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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Jan 20. 2024

나는 새댁 선생님의 민어탕이 되어줄 준비가 되어있다.


'결혼은 하지만 올해 임신계획은 없습니다.'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한 교사들의 메일을 살펴보다가 나는 마우스 클릭을 멈췄다.

이력서를 천천히 읽어 보았다. 2월에 새댁이 되는 경력 교사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신혼집을 마련하고 새로운 직장을 찾고 있었다. 면접을 보기로 약속을 정했다. 저출산 대책 발표로 방송에서는 계속 시끄러운데 현실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예쁘게 차려입은 선생님이 양손을 모으고 사무실 문 앞에서 인사를 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어요. 길은 밀리지 않았요?"

나도 교사 앞으로 의자를 내주면서 인사를 했다.

"추운데 따뜻한 차 드실래요? 맛있는 커피도 있어요."

스커트 위에 손을 올려놓고 깍지를 꼈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하는 선생님께 차를 권했다.

"커피 좋습니다."


나는 교사를 채용할 때 이력서만 보고 바로 면접을 보지 않는다. 메일을 통해 서로가 궁금한 점 원하는 조을 충분하게 소통 한 다음에 그래도 서로가 원하면 최종적으로 면접을 본다.


 그동안 교사채용을 하면서 나는 앉아서 기다리지만 면접을 보러 오는 교사들은 힘든 걸음을 해야 했다. 공고를 할 때 대략적인 내용만 공지를 하상세한 근무조건까지 올리지 않 때문에 면접이 필요하다. 그런데 몇 마디 얘기를 하다 보면 서로의 눈빛으로 '여기는 아닌데... 선생님은 아니구나. '를 느끼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상황들을 몇 번 경험하고 나서 이런 식의 만남은 모두에게 불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시간과 노력을 아끼는 방법으로 지금의 면접 방식을 선택한 것다.


"직접 와서 보고 더 궁금한 상황이 있어요?"

유치원을 둘러보고 난 후에 추가로 궁금한 사항이 있는지 물었다.

"메일로 문하기 어려운 부분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없습니다. 사실은..."

교사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끝을 흐렸다.

"괜찮아요. 편하게 말해요."

물 한 모금을 마시다가 테이블 위에 컵을 내려놓으면서 경청할 태도를 갖추고 말했다.

"사실은 집 가까운 곳에  이력서를 넣지만 경력도 있고 결혼도 한다고 하니까 면접 기회조차 주지를 않더라고요."

말을 하던 선생님은 눈물이 핑 돌아서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래서 임신계획이 없다고 썼어요? 임신이 그렇게 맘대로 되는 줄 알아요? 임신해도 괜찮아요. 많이 낳아야 유치원도 살아남죠."

나의 농담 같은 진담에 '그렇다.'라고 우리는 마주 보면서 웃었다.


"우리 선생님들이 '라떼는...' 금지라고 정해줘서 옛날 얘기는 하지 않을게요. 그래도 한 가지 말면 저는  남매 자연분만 했어요. 삼 남매 모두 다 유치원 퇴근하고 가서 아기 낳어요."

나의 라떼를  한 가지만 소개했다.

"정말요?  대단하세요."

교사의 눈이 초롱초롱해지면서 '밭에서 풀을 뽑다가 아기 낳고 와서 뽑던 풀을 계속 뽑았다.'는 동네 할머니를 바라보던 내 표정처럼 나를 쳐다봤다.

"나처럼 하라는 뜻은 아니니까 겁내지 말고 일하세요. 언니 선생님들이 잘해줄 거예요."

3월이면 2월에 새댁이 된 선생님과 함께 근무하게 되었다. 어쩌면 내 말에 용기를 얻어서 허니문 베이비를 품고 올 수도 있지만 나는 절대 걱정하거나 긴장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정부지원에는 사립유치원 교사 인건비 지원은 따로 없다. 유아들 각자에게 지원해 주는 학비지원 형식으로 지원이 된다. 유아 숫자만큼 지원을 받아서 운영을 하다 보니 유아는 줄고, 우리처럼 평범한 유치원은 학부모부담금도 적어서 운영이 점점 어려워진다. 경력이 많은 교사는 급여에 대한 예산이 올라가기 때문에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꺼리는 것이 이해가 된다. 더구나 임신하면  엄마들이 불편해한다. 본인들이 임신과 출산을 겪어 봤으니 임신 한 담임교사는 꺼리는 것이다.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유치원현장에서 곧 새댁이 되는 교사를 원하는 유치원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해가 되면서도 참 씁쓸한 현실이다.


"라떼는 말이야."

90년 대 여성에게 결혼과 임신은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때 대부분의 학부모들도 전업주부였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결혼을 했고 3남매를 출산했다.  

"자기야 나 오늘 설렁탕이 땡겨."

퇴근하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설렁탕이 왜 땡기지? 설마, 둘째 나오는 거 아니야?"

남편과 저녁으로 설렁탕 한 그릇 먹고 와서 산부인과로 다시 출근하듯이 짐을 싸서 나오는 일을 반복했다.


출산 전에 휴가를 내고 쉬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고 큰아이는 출산 후에 2주도 쉬지 못하고 출근을 했다. 둘째는 4주가 되기, 친정에 남편과 아이 둘을 맡기고 연수를 가야 했다.


우리 유치원에서 결혼과 출산을 한 교사는 내가 처음이었다.  내 윗분으로는 속세를 떠나서  결혼과 출산과는 거리가 먼 비구스님,  지금의 이사장스님뿐이었다. 총무원에 출근을 하셨고 큰 사찰 주지까지 하시면서 매우 바쁘셨다. 유치원 운영에는 관여를 하지 않고 나에게 다 맡겨놓은 상황이었다. 그러니 나에 출산휴가를 내가 처리하고  업무도 대신해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쉴 수가 없었다. 그때만 해도 30대라서 견딜만했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생각했었다.


그 쯤 잠깐 자격증 때문에 근무했던 나이가 40대로 미혼이었던 교사가 나에게 했던 말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선생님 힘들지 않아?  나는 자신이 없다. 애 낳고 직장 다닐 거면 나는 결혼 안 해. 아파도 가족들 챙기느라 제대로 쉴 수가 있기를 하나. 결혼하면  귀찮기만 하지."

걱정인양 비아냥 거리던 그  선생님에게 크게 화가 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그 선생님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맞아요. 선생님은 혼자서 멋지게 사세요. 결혼은 미친 짓이에요. 제가 미쳤잖아요."

머리를 막 헝클어가면서 교사실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런데 더 웃기는 사실은 그 선생님이 50이 다 돼서 결혼을 했다. 아마도 직장도 다니지 않고 아기도 낳을 필요 없이 편안한 노후를 보낼 상대를 찾았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서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 사립유원에도 공립유치원처럼 대체교사를 쓸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주었다. 나 말고는 모두 미혼이었던 우리 유치원에 겁 없는 막내선생님이 결혼을 하고 출산 휴가라는 것을 처음 받아서 몸조리를 하러 집으로 떠났다. 출산 휴가를 보 낼 수 있는 상황이 나는 참 기뻤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선생님, 뭐 하세요?"

졸업생 학부모인 서진이 엄마가 사무실 문을 열면서 나를 찾았다.

"어떡해요. 나 임신했어요."

나는 사무실 바닥에 몸을 옆으로 세우고 누웠다가 일어나면서 서진이 엄마인 것을 확인하고 어린아이가 투정하듯이 말했다.

"정말요?"

황당한 서로의 표정을 보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따라쟁이구나."

늦둥이로 예쁜 셋째 딸이 있는 서진이 엄마를  부러워했는데 43세에 내가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괜찮아요. 우리 F4가 키워줄게요."

당장 유치원을 그만두라는 말 대신 나를 안고 토닥여 주었다. 졸업한 학부모 중에 나를 포함한 엄마들 네 명이 만든 모임이 F4였다. 남편이 원고 마감이나 외부와 약속이 있을 때는 약속대로  F4가 우리 막내를 수시로 와서 봐줬다.


첫아이 출산 이후에 13년이 지났고 대체교사 제도가 생겼지만 그동안에 나는 원장(관리자)이  되어 있었다.

"출산 휴가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어서 문의드렸습니다.  대체교사는 일반 교사만 쓸 수 있나요? 원장은 안 되나요?"

나는 소속을 히지 않고 교육청에 문의했다.

"원장님이 출산을 해요?"

담당자의  억양에 '원장 몇 살인데 임신을 하냐?'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학교 기준으로 만들어진 대체교사 제도가 교장이나 교감까지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몸이 젊은 교감이나 원장, 아니 임신이 가능한 관리자도 있지 겠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알겠습니다. 40넘은 원장이 임신해서 죄송합니다.'는 심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또 보호받을 수 없는 제도권 밖에서 세 번째 아이 출산을 준비했다.


 출산이 다가오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야근을 하기 시작다. 게 까지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데 전화벨이 울다.

"여보세요."   

늦은 시간이라서 유치원 학부모는 아닐 것 같았고 집에서 온 전화 다.

"장선생님 지금까지 일혀요? 밥은 먹고 하는가요?"

이사장스님 이다.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전화 하신 것이다.

"출산하러 가기 전에 미리 해야 할 일이 많아서요. 이제 가려고요."

"이제 박 선생한테 맡겨도 되지 않나? 힘들어서 되겄어요?"


노산은 여러 가지로 불편다. 임신성 당뇨 판정을 받았다. 출산 전까지  병원에서 짜준 식단에 맞게 도시락을 싸서 출근다. 다행히 인슐린은 맞지 않고 출산을 했다. 당뇨식을 하다 보니 배 나오는데 살은 찌지 않았다. 주변에서 '임산부가 살이 너무 없다.'라고 걱정을 많이 했다.

"뭐 맘대로 못 먹는 건가?"

주차장에서 만난 스님이 무심하게  말씀하다.

"당뇨식 먹어서 그래요. 아기는 잘 크고 어요. 이 나이에 살 많이 찌면 출산하고 더 걱정이죠."

나는 아무러지 않게 대답했다.

"그 말이 맞기는 하지."

스님도 비만이 더 문제라는 얘기로 말을 돌리셨다.


"원장님 오늘도 도시락 싸왔나? 오늘 점심 여기 와서 먹지. 멀리 사는 신도가  몸에 좋은 걸 보냈어요."

그날은 내가 싸 온 도시락을 두고 스님방에 올라갔다. 이미 손님들이 몇 분 와 계셨다.

"원장님은 저쪽상에 앉으세요. 비릴까 봐 신경 썼어요. 당뇨에 좋으라고 간도 거의 안 하고 채소도 많이 넣어서 끓어요. 스님이 원장님 생각 많이 하세요. 천천히 많이 드세요."

공양주 보살이 따로 차려놓은 상으로 나를 안내하면서 말했다.

"스님이 원장님만 특별 대우 하시네요."

반대쪽에 스님과 앉아 있던 신도분이 말씀하셨다.

"뭔 특별 대우여. 당뇨라서 매일 도시락만 먹어서..."

투박하게 대꾸하시고 미나리도 무도 맛있다고 빨리 먹어보라고 재촉하셨다. 

 "민어탕이구나."

동태탕 외에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비리지 않고 정말 맛이 좋았다. 오랜만에 맛있는 밥을 먹었다.


20대에 인연을 맺은 교사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엄마로 성장하고 마흔이 넘어서 늦둥이를 갖고 종종거리며 다니는 나를 민어탕으로 위로해 주는 날이었다.


뽀얗게 우러난 국물에 채소를 가득 넣어서 담백하게 끓여 주신 어탕 스님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동안 챙기지 못했던 20년의 마음을 한 번에 담아 끓여 낸 국물은 진하고 시원했다.


그 민어탕으로 보양을 하고 야근은 계속되었다.

"딸아, 힘들지?  엄마가 미안해. 조금만 참아줘."

비 오는 밤,  늦은 퇴근길에 뱃속에서 계속 뭉치는 아이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날 새벽  35주도 채우지 못하고 2.5킬로그램, 늦둥이 막내를 만났다. 하지만 민어탕 때문이었을까? 아이는 작았지만  힘도쎄고 울음소리도 다. 자가호흡도 문제가 없어서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 않았다.  


정부의 출산 대책이 성공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현장에서 다둥이 워킹맘으로 살았던 내가 '임신 계획은 없다.'는  새댁 선생님의 든든한 민어탕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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