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에 교사들은 2주를 쉬었지만 나는 1주일로 방학이 끝났다. 변호팀을 만나러 가는 것이 늦은 휴가 계획이다. 실적조회 제출이 늦어져서 미루고 미루던 재판이 9월 5일로 잡혔다. 변호팀 미팅 전날 쉬면서 서면을 탐독하겠다는 계획으로 3일간 휴가를 잡았다. 하루 전날 아침 일찍, 막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청소를 했다. 자동차 정비도 받았다. 준비서면을 들고 식탁 의자에 앉다가 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 서류를 던져 놓고 옷을 갈아입었다. 밖으로 나가서 풀을 뽑기 시작했다. 몸을 괴롭혀 집중하는 수도승 같은 마음으로 일에 집중했다.
더 이상 보여줄 자료도 바라는 봐도 없다. 반복되는 내용에 답변도 지친다. 계약금 대신 생활비를 줬다는데 생활비를 준 근거를 내지 못하고 있으니 판사가 판단하겠지. 거짓말로 일관하는 사기판 같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거짓말을 하면 신체 일부가(엉덩이 아님) 빨개지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지치기를 바라고 시작한 재판에 내가 지치면 지는 것이다. 자세를 다 잡고 호미로 땅을 찍으면서 풀을 당겼다. 고라니가 살림 차릴 만큼 정원을 점령한 바랭이풀과 호박 덩굴을 뽑아, 차곡차곡 수레에 실었다. 비가 오다 말다 하고 구름이 잔뜩 낀 날씨는 풀도 잘 뽑히고 일하기에 최적의 날씨다. 한참을 하다 보니 허기가 밀려왔다. 옷이 지저분해서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밭에 있는 참외를 땄다. 수돗가에서 닦아 껍질째 먹었다. 우걱우걱 먹다 보니 깨끗해진 정원이 눈에 보였다. 시작할 때의 시름은 잊었다. 참외도 맛있고 기분도 좋아졌다.
저녁시간, 수요일 연재해야 할 글을 정리하다가 노트북을 닫고 자리에 누웠다.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쓰기에 내 마음이 함께 하지 못했다. 이 번주는 건너뛰자. 새벽에 잠이 들었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는 길도 이제는 두렵지 않다. 몇 번을 오가고 나니 서울 한 복판을 달리고 복잡한 주차를 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다 적응하기 마련이라고 했던가? 나도 계속 적응하고 있다.
긴 상담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변호사들에게 부탁했다. 내가 우리 아이들을 아무리 발버둥 치며 훌륭하게 키워도 자살한 아빠를 바꿀 수는 없다. 후진 엄마라서 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내가 느낀 사회적 통념이 그렇고 나라도 사위나 며느리가 저희 아이들과 같은 상황이면 고민할 것이다. 그러니 재판만이라도 꼭 이겨야 한다고 솔직하게 토해냈다. 내 잘 못된 통념을 바꿔가는 일도 필요하지만 현재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미안한 부분을 숨기지 않고 최선을 다해달라고 부탁했다.
상담이 끝나고 시동생과 나는 헤어졌다. 주차장에 내려와서 네비에 우리 집을 찍다가 멈추고 잠시 앉아있었다. 친정으로 목적지를 바꾸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동생과 친구를 만나서 밥을 먹었다. 옛날이야기, 재판이야기를 하면서 의견을 나눴다. 갑자기 집에 온 나를 보고 엄마가 놀라셨다.
"서울에 일이 있어서 나왔다가 휴가라 집에 왔어."
엄마는 여전히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밖에 풀을 뽑고 밥을 하고 출근 준비를 하셨다. 나 때문에 늦게 주무셨는데 일어나는 시간은 같다. 내가 좋아하는 된장찌개와 호박잎 쌈을 차리셨다. 내 집에서 안 넘어가는 새벽밥이 친정에 오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먹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하늘이 맑은 고속도로를 달렸다. 휴게실에 들러 잠을 쫓는 커피와 군밤을 샀다. 아들이 좋아하는 도넛도 포장했다. 차에 바로 돌아가기 싫어서 벤치에 앉았다. 요 며칠 사이에 밖에 앉아서 음료를 마실 만큼 시원해진 날씨다. 가을이 여름 뒤에 숨어서 오고 있다. 빈손으로 간 것이 미안해서 엄마가 좋아하는 과일을 주문했다. 휴가철이 지나서 인지 사람들이 적었다. 혼자 떠난 조용한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여유 있게 커피와 군밤을 먹었다.
"여보세요. 어디여?"
"아직 서울도 도착 못했어. 3시간은 걸려. 무슨 일 있어?"
아침에 헤어졌고 아직 직장에 있을 엄마 전화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걱정스러웠다.
"왜 그렇게 일찍 갔어."
엄마가 다니는 일터 창문으로 우리 집 마당이 보인다. 엄마는 나만 두고 먼저 출근한 것이 맘에 걸려서 우리 집 마당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마당에서 네 차가 나가는 거 보다가 혼자 가면서 우는 건 아닌지 싶어서..."
엄마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전화기 너머 울고 있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그동안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와 작년에 남편이 떠났을 때 엄마가 통곡하는 것을 봤다. 물론 긴 세월, 눈물짓는 날이 많았을 것이다. 다만 자식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하셨을 것이다. 그런 엄마가 울고 있다.
"엄마가 사위를 못 잊어서 눈물이 나는 거 같은데. 엄마처럼 힘들게 안 살아 걱정 마. 다음부터는 혼자 안 갈게."
나는 태연하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기억을 떠올렸다. 술 손님 잔뜩 데려워서 꽐라 된 상태로 뻗어서 자던 남편, 운전할 때마다 짜증 냈던 남편, 풀대신 꽃나무 죄다 잘라 놓고 내 탓하던 남편, 화장실 청소는 안 하던 남편...... 울지 않고 고속도로를 안전하게 달렸다.
집에 도착했다. 깜박하고 집안으로 들여놓지 못한 단호박, 토마토, 참외, 옥수수가 보였다. 데크 위에 한 줄로 서서 나를 기다렸다. 시간이 가는 것을 기다리다 보면 이렇게 열매를 맺고 익어가는 것처럼 내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잊고 싶은데 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나와 가족을 아프게 한다.
남들에게는 잊히고 오염된 이야기로 전달되는 검정고무신 작가 이우영의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