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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키키 Nov 18. 2023

엄마의 투병(1)

 엄마는 42년생 올해(2023년) 한국나이로 82세, 우리네 여느 엄마처럼 시집와서 평생 소처럼 농사만 지으면서 살았다. 아버지와 같이 농사를 짓는다지만 아버지는 술을 심하게 좋아했고 그 공백은 엄마 특유의 미련스러울 만큼 과한 농사욕심으로 채우고 또 채웠다. 그렇게 엄마의 허리는 꼬부라지고 몸은 여기저기 부서져가고 사그라 들어갔다. 자식들이 아무리 거들어준다 해도 그건 잠깐잠깐 일 뿐이었다. 


 10년 전 그러니까 2015년 엄마는 구부러진 허리를 펴는 척추수술을 받았다. 이제 농사는 짓지 말라는 의사의 말과 자식들의 잔소리도 엄마의 농사욕심을 꺾을 수 없었다. 2017년 심장 쪽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심장 대동맥 박리수술을 받고, 2018년에는 화장실 가다가 넘어져서 고관절 대퇴부골절 수술을 또 받았다.  우리 자매들은 수시로 돌아가면서 간병을 해야 했고 또 외래진료도 자주 가야 했다. 대학병원은 친정집에서 멀었고 그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꾸 여기저기 아픈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어쩌랴~하기 싫다고 할 수 없는 일이 아닌 것을...


 작년 그러니까 2022.5.24 새벽 용인세브란스응급실에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보호자인 남동생을 찾는 전화였는데 어떻게 내 번호가 등록이 되었는지 핸드폰이 울렸다. 엄마는 새벽에 갑자기 머리가 아프고 토하는 전형적인 뇌출혈증세로 응급실로 가게 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엄마 몸에서 나빠질 곳은 없겠구나 했는데 머리의 핏줄이 터질 줄이야~엄마가 평소에 고혈압 약은 먹고 있었지만 아무도 예상 못한 일이었다. 그날부터 엄마는 이제 또 다른 우리의 엄마로 존재하게 되었고 우리의 삶을 받치는 기둥 중 하나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엄마는 20일 넘게 중환자실에 계셨다. 면회는 전혀 되지 않고 엄마의 상태만 주치의한테 설명으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뇌는 다행히 출혈은 막았지만 뇌에 물이 차 있으며 고령에 혈관상태도 좋지않고 심장도 좋지 않다고 했다. 재출혈을 막기 위한 시술을 해야 하는데 머리를 개복하지않고 뇌혈관 조영술을 통해 혈관에 특수합금코일을 넣는 시술을 해야한다고 했다. 앞으로 뇌의 물도 몸안으로 빼는 시술도 해야 하는데 이 모든게 신장이 약해서 쉽지 않고 이대로 상태가 계속 더 나빠지면 투석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잠깐씩 눈도 뜨고 하지만 거의 눈을 감고 있다고 했다. 


 이 많은 것을 엄마는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엄마는 지금 어디쯤 있을까? 온갖 무시무시한 장치로 가득한 중환자실 병상위에? 아님 무의식 어딘가에서 혼자 열심히 길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대로 돌아가시는건가 라는 아득한 슬픔과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그냥 누워서만 있는 식물환자가 되지 않을까 라는 절망감과 두려움의 나날들이었다. 엄마를 전혀 떠날 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 언니들과 병원 찻집에서 엄마 영정사진을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야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일반병실로 나왔지만 엄마는 거의 눈을 뜨지 못했고 말도 하지 못할뿐더러 몸은 퉁퉁 부어있었다. 엄마는 우리 엄마가 맞는데 우리가 아는 엄마가 아니었다.  어쩌다가 눈이 마주쳐도 초점 없이 공허한 눈동자에 손하나 까딱할 수 없고 일어나지도 앉아있지도 못했다. 온갖 링거 줄이 엄마를 칭칭 감고 있었고 자식들이 누구인지 알아보질 못하는 상태였다. 거기다가 신장까지 더 안 좋아져 계속해서 투석까지 받아야 했다. 절망스러웠다. 


 억울하고 속상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우리 엄마가 뭘 그렇게 잘못을 많이 했다 말인가.. 잘못한 거라면 지금까지 죽어라 미련스럽게 농사만 지었던 분인데 누구한테라도 따지고 싶었다. 다그쳐 삿대질이라도 퍼붓고 싶었다. 그게 신이든 아님 또 누구인지...


그렇게 엄마의 기나긴 투병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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