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로 가야 할까? 네가 세상을 떠난 2018년으로?아니면 어리고 순수했던 수수하다 못해 촌스러웠던 1991년 대학 1학년때로 가야 하나 모르겠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때의 너한테 가서 뭐라고 얘기해 줄 수 있을까?
꿈 많고 기대 많았던 그러나 생각보다 별로였던 대학1학년 어색과 생소함, 무모함이 넘쳤던 시절 철주는 무척이나 느긋하고 귀여웠던 특유의 느린 말투와 해맑은 웃음이 좋았던 녀석이었다. 설렘을 안고 처음 간 학과 MT, 철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월등한 미모(?)로 심사위원 만장일치 "미스 산정(산업정보)"에 뽑혔다. 그때 정말 철주는 예쁘고 또 예뼜다. 화장이 유난히 잘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누구도, 언감생심, 단연코 미스 산정 "진"이었다.
어찌어찌 우리는 대학을 졸업했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각자 가정을 꾸리고 애들을 학교에 보내고 서서히 늙어갔다. 가끔 동기들 술자리에 만나서 누가 누가 잘 나가느니, 누구는 벌써 집을 사고, 누구는 아직도 솔로라느니, 누구는 우리랑은 연락을 끊고 신분세탁을 했다느니 참 웃픈 일 많다고 하면서 시시껄렁한 얘기를 하곤 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 누구보다도 건강 잘 챙기는 심지어 조기축구회 회원이었던 철주가 대장암 4기 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2주에 한번 만나 점심이나 저녁을 먹으면서 세상얘기 하는 것이 그게 고작이었다. 그나마 바쁘다는 핑계로 못 나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자주 못 본 게 많이 미안하고 후회가 든다. 철주는 점점 말라갔지만 식사자리에서는 누구보다도 밝아 보였다. 그렇게 몇 개월 남짓을 보냈다.
2018년 늦가을 무렵, 철주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왠지 그때 아니면 철주를 또 볼 수도 없을 것 같아 급히 병원으로 갔다. 아~~ 그때 철주를 안 봤으면 차라리 나았을까? 내가 "철주야~우리 왔어"라고 말했을 때 다른 친구들은 내 목소리를 철주가 알아듣고 대답을 했다고 했는데, 난 철주의 모습에 머리가 하얘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날씨 좋았던 어느 가을날, 우리 과 동기들 중 가장 먼저 떠난 철주, 뭐가 그리 급했는지.. 난 그때 그게 무지 억울했다. 왜 하필 철주였는지..
그해 그의 고향 서산 해미읍성 단풍은 유난히 붉었다.
그때 미처 하지 못했던 말 늦었지만 지금 하고 싶다.
"철주야! 넌 정말 좋은 친구야. 고맙다.
우리한테 너는 영원한 미스 산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