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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레인지타임 Sep 26. 2021

영어 4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 있는 용기'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 있는 용기'


대학 입시 과정을 밟을 때였다. 어학연수를 짧게나마 다녀온 후여서, 내 영어는 전보다는 조금 나아졌다. 쉽고 짧은 문장은 생각을 거치지 않고도 나올 수 있었고, 내 귀는 점점 영어 발음에 길들여져가고 있었다. 하나, 나는 곧바로 주눅 들 수밖에 없었다. 입시 과정에서 만난 친구들의 영어는 '온더넥스트레벨'이었다. 


다들 이력이 화려했다. 심상치 않은 배경에서 비롯된 그들의 역사는 나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동유럽에서 온 금발 단발머리의 그녀는 아버지가 그 나라의 넘버 투였다. 아프리카의 한 국가에서 온 다른 그녀는 매우 마르고 가냘픈 체형이었지만 아버지는 그 나라에서 제일가는 장군이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볶음밥 요리로 유명한 한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온 그는 아버지가 그 나라에서 제일 큰 놀이공원을 가지고 있었다. 이외에도 사업가, 교수, 예술가, 시민운동가 등, 각자의 나라에서 꽤 알아주는 아버지를 둔 자식들이 내 친구들이었다. 즉, 어릴 때부터 엘리트 교육을 받은 그들에게 영어란 제2 외국어가 아닌 제2 모국어쯤 되었다. 


정말 뭐라카는지 하나도 모르겠었다. 대화의 대략적인 주제를 알면, 간간이 들리는 단어들의 총합으로 그 흐름을 어찌어찌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대화의 시작을 놓쳐버린 나에게 그들의 대화는 에미넴의 노래와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가사의 의미를 모른 채 노래 멜로디에 맞춰 머리를 까딱까딱하듯이, 말의 의미를 이해 못한 채 대화의 분위기에 맞춰 머리를 까딱까딱했다. 단, 방심은 금물이다. 웃을 땐 따라 웃어야 하니깐. 


심리학 수업 때였다. 스페인 사람이었던 교수님은 유난히 말이 빠를 뿐만 아니라 특유의 스페인식 영어 발음을 구사했다. 교수님의 말들은 이미 떠났고 나는 그것들을 책의 힘을 빌려 힘겹게 붙잡고 있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내 등을 톡톡 쳤다. 뒤를 돌아보았고 뒷자리에 앉아있던, 중동의 한 국가에서 온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Do you have (     ) and (       )?"


빈칸이 들리지 않았다. 듣기 평가를 치는 것만 같았다. 그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Sorry?"


"(        ) and (        )"


다시 들어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시선을 피하고 찰나의 고민에 잠긴다. 이 상황에서 그가 필요한 게 과연 뭘까?. 나에겐 있을 법하고 그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지금 가져야만 하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 아... 전혀 추측이 안된다. 또다시 묻는다. 시간을 벌어야 한다. 추측의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You need.. what?"


"(       ) and (       )"


여전히 빈칸으로 남아있다. 이쯤 되면 저 빈칸의 정답은 내가 모르는 단어임이 틀림없다. 고로 나는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을 확률이 매우 크다. 그에게 말한다. 


"No, I don't..."


재빠르게 고개를 돌리고 펼쳐져 있는 책에 내 시선을 꽂는다. 책 속의 수많은 단어들, 그중에 저 빈칸의 정답이 있을까... 뒤는 조용하다.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긴 걸까...


그는 내 옆에 있는 친구에게 그 질문을 한다. 그리고 그는 곧 종이와 펜을 넘겨받는다. 빈칸이 비로소 채워졌다.


(Paper) and (Pencil)


난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지금 당장 뛰쳐나가는 게 옳은 결정일까. 저 기본적인 단어도 못 알아듣는 나 자신이 너무 민망하다. 잠깐만 근데 이건 쪽팔림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내 책 옆에 보기 좋게 노트와 필통이 놓여있다.  


수업 내내 내 눈길은 책상에만 갇혀있었다.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뒷자리의 그에게 난 아무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진실은 나만의 것인 채로 남아있었고 현재도 그렇다. 이 사건 이후로, 다행히 그와 별문제 없이 지냈다. 막역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그때의 일은 조금의 여파도 없는 듯했다. 내 기준에선 말이다. 


나와 가장 가깝게 지내던 한 친구가 있었다. 큰 키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서글서글한 웃음이 귀여웠던 어린 친구였다. 한눈에 보면 적어도 스무 중반은 돼 보였지만, 자세히 얼굴을 들여다보면 앳된 스무 살의 얼굴이 여실히 드러났다. 하루는, 그가 누군가와 대화하는 걸 보고 있었다. 상대방은 영국인이었고 그는 간혹 상대방이 말한 단어를 몰랐다. 그럴 때마다 그는 영국인에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고 그들의 대화에는 미소와 이해가 공존했다.


"What did you just say? I don't think I know the word"

(금방 뭐라고 하셨죠? 저 그 단어 모르는 것 같은데요)



이게 정답이었다. 빈칸의 정답은 Paper와 Pencil이 아니라,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것', 즉 "도와달라"라고 말하는 게 진정한 모범답안이었다. 


나는 그 당시 무엇이 그리도 민망했을까. 영어를 모른다는 것이 그렇게도 민망한 일이었을까. 한국 사람이 영어를 모르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닌가. 난 영어를 언어가 아닌 지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고로, 영어를 모르면 난 무식한 사람이었고 무식한 게 창피했다. 하지만 창피함 또한 오로지 나만의 것이었다. 상대방과 주위 사람에게는 창피함이 아닌 무례함이었다. 모르는 것을 묻지 않으면,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결국엔 오해와 갈등이 싹트기 마련이다.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영어를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잘못된 태도이지 영어를 잘못한다는 사실이 아니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어설프게 따라 하면 귀엽게 바라보듯이, '자신감'있는 어설픈 영어는 영어 실력 향상은 물론 더 자연스럽고 친근한 인간관계를 만들어낸다.


내 친구를 본 후, 어느 순간 아는 척하는 게 너무 싫증이 났다. 다 귀찮아졌다. 그래서 '뭐 모르는데 어쩌라고'로 태세 전환을 했다. 그때서야, 내 진짜 유학생활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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