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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레인지타임 Aug 16. 2021

영어 2

'무엇이 잘못된 걸까?', '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


내 머릿속은 나 자신을 향한 의문으로 가득하다. 여태껏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들을 의심하려니 뇌가 과부하에 걸려 발열하는 게 느껴지는 것만 같다. 꼬리를 문 생각들은 내 발걸음을 꼬이게 만들었고 그녀들과 나의 위치는 불과 몇 분 전과는 정반대다. 시계를 볼 틈이 없으니 시간은 눈칫밥 먹지 않고 잘만 달려, 어느새 우리는 예약한 식당에 다다랐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도착했다. 그토록 고대하던 정통 케밥이 테이블 위로 놓인다. 내가 알던 케밥은 양고기와 채소들을 품은 얇은 빵이었건만 내 눈앞에 있는 건 빵 따로 양고기 따로 채소도 따로 모든 게 제각각으로 하나의 큰 접시에 누워있다. 케밥도 'Q' 발음과 같이 내 예상을 빗나간다. 나는 뭐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는 듯하다. 맞은편에 앉은 그녀들은 접시 위로 애국심이 듬뿍 담긴, 음식 설명을 곁들인다. 이야기를 들으며 음식 하나하나를 입안에 넣는다. 현지인과 먹는 현지 음식의 느낌을 살리고 싶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여전히 나는 십분 전 있었던 사건을 곱씹는 중이다. 아니 얽매여 있다고 봐야겠다. 


나는 영어를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왔다. 학창 시절 동안 영어는 공부량에 비해 점수가 잘 나오는 그런 선천적인 과목 중 하나였고, 수학처럼 억지로 했던 과목이 아닌 즐겼던 과목이었으며, 초등학생 때부터 '양키', '치즈맨'이라는 소릴 들어가면서까지 팝송, 미드, 외국 영화를 듣고 보며 익혔던 그런 과목이었다. 그래서 나는 유학이라는 실전에 뛰어들기 전에 거치는 영어회화와 같은 어떠한 리허설도 해볼 생각을 않았다. 이미 많은 단어와 숙어들을 알기에 나는 그저 가서 부딪히고 적응하면 된다고 제멋대로의 결론을 내렸다. 틀린 결정이었다.


애초에 전제가 잘못되었으니 결론이 옳을 수가 없었다. 사실 나는 영어를 잘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영어라는 과목을 잘할 뿐 영어라는 언어는 꽝이었던 거다. 


한국에서 영어라는 과목이 요구하는 능력은 언어 구사 능력이라기보다는 언어 이해 능력이었다. 한국말로도 간혹 이해하기 어려운 영어 지문 속 단어, 숙어, 문법, 문장 구조들을 외웠다. 지문을 다 읽지 않아도, 모르는 단어가 있어도, 나는 문제없이 주제문만 찾으며 요리조리 정답을 맞혀나갔다 


아주 가끔씩 영어 '스피킹' 수업도 있었다. 수업 시간 중 졸았다는 이유로 일어서서 지문을 큰소리로 읽어야 했다. 나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지문을 읽어나갔다. 마치 신데렐라의 열두 시 종소리가 그녀의 꿈같은 하루를 깨부수듯, 학교 종소리가 곧 이 달콤한 졸음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나는 얼른 마법의 의자에 다시 앉아야 했다.


하지만 그 어떤 학교도 그 어떤 선생님도 속사포같이 내지르는 내 엉망진창 영어 발음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치였다. 학력평가에도 모의고사에도 끝판왕인 수능에도 스피킹 평가 영역은 없었다. 좋은 대학을 가서 좋은 직장에서 좋은 삶을 누리기 위해선 스피킹은 어불성설이었다. 더군다나 간혹 올바른 발음을 하려는 친구들도 있었으나 '시간이 없단 이유'로 선생님한테 제지를 당하거나 '잘난 척한다'라는 이유로 다른 대부분의 친구들에게 웃음과 조롱을 받곤 했다. 방청권은 있으나 발언권은 없는 영어를 배워왔다. 


그 결과 나는 facebook을 Pacebook으로, Queen을 Keen으로, Throw를 Srow로 발음했다. 상대방이 말하고 적은 영어는 알아들었지만 그 상대방이 내 영어를 알아듣진 못했다. 처음에 나는 내 페이스북을 못 알아듣는 스위스 친구가 의심스러웠다. 'Facebook이나 Pacebook이나 뭐 그냥 알아들으면 되지, 잘난 척하는 건가?'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금치 못했다. 발음은 고상한 척, 잘난 척하기 위한 용도라고 생각했던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영어라는 언어에서 발음의 역할은 이상적이지 않고 다분히 실용적이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하루에 수십 번도 내뱉는 '폰(Phone)'이라는 단어를 'Fone'이 아니라 'Pone'으로 말한다면, 영어를 하는 상대방은 휴대폰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Porn'(포르노)라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발음과 악센트 하나하나의 차이에 따라 단어 의미가 변했다. 


과목으로서의 영어는 현실에서 딱히 쓸모가 없었다. 아는 영어도 사용할 줄 모르니 모르는 것과 다름없었고, 대학교 원서 책도 한 시간 내에 사전 없이 푸는 게 아니라 도서관에서 사전 뚜들기며 몇 주 동안 읽는 것이니, 내가 한국에서 갈고닦았던 영어는 참 부질없는 것이라고 치부할 순 없지만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순 없다. 한국사회에서 영어는 언어라는 자아를 박탈당한 채, 입시의 노예로 전락한 가엾은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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