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사랑, 시작은 창대하지만 끝은 미약하리라
생각해 보면 그리 많지 않은 연애 경험에서 나는 늘 진심이었다. 늘 최선을 다했고 늘 결혼까지 생각했으며
누구보다 행복한 연애를 나는 그들과 했었다. 내 인생 첫 번째 신랑감 후보는 나의 첫사랑 그 남자다.
다른 친구들은 과팅에 미팅에 너도 나도 신입생 때 사랑을 꽃피웠지만 나는 사랑이 늦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게 무엇인지 몰랐고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다는 친구의 고민이 몽상같이 느껴졌었다. 이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 우리는 대학 동기의 군대 휴가 모임 때 만났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었는데 늘 그렇듯 비 오는 날에는 집에서 뒹굴거리거나 친구들과 수다 떠는 걸 더 좋아하던 나에게 이런 약속은 마냥 귀찮은 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왜 이런 날에 밥을 먹자는 거야..' 역시나 심드렁하게 가게 문을 열었고 "여기야!" 하는 소리에 이끌려 고개를 돌렸다. 순간 거짓말처럼 온몸에 전율이 흘렀고 뻔하디 뻔한 레퍼토리처럼 사랑에 시니컬하던 20대 초반의 나는 그렇게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었다.
그 남자는 군대를 갓 졸업해서 까까머리를 가리느라 모자를 푹 눌러썼지만 하얀 피부에 한복이 잘 어울릴 거 같은 도련님 같은 남자, 내가 늘 이야기하던 이상형 같은 남자였다. 가슴이 쿵닥거렸고 눈이 마주치면 짜릿했고 웃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웃음이 나왔다. 연애 따위 관심 없고 내숭 따위 모른다던 시니컬한 여자는 어디 가고 도련님의 눈길을 끌어보고자 안간힘을 다하는 여자가 되어 그 앞에 앉아있었다. 맥주잔을 들 때 새끼손가락까지 살포시 들었으니 말 다했지. 나는 정말 첫눈에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간절히 두 손 모아서 기도했다. 매일매일 기도했다. 첫사랑에 가슴앓이 했던 순수했던 나는 세상에 있는 모든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이 남자와 제가 사랑에 빠지게 해 주세요! 우리가 운명처럼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같이 만났던 남자 동기에게 소개시켜 달라고 하면 더 쉬웠을 텐데 나는 그렇게 운명론자가 되어 우리의 운명을 기도했다. 몇 주 동안 매일 밤마다 어느 날은 달님에게 어느 날은 하느님에게 어느 날은 부처님에게 세상에 나를 도와주실 수 있을만한 모든 신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기도에 응답해 주길 간절히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을 나는 결국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