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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밤처럼 굴러온 인연들

by 앞니맘

올 추석에도 제자들이 찾아왔다.
그들의 방문은 나와의 인연으로 시작된, 남편과의 추억이 함께 소환되는 날이다.


연휴 첫날에는 올해 엄마가 된 첫 제자, 민정이가 아기와 남편을 데리고 오기로 했다.
나는 아기를 기다리며 창틀을 한 번 더 닦고, 작은 매트를 꺼냈다. 한 달 전부터 약속한 만남이었다.


“선생님, 추석에 몇 시쯤 만날까요?”

“우리 집에서 점심 먹을래? 반찬 딱 하나만 해서 밥 먹자.”
“선생님이 만들어주시는 거면 다 좋아요.”


나는 제자를 위한 돼지갈비김치찜을 준비했다.
묵은지를 꺼내 양념을 걷어내고, 매실액과 마늘, 청주로 간한 돼지갈비를 김치로 돌돌 말았다.
그 위에 두부를 얹고, 참기름과 멸치액젓으로 버무린 양념을 다시 올렸다. 시간을 맞춰 끓이기만 하면 되는, 마음이 담긴 밥상이었다.


도착 전에 나는 먼저 식사를 마쳤다. 민정이의 밥시간 동안 아기를 봐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생기면 밥 한 끼 편히 먹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나는 알고 있다.

“선생님은 안 드세요?”
“난 먼저 먹었어. 아기 이리 줘. 많이 먹어.”


나는 농사진 마늘과 쪽파를 챙겨주고, 이유식에 쓰라고 마당에 떨어진 알밤도 주웠다.
“알밤 줍는 거, 진짜 오랜만이에요.”
민정은 엄마가 되고, 나는 제자에게 엄마 같은 마음이 되었다.


저녁에는 가족 같은 남매, 성미와 영철이가 들렀다.
에그타르트와 과자를 두고 바삐 돌아갔지만, 그 짧은 인사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했다.


다음 날은 시댁에 다녀왔다.

아들은 할아버지와 새로 이장한 가족묘를 찾았고, 딸은 서재를 둘러보며 아빠의 흔적을 더듬었다.


추석 전날, 아이들과 송편을 만들었다.
씻어 말린 솔잎 위에 송편을 올리고 찜통을 덮자, 솔잎 향이 집 안에 가득 퍼졌다.

오후에는 서울에서 슬기가 찾아왔다. 딸이 좋아하는 두바이 초콜릿과 용돈을 건네며 웃었다.

슬기와 비 내린 길을 걸었다. 우리는 산책길에 굴러다니는 알밤을 주워 담았다.
“우리의 욕심을 보여주자.”
비닐봉지에 밤이 차오르듯, 밀린 이야기들도 하나씩 채워졌다.

“엄마께 비밀인데, 장편영화를 준비하고 있어요.”

어렵고 긴 길 위에서도 꿈을 놓지 않는 제자가 자랑스러웠다. 나는 그 아이의 영원한 후원자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추석 아침, 딸이 만든 도자기 접시에 송편을 담아 남편 영전에 올렸다. 합동 차례를 위해 아이 둘과 법당으로 향했다. 내년 추석에는 세 아이 모두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가 되면 밤송이에서 툭 떨어진 알밤이 굴러 나에게 오는 것처럼, 제자들이 내게로 온다.
남편이 없어도, 아들이 없어도, 외롭지 않은 추석을 만들어준 소중한 인연들.

나는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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