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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Nov 07. 2024

처음이자 마지막 제자들에게

졸업 작품 전시회

 

"사모님 안녕하세요. 지난주 수요일이 대학 30주년이었고, 행사일에 맞춰서 교내 갤러리 공간에 첫 번째 학생작품전이 열렸습니다. 많은 학생과 외부 손님들이 갤러리 공간과 작품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더불어 갤러리 초입에 부착된 기부 관련 현판도 읽고 지나가서 여러모로 의미가 있었습니다. 영상과 사진 공유 드립니다. 그리고 다음 주 6일 수요일부터 11일 월요일까지 이우영 교수님의 첫 제자인 3학년 학생들의 졸업 전시가 인사동 인사아트플라자갤러리에서 개최됩니다. 오프닝 행사는 6일 수요일 오후 4시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졸업 전시 도록에는 졸업 위원장인 학생 대표가 이우영 교수님에 대한 감사함도 담았습니다. 초대장을 파일로 보내드립니다."

남편이 근무했던 대학에 웹툰만화과 교수님이 전시회 소식을 전해왔다.


"감사합니다. 수요일에 참석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지난 3년,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모님. 이우영 교수님께서도 이 결실을 보셨어야 하는데.... 참 많이 아쉽습니다."


남편이 떠나며 나에게 남긴 빚 중에 재판과 우리 삼 남매 말고도 학교의 학생들이 있었다. 물론 이것은  내가 느끼고 판단한 빚이다. 남편 때문에 그 학교를 선택했고 남편의 강의를 기다리고 있던 학생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당시에 많은 분들 도움으로 갑작스러운 장례를 마쳤고 편안한 곳에 남편을 안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출도 많았고 변호사를 추가 선임하는 비용과 후원받아하기로 한 전시회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 경제적으로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나는 전시회 비용이나 대출 상환은 뒤로 미루고 남편 제자들을 위한 장학금을 기부했다. 웹툰 만화과 학생들을 위해 써주기를 바랐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혼란스러웠을 학생들에게 남편 대신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내 손을 떠난 기부금은 교수님들의 고민으로 넘어갔다. 소모품처럼 없어지기를 바라지 않았던 교수님들과 학교 노력으로 전시 공간이 마련되었고 30주년 행사로 첫 번 째 전시회가 열렸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갤러리 입구에 남편 이름이 새긴 현판이 걸렸다. 갤러리 존재 기간은 알 수 없지만 학생들에게 필요한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졸업 전시회 참석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화환 먼저 주문했다. 리본에 써야 하는 문구몇 번 썼다가 지웠다. 웹툰 만화과 교수였던 이우영, 검정고무신작가 이우영 모두가 어색했다. 결국 볼 사람들만 볼 수 있는 카드로 대신했다. 자랑스럽고 미안하고 고맙다. 어디에 있어도 웹툰만화과 졸업생들을 응원하는 이우영이라고 마무리했다.


남편을 대신해서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를 마무리하는 마음을 담고 인사동으로 출발했다. 졸업 전시회가 열리는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은 남편과 학과장님의 공동 전시회를 앞두고 미리 둘러봤던 그 갤러리였다. 그날도 날씨가 추웠다. 그러고 보니 내 외투도 그날과 같았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많을 것이다. 추억 속에 더 빠져들기 전에 전시회 안내부터 영상으로 찍기 시작했다. 잊지 않고 초대해 준 교수님들과 제자들에게 축하 인사를 하고 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지만 남편 인생 이야기 속에 50분의 1을 차지한 제자들의 성장 이야기를 담는 것도 중요했다.


2층, 전시회장 입구가 눈에 들어오자 울컥하는 마음에 걸음을 잠시 멈췄다. 표정을 정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나를 알아보는 작가님 겸 교수님이 반갑게 맞이해 줬다. 교수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학생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그림과 이름을 며 전시장을 둘러봤다. 남편 책상 옆에 붙어있던 익숙한 이름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보다 잘 그리는 애들한테 뭘 가르치지? 수업할 게 없어. 내가 배워야지."

가르치는 일을 어렵게 생각했지만 남편은 학생들을 같은 눈높이로 대했다.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남편 말대로 아이들은 훌륭했고 남편이 떠난 혼란스러운 시간을 다른 교수님들과 잘 이겨냈고 멋지게 성장했다. 남편이 없어 아쉽지만 감사한 날이다.


오프닝이 시작되었다. 축하 인사 마지막은 학생 대표가 했다.

"마지막으로 故 이우영 교수님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저희 교수님으로서 주신 많은 보살핌과 관심 덕분에 만화가로 나아가는  길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학생에서 후배 만화가가 되어 교수님이 나누어주신 씨앗을 품고  큰 나무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담담하게 스승을 찾는 제자의 호출에 내 가슴은 뻐근한 통증이 전해졌다.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눈물을 삼키고 또 삼켰다.


지금도 새벽에 집을 나서던 남편 뒷모습, 지친 모습으로 밤늦게 퇴근하던 남편이 떠오른다. 신학기 준비로 바빠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사무실에 짐을 옮기던 그날이 떠오를 때면 여전히 괴롭다. 적성에도 안 맞고 몸도 힘든데 하지 말라 말리지 않고 잘할 수 있다고 격려했던 나를 원망했다. 붙잡는다고 잡히고 말린다고 그만둘 사람은 아니었지만 지나고 나니 후회는 내 몫이었다.


그런데 오늘 1년이었지만 본인이 부족한 선생이라 인정하고 최선을 다했던 남편을 스승으로 기억해 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제자들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 훗날 남편이 잊히더라도 오늘 그 안에 있던 제자들이  남편을 기억해 주고 훌륭한 작가로 성장한다면 그 어떤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오늘 바람으로 왔을까? 꽃 한 송이로 그곳에 머물고 있을까? 어떤 모습이든 그는 제자들을 응원할 것이다. 나 또한  그들의 성장을 기도하고 작품으로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무거웠던 내 마음의 짐 하나를 내려놓고 전시관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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