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이 '세이푸'가 된 이유
이방으로 가면 쪼르르 저 방으로 가면 쪼르르.
걷다 말고 휙 돌아보면 멈칫하고서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동글동글한 여섯 개의 검은콩.
아침에 부스스 겨우 눈을 뜨면, 엉덩이를 반갑게 씰룩거리면서 뽀글뽀글한 얼굴을 내 옆구리에 비빈다.
그리고 벌러덩 배를 내놓는다. 밤새 잠만 잤으니 이제 만져달라는 뜻이다.
이건 그들만의 아침인사다.
거실 한쪽에 놓인 작은 나만의 공간에 앉아 한참 글을 쓰다 문득 뒤를 돌아보면, 기대에 찬 두 얼굴이 나를 바라본다. 그들의 퍽 애달픈 표정이 말한다.
'이제 그것 좀 그만하고 나를 좀 봐주실래요?'
그들은 졸음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나를 예의주시한다.
정신없이 자다가도, 내 작은 움직임 하나에 귀를 쫑긋 세운다.
눈물 많은 내가 영화를 보다 울음을 터뜨리기라도 하면, 녀석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어쩔 줄 모른다.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내 손을 핥으며 눈치를 보다 코를 킁킁 얼굴로 들이민다.
"아이, 귀여워."
하고 쓰다듬으면 곧장 달려가 자기가 좋아하는 수면양말을 찾아 물고 온다.
복슬복슬한 갈색 털 사이로 반짝이는 두 눈동자.
파란색 양말을 물고 선 작은 그 몸짓에 담긴 의미를 나는 안다.
'한번 뺏어보시지?'
그 신호와 함께 내가 양말을 가로채려 들면 날렵하게 휙휙 고개를 돌리고, 다시 들이밀었다 도망치기를 반복하며 나를 약 올린다.
아,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내 마음을 간질간질 녹여주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 0.1초도 고민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다.
"우리 강아지들이요."
이번 글에서는 순둥순둥의 끝판왕 곰돌이(가명, 푸들)와, 애교만점 뽀뽀쟁이(가명, 말티푸).
내가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 동안 눈 마주치며 사는 이 두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때는 3년 전 겨울.
나는 강아지들을 입양하면서 난생처음 '모성애'라는 걸 경험했다.
내 평생 누가 밥 먹는 모습을 그렇게 뿌듯하게 지켜본 적이 없었다.
또 강아지가 조금만 아파 보여도 병원으로 달려가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동물병원 선생님께서는 세상 심각한 나를 보면서 껄껄 웃으셨다.
갓난아기를 키우는 엄마처럼 하루 종일 곰돌이와 뽀뽀쟁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고민하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곰돌이가 먼저, 그리고 몇 개월 후에 뽀뽀쟁이 우리 집에 왔기 때문에 전문서적까지 읽어가면서 두 강아지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주려 노력했다.
그 결과는 성공이었다. 원래 두 녀석이 착한 마음씨를 가진 덕분이겠지만, 나도 작게나마 보탠 것이 있다고 믿고 싶다. 어쨌든 지금 두 강아지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어째서 나와 다른 종인 이 녀석들이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 있나.
또 어떻게 그들은 나에게 온 마음 바쳐 의지할 수 있을까.
그게 참 궁금해서 관련된 책들과 전문가들이 찍어놓은 영상들을 찾아보는 게 취미가 되었다.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온 늑대와의 공생관계.
하지만 실제로 함께 사는 입장에서 그 사실을 되새겨보면 정말 믿기 어려울 따름이다.
나는 마구 애교 부리는 뽀뽀쟁이를 보면서 묻는다.
"에게? 네가 늑대의 후손이라고?"
그러면 뽀뽀쟁이는 그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내 얼굴로 달려들어 마구 뽀뽀를 해댄다.
곰돌이와 뽀뽀쟁이가 사냥놀이를 하거나 싸움놀이를 하는 걸 보면 마치 자기들이 맹수라도 되는 냥 사나운 척을 해댄다. 하찮은 이빨을 있는 힘껏 드러내는 그 모습이 내 눈엔 그냥 멋모르는 아기들일뿐이다.
만약 다른 종의 동물들이 본다면, 우리는 마치 악어와 악어새 같은 존재일까.
유전자 깊숙이 새겨진 유대감.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빛을 읽는다.
우리가 그들을 그냥 한 생물 개체로만 대할 수 없는 이유다.
혹자는 말한다.
"강아지 두 마리나 키운다고요? 아니, 먹고살기도 바쁜데 그걸 데려와 어쩌시려고..."
아주 가까운 사람부터 먼 사람까지 그런 걱정을 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얘들이 있어서 내 마음에 사랑이란 감정이 아직 존재한다는 걸 느껴요. 그건 당신도, 다른 누구도 해줄 수 없는 일이에요.'
강아지를 데려올 그 무렵, 나는 인간관계에 지쳐 기댈 곳을 찾았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건네준 마음을 상처로 돌려주지 않을 대상. 그리고 온전히 나를 믿고 사랑해 줄 대상.
그런데 뜻밖에도 이 관계는 내게 '의지할 대상' 그 이상으로 자리 잡았다.
강아지들과 쌓아 올린 이 애틋한 감정은 끝없이 부풀더니 곧 삶의 에너지로, 숨 쉬는 생명과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뻗어나갔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브런치스토리에서 활동할 필명을 정할 때, 나는 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따뜻한 감정을 전하고 싶었다.
나를 가장 따뜻하게 만드는, 언제나 나를 바라보는 여섯 개의 검은콩. 그들의 이름을 부를 때, 그 마음을 글에 담고 싶었다.
그래서 내 필명이 Saypoo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