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는 남편 팬이 한 분 있다. 같은 지역 주민이고 만화를 좋아하는 분이다. 검정고무신을 주간지부터 보고 자랐다. 우리 집에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사인도 받고 따로 만나서 삼겹살에 소주한 잔 하는 사이로 발달한 관계다. 만화얘기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아빠 고충도 공감하는 사이가 되었다. 나이는 10살 이상 어렸지만 소통에 문제는 없었다. 남편은 6월이 지나면 감자, 10월이 지나면 고구마, 11월에는 장준감을 선물로 받아왔다.
"그분은 우리가 농사짓는 거 모르나 봐."
"챙겨주는 마음이 고마워서 별말 안 했어."
본가에서 농사지은 작물을 남편 몫까지 챙긴 것이다. 팬과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감사하게 받고 소주 한잔으로 고마움을 전하는 친구가 되었다.
갑작스러운 남편소식에 장례식장으로 달려온 그분을 나는 알아보지 못했다. 우리는 만나적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작가님 팬입니다. 잠깐 장례식장에서 뵙는데 경황이 없으셔서... 읍에 살고 있고 댁에도 간 적이 있습니다."
작년 8월, 직장으로 모르는 남자가 찾아왔다.
"혹시 수도공사 다닌다는..."
이름을 외우기보다 특정 상황으로 기억하는 나는 그분을 수도공사 다니는 분으로 남편과 소통하고 있었다.
"어렵게 찾아왔어요. 마음이 힘드시죠?"
나를 위로하기 위해 던진 질문에 본인이 먼저 눈시울을 적셨다.
"산 사람은 살게 되네요."
5개월이 지났지만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는 시기였다. 말 한마디에 눈물이 쏟아지는 상태였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대화가 이어졌다. 음료수와 함께 쇼핑백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작가님 드리려고 중고서점을 뒤져서 구입한 책입니다. 생신에 만나서 드리기로 했는데 못 드렸어요."
검정고무신 1화가 실려있는 1992년 소년챔프 잡지였다. 작가도 보관하고 있지 않은 책을 구해서 선물로 준비했던 것이다. 내가 남편대신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8월에 다른 책들과 전시했다.
"전시회도 가려고 휴가를 받았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종종 안부 묻겠습니다."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돌아갔다. 그 뒤로 연락할 일은 없었고 계절이 바뀌고 새로운 수확물이 나오면 맛있게 드시라는 문자가 도착했다. 그리고 남편이 있을 때와 똑같이 현관 앞에 농작물이 놓여 있었다. 그때마다 감사하다는 짧은 인사로 마음을 전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올여름, 폭우로 인한 피해사항을 뉴스를 통해 보다가 수도공사에서 일하시는 그분이 생각났다.
"안녕하세요. 이우영작가 집입니다. 폭우와 더위로 일이 힘드신 건 아닌지요. 매번 받기만 하고 안부도 못 전했어요. 덕분에 잘 지냅니다. 아이들하고 새로 생긴 빙수집 한 번 들러보세요. 감사합니다."
그동안에 안부를 적어서 빙수쿠폰을 보냈다.
"선물을 넙죽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ㅠㅠ. 감사합니다. 아이들과 잘 쓰겠습니다 ㅠㅠ. 비 피해는 없으시죠? 장마에.. 더위까지 심한데... 항상 건강 잘 챙기세요! "
따뜻한 답장이 날아왔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남편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물론 나까지 이어졌던 인연들도 자연스럽게 관계가 정리되고 끊어졌다. 일로 만난 사람들은 일이 없었고 기억보다 잊히는 것이 편안한 관계도 있었다. 가끔 허공에 소리치듯이 남편에게 톡을 보내기도 했다.
"우영아, 보고 싶다. 오늘은 네 생각이 많이 난다."
"교수님, 생신축하드려요. 교수님 덕분에 잘 적응해서 작품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친구야, 너에 웃는 모습이 그립다. 잘 있니?"
남편을 그리워하고 기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대신 답글을 달았다. 남편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분들을 이어주고 싶었다. 그 답글에 다시 안부를 묻고 격려를 받으며 관계가 이어지기도 했다. 내가 그들과 남편의 관계를 이어주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나와 그들을 이어주는 느낌이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고 지칠 때가 많았다. 모든 관계를 끊고 숨고 싶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오늘을 살게 하고 끌어주는 힘도 사람들 속에서 얻고 있다. 나에게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살아 있다는 의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