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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키키 Nov 18. 2023

와인3잔

2018년 말에 쓴 글

 몇 년 전에 같이 근무했던 직원을 오랜만에 만났다. 마침 큰애 때문에 맘고생한다고 나를 위로해 주려고 만든 자리였다. 사실 큰 애 수능 이래로 뭘 먹어도 맛있지 않고 무엇을 해도 기쁘지 않았다. 그만큼 자식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마어마하게 크고 내 삶을 지배한다는 것을 새삼 절감했다. 이제 다시 재수를 시작해야 하는데 벌써 내 몸과 마음은 지쳐버린 느낌이다. 


 이런 나를 위로해 준다고 모였으니 난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저녁은 매콤한 스파게티와 스테이크를 배부르게 먹고 한 직원의 집에서 2차로 내가 먹고 싶다고 한 와인을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오랜만에 먹은 와인 맛은 약간 떫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나의 컨디션, 평소에 술을 아주 못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금방 얼굴이 빨개지고 술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권하는 술을 마다 할 수 없어 연거푸 2잔을 더 마셨고 시간은 어느새 흘러서 집에 갈 시간, 의자에서 일어나는 순간부터 어지럽고 속이 답답하기 시작했다. 어찌어찌 고마웠다고 작별인사를 하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숨을 못 쉴 정도 어지럽고 메스꺼웠다. 당장이라도 어딘가에서 눕고 싶었다. 그 넓은 주차장에서 같이 온 직원의 차를 찾을 생각을 하니 정신은 아득하고 다리는 비틀비틀... 결국 주차장 바닥에 가방을 베개 삼아 누워버렸다. 옆에 직원의 당황해서 놀란 목소리는 계속 들려오고... 다행히 누워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유는 바닥이 너무 추웠기 때문, 이러다가 얼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치더니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간신히 차를 찾아 뒷좌석에 누워버렸고 다 왔다는 소리에 겨우 눈이 떠졌다. 그 직원은 너그럽게 잘 들어가라고 얘기해 주었고 난 연거푸 미안하고 고맙다는 소릴 반복하며 무사히 돌아왔다.  


 정말 허당 그 자체다. 그 지하 주차장에서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을 봤을 꿈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 어른들도 가끔 이렇게 힘들 때가 있단다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추한 것은 추하다.  친정아버지 주사 때문에 술이라면 지긋지긋하고 본인의 주량만큼 알아서 마셔야 한다고 굳은 신조를 가지고 있지만 몸이 지탱해 주지 않고 나도 모르게 과음할 때가 아주 가끔(?) 있다. 다행히 지금까지 별 사고 없이 멀쩡한 것은 그나마 나를 걱정해 주고 챙겨주었던 가족과 지인들 덕분이다. 


 와인 3잔이 나를 꽐라로 만들었고, 와인 3잔이 나의 모든 걱정거리와 짐을 날려버릴 수는 없지만 뭔가 나에게 떫은맛, 달콤함, 동시에 놀이기구 탔을 때 공중에서 갑자기 바닥으로 꺼져버리는 아득함과 씁쓸한 뒷맛까지.. 벌써 지쳐버린 나에게 그래도 일어나야 한다고, 이제 그만 일어나라고~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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