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들 휴가에 맞춰 2층 방을 정리했다. 정리를 끝낸 방은 아빠의 흔적과 아들 물건이 함께 머무는 공간이 되었다.
"엄마, 나왔어."
군복 차림의 아들이 커다란 가방을 메고 들어섰다. 안아주려던 내가 오히려 품에 안겼다. 두 번째 휴가, 아들이 먹고 싶다는 건 김치찌개였다. 나는 전날 시장을 보고 일찍 퇴근했다. 김장김치에 새우젓으로 간을 한 찌개를 끓였다. 텃밭에서 뜯어온 가을 상추도 식탁에 올렸다. 밭에서 따온 대추와 포도, 토마토, 귤 집 안의 모든 과일을 꺼내 식탁을 채웠다.
“우리 집 김치찌개 냄새 좋다.”
콩과 밤을 넣은 밥과 찌개 한 냄비뿐이었지만, 식탁은 어느 때보다 풍성했다.
식사 후, 아들이 선물을 꺼냈다. 나는 화장품을 받았다. 비싼 화장품이라고 강조했다
“엄마는 노화가 멈췄어. 혹시 연애해?”
“그렇지? 이뻐졌지?”
아들의 장난 섞인 말에 웃음이 터졌다.
건강검진 후 걷기에서 달리기로 운동을 바꿨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은 운동화를 보더니 바로 새 러닝화를 주문했다.
“운동 열심히 하라고 드리는 선물입니다.”
“역시 군인이 제일 부자네.”
딸과 큰아들은 부럽다며 본인들 필요한 것도 이야기했다. 오랜만에 거실에 웃음이 터졌다.
"다 큰 애들이 뭐야. 정신없어."
식탁을 정리하는 등 뒤로 쿠션이 날아다니고,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층간소음 걱정 없는 주택이 새삼 고마웠다.
설거지를 마치고 돌아보니, 아들이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삼 남매가 번갈아가며 건반 위를 누르며 서로에게 조언을 구했다.
이야기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선임이 떠나는 날 눈물이 났다는 이야기, 여자친구 때문에 괴로워하는 후임의 사연까지. 세 남매의 웃음소리가 오랜만에 집을 가득 채웠다.
휴가 3박 4일 중 가족과 함께한 시간은 단 하루.
아들은 다음 날 친구들을 만나러 서울로 올라갔다.
“이제 짧게 짧게 자주 나올 거예요.”
그 말에 서운하지 않았다. 잘 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독립할 시기에 떠났고, 나는 그 독립을 기꺼이 응원했다. 그리고 이제, 나도 아들로부터 조금씩 독립하고 있다.
창문을 열자 10월의 바람이 스며든다. 그 바람이 신청해 준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10월에 어는 멋진 날'
나의 10월도 멋진 날들로 흘러가기를 바라며 바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