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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Mar 23. 2024

같은 경험 다른 기억, 망향 휴게소의 가락국수


아이들과 고속도로를 타는 일이 생기면 꼭 휴게소를 가게 된다. 화장실에 가야 하는 목적이 가장 많지만 간식을 먹어야 하는 딸의 원칙이기도 하다.

"엄마는 뭐 먹을 거야?"

키오스크를 이리저리 넘기는 나를 보고 소떡소떡을 선택한 딸이 옆에서 재촉한다.

"음~"


지금은 시골 학교라고 하기에는 이름이 거창한 도시로 바뀌었지만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작은 시골 중학교였다. 언덕 위에 위치한 학교는 교문을 들어가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보통의 학교와는 달랐다. 교훈이 쓰여 있는  커다란 경석 주변으로 아기자기한 정원을 지나서 건물을 통과해야 계단아래에 운동장이 보였다. 그 계단에 앉아서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을 보면서 소라과자 쭈쭈바를 먹으면 온 세상을 얻은 것처럼 행복했다. 교문 앞에 포장도로를 빼고 산과 들이 전부였던 농촌학교가 내가 다녔던 학교다.

"얘들아, 며칠 뒤에 우리 학교랑 자매결연을 맺은 서울 중학교에서 손님들이 온다고 한다. "

담임 선생님의 말씀에 우리는 어리둥절했다.

"그러니까 청소를 깨끗하게 해야겠지?"

자매결연을 제안한 선생님은 우리 학교가 모교인 선배였다. 우리 학교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서울에서 손님들이 오게 된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교육'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할 것 같다.  

"장학사가 오는 것도 아니고 쓸데없이 그런 걸 한다고 해서 청소를 하게 만든다냐."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손님이 다고 하면 집안 청소하는 것이 예의지.'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에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너희들은 손님들이 오면 학교 소개를 해줘야겠다."

교감 선생님이 회장과 나를 불러서 우리들의 역할을 이야기하셨다. '그걸 왜~ 우리가 하죠?'라는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들만 오시는 게 아니라 학생 대표들도 같이 온단다."

그제야 무슨 뜻인지를 알아챘다.

"네가 해라. 나는 안 한다."

교무실을 나오면서 회장이 귀찮다는 듯이 나에게 말했다.

"네가 회장이니까 네가 해라. 서울쥐랑 시골쥐야 뭐야."


서울에서 선생님들과 서울 쥐들이 도착했다. 서로의 직책과 이름을 소개하는 시간이 끝나고 선생님들은 교장실에서 협약식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셨다.

"여기 있는 부회장이 학교 소개를 할 거예요."

 선생님의 지목에 나는 서울쥐들에게 학교 안내를 시작했다. 시골 회장쥐가 도망가고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짜 쥐새끼 같은 놈이네. 도망을 가? 잡히기만 해 봐라.' 두리번거리면서 회장쥐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만나서 반가워. 무엇을 소개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너희들 학교는 서울에 새로 생긴 학교라고 들었는데 시설은  우리보다 훨씬 좋을 것 같고... 학교시설보다 주변의 풍경이 서울하고 다를 거야."

나는 시골 풍경이나 실컷 보라 말을 하고 소개라고 할 것도 없는 학교를 왔갔다 하면서 안내를 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에  따라 걸으면서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기분 좋은 서울쥐와 눈이 마주쳤다. 선생들과 학생회 대표들만 참석한 과학실에서 간단한  협약식과  다과시간을 갖는 것으로 시골쥐와 서울쥐들의 만남은 끝이 났다. 


얼마뒤, 서울중학교에서 우리를 초대했다. 학교에서 준비한 버스를 타고 교장선생님을 포함한 선생님들과 학생회 대표들이 서울로 향했다.

"또 만나서 반가워. 나는 부회장 이진영이라고 해. 오늘은 내가 우리 학교를 소개해 줄게."

안내를 경청하던 그 기분 좋은 서울쥐의 인사였다. 사물함이 있는 교실을 시작으로 과학실, 음악실, 체육관... 서울쥐들이 다니는 학교는 없는 것 빼고 다 있었다.

"운동장이 우리보다 작네."

어디선가 소심하게 중얼거리는 소리에 나는 피식 웃었다.


"맞아. 중학교 때 그 회장이 우리 유치원에 강의하러 어. 지금 옆에서 듣고 있다."

내통화가 끝나자 도망자 회장 쥐가 통화 대상이 누군 지 궁금해했다.

"기억나니? 우리 중학교 때 자매결연 맺어서 서울 중학교에 갔었잖아."

나는 즐거운 추억을 소환하듯 이야기를 꺼냈다.

"생각도 하기 싫다야. 나는 그때 진짜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어. 너는 신이 났었지?"

친구의 반응에 나는 하던 말을 멈추고 이유를 물었다.


서울 쥐들이 방문 기념으로 우리 학교에 들고 온 것은 과학실에서 사용하는 비싼 기자였다. 그런데 막상 우리가 서울에 초대를 받고 가져간 선물은 빗자루였다.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시설관리를 하시는 아저씨가 산에서 직접 싸리나무를 베다가 대 빗자루를 만들어서 가져간 것이다. 나는 친구보다 머리가 나빠서인지 부끄럽다고 생각을 하지 않아서였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데 친구는 그 빗자루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회장이라 꼭 가야 한다고 해서 갔는데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날 그 학교에서 서울시내를 내려다보면서 내가 게네들 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니까. 웃기지?"

친구는 다시 40년 전에 싸리빗자루를 전달하던 썩은 표정의 중학생으로 돌아가서 그날을 회상했다.

"그래? 너는 될 놈이었다. 나는 '학교 좋네.'하고 끝이었는데. 그때 만난 부회장이랑 나는 절친이야. 조금 전에 그 친구 통화한 거."

친구는 그날의 다짐 대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고 심리학과 교수 되었다. 가끔 유치원에 강사로 부모교육을 해주러 오는 친구를 볼 때마다 '서울쥐를 친구로 사귈 것이 아니라 싸리빗자루에 각오를 새롭게 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을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때 만난 진영이와는 서울쥐와 시골쥐 잘 지낸다. 여전히  만나면 기분 좋은 친구다. 아이들의 학교 문제부터 집안 문제까지 돕고 의논하는 친구로  현재 진행형 친구다.


서울쥐들이 다니는 학교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망향 휴게소에서 버스가 멈췄다. '화장실에 가야 하나보다.' 생각을 하고 일어나는데 교장선생님이 마이크를 잡으셨다.

"여기 휴게소에 유명한 국수가 있는데 한 그릇씩 먹고 출발할 거예요."

갈 때와는 다르게 말없이 돌아오는 우리들의 모습이 기가 죽어 보였는지 원래 예정에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힘없는 시골쥐들에게 교장선생님이 가락국수를 쏘신다고 방송을 하셨다. 집에서 만들어주는 국수만 먹다가 가락국수는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소면으로 만든 장국수보다는 면이 굵었고 칼국수보다는 면이 통통했다. 면발 위에 올려놓은 고명은 지금처럼 어묵이나 튀김을 올리지 않았고 대파와 고춧가루, 김가루가 약간 뿌려져 있었던 것으로 흐릿하게 기억이 난다. 멸치 육수와는 다른 감칠맛 내 혀에 새로운 맛을 선물했다. 함께 먹었던 노란 단무지 우리 엄마가 집에서 만들었던 단무지보다 아삭하고 달콤한 것이 내 입맛에 더 잘 맞았다. 서울 학교만큼이나 새로운 국수 맛을 경험한 나는 싸리빗자루 때문에 입맛을 잃은 회장 녀석과는 다르게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다.


나는 눈치 없거나 자존심이 없는 시골쥐였나? 아니면 내가 사는 시골에 대한 사랑이 과도했던 것일까? 여하튼 싸리빗자루를 옆에 끼고 찍은 단체사진이 없는 것은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사진을 찍은 것도 같은데 딘가에 존재할까 봐 걱정이 된다.


 그 만남 이후에도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계속 연락을 했다. 방학이 되면  우리 집에도 놀러 오고 나도 진영이네 집에 놀러 갔었다. 그때마다 내가 가지고 간 선물은 우리 밭에서 제배한 채소였다. 엄마는 호박, 호박잎, 오이, 깻잎, 고추를 골고루 따서 박스에 담아주셨다. 나는 그 상자를 들고 버스와 기차, 지하철을 타고 친구집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 한 번도 그 상자가 창피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너무 맛있겠다. 힘들게 여기까지 들고 오르라 고생했네."

좋아하시면서 받아주셨던 진영이 어머님 때문에 눈치를 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럼 그렇게 가지고 왔는데 에구~시장 가면 이거보다 싱싱한 걸로  천 원이면 다 사는데 힘들게 뭘 가져왔냐고 말하냐?'라고 냉정하게 말하는 동생의 말이 진실 일지도 모른다.


시골쥐인 친구와 나는 같은 경험을 했지만 다른 감정으로 저장이 되어있다. 각자의 가치대로 우리는 부끄럽지 않게 성장했다. 지나고 나니 싸리빗자루와 채소박스 모두 부끄러울 만 한데 나는 터무니없이 당당했다. 지금도 텃밭에서 나오는 채소 산이나 들에서 채취한 나물을 '진짜 친환경이다. 돈 주고 못 사는 거야.'라고 큰소리치면서 주변에 나눠주는 것을 좋아한다.


더 이상 나는 싸리빗자루와 채소 박스를 받았던 사람들의 진짜  마음이 궁금하지 않다. 마음이 느낀 대로 기억할 뿐이다.



 별거 아닌 것을 부끄럽기보다
당당하게 내 밀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은
내 마음을 가격으로 계산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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