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트레인지타임 Oct 24. 2021

친구, 국적을 초월한.

나에겐 친구들이 있다. 속마음을 드러내기를 주저하는 나에게 그들은, 마음의 가장 큰 출구이다. 그들은 여기에도 있지만 지구 반대편에도 있다. 특히, 가족이 없는 곳에서 그들의 존재는 그 어떤 존재보다 더 선명하고 강렬하게 나를 관통했다. 그중엔 그도 있었다. 대학 입시 과정에서 만난 그는 이란에서 온 파릇파릇한 스무 살 청년이었다. 


덩치는 산만했으나 마음씨는 맑고 투명한 유리잔 같았다. 수염은 단 이틀의 무관심에도 그의 얼굴 외곽을 열대우림같이 덮었으나 그의 앳된 미소까진 가리지 못했다. 거뭇한 수염이 간혹 사라진 날, 그의 얼굴은 선량함이 짙다 못해 그의 곰 같은 덩치마저 집어삼켰다. 마치 사나운 불곰이 곰돌이 푸우로 변하는 마법 같았다. 


그는 수염을 자주 깎지도 운동도 즐겨하지 않았다. 게으르고 느긋한 성격 덕분에, 그의 집은 지구 종말을 일주일 앞둔 이의 집처럼 미래도 없었고 발 디딜 곳도 없었다. 학교 수업은 그 누구보다 늦게 왔으며, 아주 때때로 제시간에 온 그를 향한 아침 인사는 'Morning'이 아니라 'What happened?'이었다. 입는 옷들은 한결같아서 한 번도 들여다본 적 없는 그의 옷장은 내 손바닥 보듯 뻔했다. 공부는 어지간히 안 하는 편이라 시험 성적이 좋을 리 없었고 그의 영어 에세이는 형편없어서, 보잘것없던 나의 첨삭을 받는 수준이었다.


그는 그래도 됐다. 세상은 불공평하지만 인간은 공평한 법이다. 그는 대신 지혜로웠다. 물론 자기 외양 관리가 지혜로움의 기준이라면 그는 기준 미달이다. 하나, 큰 의미에서 보자면 그는 참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배려심이 깊었다. 주위에는 친구들이 지나치게 들끓었으나 하나같이 유유상종이었다. 속 터지게 느렸지만 어설프진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도착지들은 정확히 그의 인생 지도에 있었고 갈 길을 뚜렷하게 알고 나아갔다. 호기심 많고 아는 것도 많았다. 잘 듣는 리스너이기도 했지만 잘 말하는 스피커이기도 했다. 그가 영어로 말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그의 영어 에세이가 과연 그로부터 나온 것인지 심히 의심스러웠다.


그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각자 다른 대학교를 갔지만 각자의 대학교가 런던에 있는 덕분에, 우린 꾸준히 교류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러던 그와 나 사이가 멀어져야 하는 시기가 있었다. 자주 싸워서도 아니고 서로 바빠서도 아니었다. 약 한 달가량의 특정 기간 동안, 그의 존재는 마치 유명인 같았다. 만나기 매우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만나더라도 쥐꼬리만 한 시간만이 허락됐다. 우리를 단절시킨 그 특정 시간이란 그의 어머니가 런던에 있는 시간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돌보기 위해 분기에 한 번씩 그에게로 왔다. 한 달가량 그의 집에서 지내며, 고향 음식도 해주고 빨래와 청소 같은 집안일을 하셨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온다는 사실을 기쁨 반 슬픔 반으로 받아들였다. 그리운 어머니와 같이 지내며 그리운 고향 음식도 먹을 수 있고 귀찮은 집안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기뻤다. 하지만 동시에 슬프기도 했다. 감시하는 어머니와 같이 지내며 돼지고기와 술을 먹을 수 없고 귀찮은 공부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에 그는 침울했다.


어머니의 존재 앞에 그는 이중인격자처럼 행동했어야 했다. 이란에서 그는 무슬림이었으나 런던에선 아니었다. 종교 율법이 금하는 행동 양식들을 그는 전혀 따르지 않았다. 정해진 예배의 시간과 라마단 기간(금식 기간)을 가까이 하지도, 금지하는 비할랄(non-halal) 음식을 비롯한 돼지고기와 술, 담배를 멀리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종교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을 품은 그였다. 그러나 어머니라는 거대한 현실 앞에선 그는,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독자이자, 독실한 무슬림이라는 신자로 회귀해야 했다.


산란기의 연어처럼 거스르기만 하는 그에게 나는 묻곤 했다. 


"너 정말 안 지켜도 돼?, 정말 괜찮아?"


그는 답했다. 


"어 괜찮아. 나는 이런 거 안 믿어. 근데 만약 우리 가족이 이걸 알면 난 정말 큰 일어날 거야. 만약 나의 런던 모습이 들키면 난 차라리 살인자의 처지를 부러워할 걸. 유학은 당연히 물거품이 되고 집안에 감금당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도 모르겠어. 그니깐 우리 엄마가 있을 땐, 정말 정말 정말 조심해야 돼. 너무한다 싶을 만큼 경계해야 돼"


매우 '바쁜 척'하는 그가 이해됐다. 한 달의 이별 기간 동안 난 그의 무사를 바랐다. 그러나 하나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었다. '진짜 그는 누구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봐왔던 런던에서의 그가 진짜 그일까, 아님 내가 모르는 이란에서의 그가 진짜 그일까. 그는 자신의 자아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걸까, 다시 잠시 동안 되찾는 걸까. 아님 그 두 가지 모습 전부다 그의 진실된 모습일까. 


절제와 금욕의 나날을 버텨낸 그를 다시 만나는 날, 그는 어린아이 같이 웃었다. 나와 친구들은 인고의 시간을 뚫고 나온 그를 축하하고 위로해주었다. 


분기마다 다가오는 단절의 시간은 점점 익숙해져 갔다. 그에게 연락이 닿지 않아 친구에게 물으면 "아 걔 엄마 왔어"라는 말이 모든 걸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또 다른 시련이 남아있었다. 이번엔 단기간의 단절이 아닌 깊고 두꺼운 단절이었다.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의 끈을 다시 강하게 조일 때였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뉴스에서 본 뒤 별 뜻 없이 그에게 물었다. 


"미국이 제재 다시 한다던데, 너희 나라 괜찮아?"


그의 밝은 얼굴이 한순간 굳어졌다. 


"아... 아니 지금 아버지 회사가 부도 직전이야"


나는 미국의 파워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타국의 한 가정을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있는 미국이 참 무서웠다. 그 뒤로 그의 생활은 급격히 변했다. 그의 유학 생활은 다행히 이어졌지만 거미줄같이 연약하고 아슬아슬했다. 그는 전과 같이 친구를 만날 여력도, 끝에는 의지마저 차츰 사라져 가는 듯 보였다. 우린 새로운 시간에 적응해 나가야 했다. 


한국의 티브이에서 무심코 보았던 수많은 외국 뉴스들.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나와 하등 상관없는 별나라 이야기와 같다고 생각했다. 특히 비서방권 나라의 사람들이 피 흘리며 죽어가도, 배고픔에 굴복해 쓰레기통을 뒤져도, 난민들이 망망한 바다를 죽기 살기 헤엄쳐도, 난 끄떡없었다. 나는 따뜻했고 배불렀다. 


이제 그들의 삶은 나에게 조금 다른 형태로 다가온다. 보이지 않던 실체가 보이고 느껴지지 않던 온기가 느껴진다. 이란에서 온 그가 겪는 미국의 제재, 르완다에서 온 친구가 들려준 르완다 대학살, 홍콩에서 온 친구가 독립운동 실패 후 흘리는 절망의 울음은 그들의 것만이 아니라 이제 나의 것이기도 하다. 국적을 초월한 친구를 둔 후부터 나는 나 자신을 더 자주 인식하게 됐다. 이 세상에는 나의 삶만큼 소중한, 무수히 많은 삶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것을 인지하고 살아가는 것. 그것은 나로 하여금 나 자신에게서 잠시 멀어질 시간을 갖게 한다. 그러면 나 자신이 새롭게 다가오고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전 07화 친구. 나이를 초월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