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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키키 Jan 28. 2024

작가님~
어찌 그리 사람 맘을 잘 아시나요

 사람들이 힘든 일이 있으면 뭔가를 찾게 된다. 그게 종교든 산이든 게임이든 아님 다른 뭔가.. 위로를 받고 싶고 동질감을 느끼고 싶고 또한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서~이런 게 힐링인가.

 난 늙어갈수록 박완서 님의 책에서 위안을 받는다. 그의 통찰력과 탁월한 글 솜씨, 신기에 가까운 나와 다른 사람의 심리묘사 가히 신의 경지인 듯싶다. 가끔 글을 읽다가 내 맘을 들켜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특히 부자의 위선이나 잘난 체, 자기 밑에 사람을 은근히 깔보거나 노골적으로 찍어 누르는 근성을 꿰뚫어 보는 표현을 보면 열렬할 동조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마 부자나 잘난 사람을 동경하고 부러워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열등감뿐이리라 그래도 어쩌랴~이렇게 라도 위안 삼고 싶은 것을...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서 작가는 주인공의 짧은 일탈을 다룬다. 결국 그건 아무 쓸모도 없는 혼자만의 자작극이 돼 어버렸지만 그 맘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남편은 멋과 낭만, 여유하고는 전혀 맞지 않는 뼛속까지 공무원의 모습으로 사는 재미없는 노년을 바로 보는 아저씨다. 그 남편의 벌어오는 수입으로 자녀를 키우고 생활해야 했지만 도무지 남편과는 맞지 않아 아이들의 교육을 핑계 삼아 서울로 이사를 나온다.  남들이 보기에 누가 봐도 수긍이 가는 별거이지만 졸혼이나 다름없지만 명목상 부부는 맞다. 

 

 다음은 글 속에서 남편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표현한 부분이다.

"그녀는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숨이 막혔다. 그가 담임 맡은 반은 온통 국민교육헌장으로 도배를 했고, 한 아이도 빠짐없이, 지진아까지 그걸 달달달 외우는 반으로 유명했다. 그걸 입술로만 외우는 게 아니라 뜻을 충분히 새겼다는 걸 알아보려는 경시대회가 군내에서 있었는데 그의 반은 거기서도 일등을 먹었다. 교감이 되고 교장이 된 것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거치면서였는데 그의 교장실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 사진이 가장 높은 정면에 으리으리하게 걸렸다. 그건 시골학교라서가 아니라 장관실이라 해도 아마 사정은 비슷했을 것이다. 문제는 갈등 없는 추종이었다. 마치 주인이 바뀐 노예처럼 주인의 이름이나 인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주인이라는 게 중요할 뿐이었다. - 중략 - 

 남편은 위로가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위로가 필요 없는 인간처럼 참을 수 없는 인격이 또 있을까. 그의 체제 순응은 강요된 것도 의도적인 것도 아닌 체질적인 거였다. 그의 매력 없음의 본질 같은 거였다. 그와 다시 합친다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생각하기가 싫어서였다."

 

 대충 주인공의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짐작이 간다. 뭔가 큰맘 먹고 말을 꺼내도 돌아오는 건 역시나 도저히 뚫을 수 없는 큰 벽을 확인을 하는 기분일 것이다. 

 

 그날은 둘째 아들의 대학 하계 졸업식이다. 유학 떠날 때까지만 처가살이를 하는 조건으로 장가를 보냈지만 아들 둔 시어머니로서 한껏 체면을 살려 보려 하지만 남편의 추레한 옷차림부터 영 신경이 쓰인다. 거기다가 보통이 아닌 안사돈의 화려한 언변과 은근히 자신을 낮추면서 결국은 딸자랑이나 집안자랑을 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 왠지 잘 키운 아들 뺏긴 분한 기분까지 들 무렵 급기야 안사돈한테 아들내외 제주도여행 티켓을 시어머니의 졸업선물처럼 보기 좋게 포장해서 하달하라는 명령 아닌 명령까지 받게 된다. 이건 "배려"라 포장한 "모욕"이다. 그러나 누굴 탓하랴~본가와 처가사이에 분위기 맞추려 알랑거리는 아들 모습이 왠지 미워 생뚱하게도 아들내외 비행기티켓을 들고 무슨 영문인지 알지 못하는 남편을 끌고 몰래 졸업식을 빠져나와 버린다.  

 얼떨결에 한강이 보이는 외곽에 있는 러브호텔로 자리를 옮긴다. 왠지 통쾌하고 스릴감 있는 소심한 복수에 흥분도 되었지만 그것도 잠시, 주도 면밀한 안사돈의 대처로 아들내외는 제주도여행을 무사히 떠났고 왠지 한없이 초라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뿐이었다.  이 와중에 세상모르고 자는 남편의 앙상한 정강이의 모기 물린 자국을 어루만지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피식 웃음도 나면서 왠지 많이 찔린다. 어려운 표현이나 온갖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우리네 삶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P.S) 나도 국민교육헌장을 열심히 외운 세대이다.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적어도 지금은 교실에 대통령 사진은 걸리지 않았으니 그만큼 세상은 좋아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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