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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준비 중입니다.

by 앞니맘


1월에 군에 간 둘째가 첫 휴가를 나온다.

주말부터 마음이 바빠졌다. 청소부터 시작했다. 특별한 청소는 아니었지만, 책상을 정리하고 피아노 위 먼지를 닦았다. 침구도 새로 빨았다. 아이가 집에 머무는 시간은 하루 남짓, 나머지는 오고 가는 데 쓰고 친구들을 만날 거라고 했다.

“뭐 먹고 싶어?”
“부대 밥 좋아서 딱히 먹고 싶은 건 없어요. 음… 치킨? 김치찌개?”

치킨을 포장해 와 집에서 편하게 먹고 싶단다.

그 말대로 정말 치킨만 먹으면 되는 건지, 김치찌개라도 끓여야 할지 고민이 생겼다. 뭐든 괜찮다지만, 엄마 마음은 간단하지 않았다.

“몇 시에 도착해?”
“4시쯤이요.”

하필 그 시간은 내가 차량 운행 중일 때였다. 큰아이는 예비군 훈련 중이라 도와줄 수 없었다. 급히 사람을 알아봤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아들, 엄마가 그때 운전 중이라 터미널엔 못 갈 것 같아. 택시 타고 유치원으로 와 줄래? 5시면 끝나. 형은 예비군 끝나는 게 6시래.”
“5시에 맞춰 도착할게요. 걱정 마요.”

별일 아닌 문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남편이 있었더라면 이런 날 먼저 대기하고 있다가 마중 나갔을 것이다. 현장 체험이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아이들을 챙긴 건 늘 남편이었다. 나는 직장에 매여 있어 아이들 일정에 맞추는 것이 어려웠다. 남편도 만화 작업 흐름이 끊기면 예민해지곤 했지만, 그래도 서로서로 채우며 살아왔다. 아이들도 아빠가 오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데 오늘은 없었다.


남편을 잊고 살다가도, 순간순간 그리운 날이 있다.

오늘처럼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은 늘 과거의 시간을 다시 살아내는 일이기도 하다.
없는 사람이 더 그립고 아쉬운 것,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아들은 “김치찌개랑 치킨이면 충분해요”라고 했지만, 나는 뭐라도 하나 더 해 주고 싶었다. 산딸기가 열린 밭으로 향했다. 검붉게 잘 익은 것들만 골라 땄다.

‘이건 부대에선 못 먹겠지?’


오후, 유치원 문을 나서는 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나를 보고 경례 대신 손을 흔드는 아들이 있었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모습을 보는 순간, 꾹 눌러놨던 눈물이 결국 터졌다. 걱정할 것 하나 없이 밝고 건강한 얼굴, 내 아이는 그렇게 내 앞에 서 있었다.


“아빠, 저 왔어요.”

집에 들어선 아들이 남편의 사진 앞에서 인사를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사진과 아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자, 가방 한번 열어 보자.”

무거워 보이던 가방 속에는 영양제와 달팽이 크림이 들어 있었다.

“하나는 이모 주고, 하나는 엄마 써요. 다음엔 다이아몬드 크림 사 올게요. 그게 그렇게 좋다던데요.”

“오빠, 내가 부탁한 크림 우동은?”
막내가 가방을 뒤졌다.
“살쪄.”
“뭐래?”

오랜만에 들려오는 흔한 남매의 대화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늘은 치킨 두 마리를 시켰다.
“오랜만에 알코올 좀 섭취해야겠어요.”

아들이 내 잔에도 맥주를 따랐다.
큰아들과 막내는 콜라로 잔을 채웠다.
치킨을 뜯으며 우리 가족은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엄마는 너희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을 할 뻔했다. 그저 아이들 먹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예전엔 두 마리가 많았는데, 오늘은 싹 먹었네.”

아들이 부대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무탈하게 지내고 있다니, 마음이 놓였다.자식은 부모가 믿는 대로 큰다고 했던가? 내가 믿은 대로 자라 준 아이가 고맙기만 하다.


곧 상금 3만 원을 건 삼 남매 노래 대결이 시작됐다.
각자 세 곡씩 부르고, 평균 점수로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 물론 상금은 내 지갑에서 나간다.

“1위는? 과연~~~!”

미움도 원망도 다 잊고, 감사만 남은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빈자리를 견디는 법을,
우리는 매번 새로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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