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관계의 시작, 나의 가장 깊은 뿌리
나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등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내가 어렸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은 조금 더 울퉁불퉁해진 피부.
문득 그 모습이 생각나 내 손등을 한 번 바라보았다.
아직 큰 굴곡은 없지만 조금 잔주름이 생긴 것 같다.
손등 피부만큼은 보드랍고 매끈하다는 자신감이 있었건만.
나도 이제 나이가 드나 보다.
자글자글한 주름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조금 속이 상했다.
내 마음도 이런데, 할머니는 손 위로 늘어가는 실금들을 보며 어떤 심정이었을까.
할머니에게서 뽀얗고 철없던 할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잠들던 밤들이 떠올랐다.
언니, 동생들과 개구리를 잡으며 뛰놀고 어머니를 따라 나물 캐러 다니던 시골 소녀.
나는 알지 못하는 그 시절, 부잣집 최가네 넷째 딸은 어떤 소녀였을까?
다른 건 몰라도, 본래 새하얀 피부를 가진 우리 할머니는 아마 그때 손이 참 예뻤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내가 아는 그 소녀의 인생은 슬프게도 어여쁨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할아버지의 병환으로 한창 젊은 시절 외벌이를 시작한 할머니는 과수원에서 품삯을 받으며 일했고, 또 겨울에는 공장일을 해가며 아버지를 키우셨다. 그리고 나이 들어서도 자식에게 기대지 않기 위해 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낯선 서울 땅으로 올라가 장사를 시작하셨다.
여린 몸 하나로 평생 일해 온 가족을 먹여 살리셨을 할머니.
그 어리고 고운 손에 하나, 둘 깊은 주름이 새겨질 적마다 얼마나 차갑고 모진세월을 견디셨을까.
평소엔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았던 할머니의 울퉁불퉁 거친 손이 떠올라, 어느새 목이 쿡 메더니 눈가가 뜨거워졌다.
나름의 고충과 힘듦이 있을지라도 에어컨 빵빵한 사무실에 앉아 인생이 고달프다 말하는 내가, 어느 부분에서는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올해로 80세를 맞이한 지금은 가끔 이해할 수 없는 고집을 부리기도 하며 가족들의 걱정을 사는 우리 할머니. 하지만 그런 고집으로 악착같이 온갖 풍파를 견뎌냈기에 우리 가족이 버텼고, 또 내가 태어날 수 있었다.
지금은 지병으로 일주일에 세 번 병원을 오가며 투석을 해야만 하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할머니께 나는 의지가 될 만큼 다정하고 세심한 손녀가 아니다.
주신 사랑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마음.
나는 아마 앞으로도 그 커다란 은혜에 응당한 보답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그러지 못할 것을 알더라도,
이번에 할머니를 만나게 되면 그 주름진 손에 꼭 좋은 향기가 나는 핸드크림을 발라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