 언니였다.

"우리 집 이불 빤 지도 1년이 넘었는데 이게 뭔 짓이냐."

자다가 날벼락 맞은 그 언니 영문 모르고 졸지에 같이 이불  빨래를 해야 했다.

"날씨는 왜 그렇게 추운지.  친구 자취방에서 자고 돌아오던 형이 우리한테 고맙다고 계속 말하는 거야. 내 속도 모르고 막 감동하고.... 그날 빨래하고 나서 병잖아. 그래서 못 나간 거야. 그 뒤로 나는 빨래천사로 지금까지도 알려지고 있어."

시원하게 털어놓고 나니 속이 풀리는지 국물을 대접체로 들이켰다.

"도 쪽팔리는 것이 두려워서 빨래한 거네."

나는 다시 밥상 앞에 앉아서 국그릇을 잡아당겼다.

"더 대박은 그 언니랑 이불 주인이 지금 사귄다는 거지."

진짜 쪽팔린 상황은 바로 그 상황 같았다.

"뭐야, 빨래는 네가 하고 연애는 왜 그 언니랑 해? 빨래하는 모습이 그 언니가 더 이뻤나 보다."

170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쇼커트 머리를 한 친구가 튼실한 종아리를 들어내고 이불을 밟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말했다.

"듣고 보니 그러네. 여하튼 이거 먹고 속 차려. 그래야 짝사랑던 불타는 사랑이던 시작하지."

나도 김치콩나물국을 들이켰다.


소주와 막걸리 밖에 먹을 수 없던 학생에서 생맥주에 소시지볶음이나 노가리 안주를 시켜놓고 술을 먹게 된  감사했던 우리는 행복했다. 한 번도 부모님의 가난을 원망하지 았다. 다만 그분들 노력과 부가 비례하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했을 뿐이었다. 그때 우리는 조금만 더 부자가 되고 싶었다.

'욕실이 있는 집에 살았으 좋겠다. 싱크대와 가스레인지가 있는 곳에서 밥을 할 수 있다면 더 행복하. 연탄불을 갈지 않아도 되는 집에서 산다면 우리는 성공한 인생이다.'라고 믿었었다.


김치를 '쫑쫑' 썰어서 냄비에 넣은 뒤에 부뚜막 위에 긴 다리 한쪽을 걸치고 앉아서 연탄불 위에 냄비를 바라보던 친구는 냄비  뚜껑이 들썩거리면 재빠르게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입김을  '훅~' 불어서 수증기를 리치고 들고 있던 콩나물을 냄비 속에 넣었다. 이렇게 끓인 김치콩나물국으로 서로의 아프고 쓰린 청춘의 속을 달랬다.  


오늘도 그때보다 더 아픈 내속을 달래기 위해서 친구는 가방을 싸 들고 우리 집에 왔다.

내 친구 이름은 선희다. 내 친구 선희가 가방을 싸는 이유는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호리야 막내 영어는 내가 봐줄게."
아이들 영어 입시 과외를 하는 선희는 내 딸의 영어교사를 자청했다.

선희의 조건은 '아무 대가도 지불하지 않는 것과 막내를 같이 키우게 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또 선희에게 졌다.

내 아프고 쓰린 속을 달래주는
선희의 김치콩나물국은
 여전히 나와 함께하고 있다.
친구야. 고맙다.
내가 너를 이기는 날이 한 번은 올 거야. 기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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