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명절 생활

by 앞니맘

“저희는 명절에 가족여행 떠나요.”

공항에서 인터뷰하던 사람의 말에 나는 전을 뒤집다가 중얼거렸다.

“지랄.”

부럽다는 말 대신 튀어나온 말이었다. 친정에도 내려갈 수 없던 내 상황에서 ‘바뀌는 설날 풍경’이라는 제목의 그 인터뷰는 나에게 그저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런데 3년 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종갓집 며느리라는 위치는 변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남편 차례만 지내면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마저도 절에서 지내니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떠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람들이 더 이상 부럽지 않다.

설 전날, 일찍 눈을 떴다. 올 사람도 없는데 집안 정리를 시작했다. 다용도실과 현관에 쌓아둔 박스와 플라스틱을 버리고 청소를 시작했다. 창문을 열자, 곧 봄이 올 것 같은 공기가 들어왔다.

청소를 마친 뒤 보리차 한 잔과 냉동실에서 꺼낸 찰떡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다음은 만두였다.

며칠 전 시댁에 가져가려고 준비했던 만두 재료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시댁에 가기 전날 탈이 나서 만두를 만들지 못했다.

“얼마나 만들까?”

잠시 고민하다 재료를 반으로 나누었다. 올해는 묵은지와 고기를 볶아 소를 만드는 방법을 따라 했다. 수분을 줄이고 양념이 잘 배도록, 유튜브에서 배운 방식이었다.

그때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만두해? 예전엔 명절이 그렇게 싫더니 막상 이렇게 되니까 그때 뭐가 그리 힘들었나 싶네.”

경상도 큰며느리인 동생도 상황이 달라졌다. 시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시면서 각자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모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나는 맡은 것만 하고, 딸기랑 망고 사러 마트 가는 중이야.”

세월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면서 명절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나는 남편 차례상에 올릴 만두로 가장 예쁜 것들을 골라 냉동실에 넣었다.

“얘들아, 만두 먹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딸은 입에 넣지 못하고 한참을 불어댔다. 오후 늦게, 우리는 찐만두로 배를 채웠다. 아이들 저녁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나는 영화 예매를 했다. 작은 영화관에는 명절 준비를 마친 내 또래 부부들이 앉아 있었다. 영화는 피로와 허전함을 잠시 잊게 해주는 괜찮은 선택이었다.

나는 이렇게, 내 방식으로 명절을 보내고 있다.

아마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만의 명절을 슬기롭게 보내고 있을 것이다.


작가님들,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가 되시길 또 한 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