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서 온 젊은 여인 두 명이 있었다. 항상 웃으며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친절해서 '한때 꿈이 수녀님이 아니었을까'라는 억측을 하게 만드는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운이 좋게도 나는 그들과 같은 날에 어학원을 입학하게 됐다. 한국식으로 동기인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들은 자주 어울리곤 했다. 시작이 같다는 공통점 이외에도 다른 공통점들이 우리를 더 가깝게 만들었다. 터키에서도 한국 드라마가 꽤나 유명한 편이어서 우리는 쉽게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드라마와 한국 문화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면, 내 속에선 불이나 환장할 지경이었다.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들은 많았지만 그것들을 다 전달해줄 수가 없었다.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영어가 문제였다. 몸짓, 손짓, 눈짓, 발짓 같은 온갖 짓이라는 짓은 다 동원해서 나의 부족한 말을 온전히 전하려 했다. 사운드의 부재를 극복하기 위해 과장된 액션을 하는 무성영화 배우처럼 말이다. 그러나 완전한 소통을 끝끝내 이루지 못한 그날 밤 잠자리는 마치 잠 못 이루는 열대야처럼 찝찝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함께 저녁 먹으러 가던 길이었다. 식당 예약 시간이 가까워지건만 아직 갈길이 한참이었다. 근데도 그녀들은 초조한 나와는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시간적 제약에 굴하지 않고 느긋하게 걸으며 대화에 집중하는 그녀들이었다. 나는 대화의 훼방꾼이 되지 않으려 빠른 발걸음을 애써 감춘 채 앞장서서 걸을 뿐이었다. 빨리 가자는 무언의 시위였다. 하지만 그녀들은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들의 발걸음이 정체되면 될수록 내 시선은 계속 손목시계를 향했고 그녀들과 나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어느새 현재 시각이 예약 시각을 십 분이나 추월하고 말았다. 참을성이 점점 한계에 도달한다. 더 이상 늦으면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터키음식을 못 먹게 될 거라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게다가 영국에 온 후 제대로 된 음식을 구경도 못했단 사실은 이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멀찍이 걷고 있던 나는 뒤로 돌아서서 그녀들에게 조심히 다가간다. 지금 많이 늦었으니 이제라도 빨리 걸어야 된다고 그들을 종용한다.
"We need to go quickly"
"What?"
'왓'이라니. 정말 왓이라는 대답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이 짧은 영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녀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무슨 말실수라도 한 건가 싶어 조심스럽게 다시 말한다.
"quickly quickly, we are late"
"Yeah I know but what do you mean 'quickly'?" ("그래 알아 근데 '빨리'라니 무슨 소리야?")
"... I mean..." ("... 그게...")
내가 드디어 어떤 문화적 실수를 범한 것 같아 머릿속이 하얗다. 한국에서는 용납되지 않을 행동과 말을 하는 외국인 친구들을 보며 내 '자연스러운' 태도 또한 어느 다른 문화에서는 허용되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이 날이 그날인가 싶다. 각오는 했지만 당황은 어쩔 수 없다. 꼬르륵거리는 배에 손을 올려놓고 다시 생각한다. '아! 터키에서는 빨리 가자고 하면 무례한 건가... 아님 내가 너무 명령조로 말한 건가...'. 하지만 다행히도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그들의 표정은 불쾌함이 아닌 궁금증으로 덮여있다. 그래서 절교의 위험을 무릅쓰고 에라 모르겠다 다시 한번 그들에게 말한다. 이번에는 '빨리'의 뜻을 담은 다른 단어를 써서 말이다.
"fast fast"
"ah~ you meant quickly before!" ("아 빨리 가자고 말한 거였구나!")
그러더니 그녀들은 웃으며 빨리 걷자고 한다. 깊은 숨을 내쉰다. 친구를 잃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지금이라도 빨리 가면 음식 같은 음식을 먹게 될 거라는 희망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하나, 그것도 잠시뿐이다. 찝찝하다. '그녀들은 왜 나의 'quickly'를 이해 못한 걸까?'
고맙게도 그녀들은 진실을 알려준다. 나는 'Quickly'를 'Kickly'로 발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Q' 발음이 'K' 발음과 똑같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내 발음이 오해의 원인이었다. 'Quickly'를 '쿠익클리'가 아닌 그저 '킥클리'라고 발음하고 있었으니, 그녀들은 '발로 무엇을 차라는 건가'라는 오해를 했다고 한다. 쪽팔림이 밀려온다. 며칠 전 자전거 핸들에 걸쳐놓은 비닐봉지가 바퀴에 끼어 앞으로 꼬꾸라졌을 때도, 주위에 많은 사람이 내 다이빙을 목격했음에도 이 정도까지 민망하진 않았던 것 같다. 이제 터키음식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다. 집에 가고 싶다. 그녀들이 수녀님 같은 인자함을 지녔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쪽팔리기는 매한가지다.
앞장선 그녀들 뒤를 내 느려진 발걸음이 터덜터덜 뒤쫓는다. 왠지 화가 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