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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레인지타임 Sep 12. 2021

영어 3

나는 틈틈이 영어학원에서 수업을 하거나 개인적으로 영어 과외를 한다. 영어는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재주 중 하나이다. 유학생활을 마침으로써 그곳에서 이루었던 많은 것들을 포기했어야 했다. 다행히 영어라는 존재는 나에게 남은 몇 안 되는 전리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영어를 원어민만큼 잘한다기보다는 그저 비영어권 학생을 가르치기에 별 어려움 없을 정도라고 치면 되겠다. 


주로 수업하는 학생들은 대개 예비 유학생이다. 어리면 중학생에서부터 많으면 50대를 훌쩍 넘기신 분들까지 연령대와 직업대가 다양하다. 존경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걱정스럽기도 하다. 경험자로서 유학은 장난이 아니란 걸 알기에 그런 만감이 교차하는 듯하다. 학생들이 나에게 많이 묻는 질문 중에 하나가 이것이다. 


"유학생활을 잘하려면 제일 중요한 게 뭐예요?"


음... 혹자는 돈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깊이 공감한다) 노력 또는 열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수많은 답변이 가능하다. 그러나 나의 답변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스피킹이다. 영어로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누군가는 영어 단어가 제일 중요하지 않느냐, 일단 들어야 하기 때문에 '리스닝'이 중요하지 않느냐, 대학교에서 에세이를 과제로 내주니 '라이팅'이 중요하지 않냐라고 한다. 다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차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먼저 살아남은 차후에 걱정할 문제란 말이다. 


유학생활의 가장 치명적인 적은 '외로움'이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떠나 말 그대로 혈혈단신이 된다. 그것도 외국인등록증을 지니고 다니는 외국인의 지위로 말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지구 반대편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일단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친구도 사귀고 사람과의 교감과 소통을 나누며 유학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다. 조금 과장돼서 말한다면, 유학생의 처음 처지는 이 세상에 부모 없이 던져진 고아와 비교할 수도 있겠고 영화 '패신저스'에서 거대한 우주선 속 홀로 남겨진 주인공에 버금간다 할 수 있겠다. 패신저스에서 크리스 프랫은 제니퍼 로렌스가 아녔어도 그 누군가를 분명 깨웠을 것이다. 생명유지가 문제가 아닌 상태에서 삶의 가장 큰 원동력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사람들과만 어울릴 생각이면 내 말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다. 또한 빡세게 대학원에서 석사 또는 박사과정을 할 사람도 내 말을 귓등으로 흘려도 별 무리가 없겠다. 다만 영어권 대학교를 목표로 유학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 말을 듣는 척이라도 했으면 한다. 영연방 대학교는 3년제, 미국권 대학교는 4년제이고 바로 대학교를 갈 수도 없다. 대학 입시 과정과 어학연수 등을 합치면 최소 4년이 걸리는 대장정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긴 시간 동안 살아야 한다. 머무는 게 아니라 살아야 된다.


"가서 공부만 열심히 해야죠!"


라는 말은 어리석기 그지없다고 생각한다. 대학교 과정은 공부만 하고 싶어도 공부만 할 수가 없다. 길게 잡으면 반년에 달하는 방학 기간이 있고, 자율을 추구하는 교육시스템을 볼 때 저러한 마음가짐은 대학원에서 갖추어야 할 정신이지 대학교에서는 맞지가 않는다. 


게다가 정말 도서관에서 죽치고 있을 생각이면 도대체 유학을 가는 메리트가 무엇이겠느냐 말이다. 유학을 통한 가장 큰 배움은 도서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채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공원과 길거리에서 나오는 법이다. 유학 생활 중 공부만 할 생각이라면, 대학교 유학을 추천하지 않는다. 세계 석학들의 강의는 인터넷에서 찾아들으면 되고, 원서도 사서 집 앞 도서관에서 읽으면 된다. 최소한의 영어 스피킹 실력이 진정한 배움의 문을 열어준다. 


근데 한 가지 문제점이 남아있다. 스피킹은 잘 늘지 않는다는 점이다. 리딩, 라이팅을 비롯한 다른 영어 영역에는 왕도라는 게 어느 정도 있을 뿐만 아니라, 단기간의 상당한 노력은 단기간의 상당한 실력 향상을 보장한다. 하지만 스피킹은 지름길도 없으며 노력의 결과물은 그다지 가시적이지도 않다. 대신, 지난한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고 시간을 마냥 흘러 보낸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다. 영어라는 언어를 잘하기 위해 제일 필요한 것은 바로, 영어를 쓰는 환경이다. 갓난아이가 부모의 언어를 모방하며 입을 트듯, 영어도 올바른 영어의 바다 근처에 있어야 쉽게 물들 수가 있다. 혼자 스스로 연습하고 말을 하면 영어 스피킹이 늘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실생활에서 영어를 최대한 많이 듣는 게 가장 좋은 학습법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솔직히 말해, 한국에서 영어 말하기 능력을 키우는 것은 아주 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높은 장애물을 돌파하고 뛰어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우리 대다수의 사람에 속하지 않는 조금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나도 처음에는 영어가 과연 늘까라는 걱정에 밤잠을 설치곤 했다. 완성되지 못한 말들을 뱉으며 불완전한 의사표현을 해왔다. 정말 시간이 해결해줄까라고 의심도 했다. 지나고 보니 시간이 어느 정도 해결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영어가 늘기에 아주 적합한 환경에서 보낸 시간들이기에 시간이 내 고민을 해소해주었다고 믿는다. 미디어를 전공했고 영국인을 포함한 외국인 친구들과 아일랜드 여자친구를 만나고 깊이 교류해서 현재의 나 자신이 만들어진 것이지, 만약 내가 이공계 쪽을 전공하며 한인들이 사는 곳에서 한인들끼리 어울렸다면 영어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기는 분명 힘들었을 테다. 


정말 열심히 놀아야 한다. 에세이 제출 기간에는 최선을 다해서 도서관에 박혀있어야 하지만 그 이외에 시간에는 최선을 다해서 놀아야 한다. 세계 각지에서 온 친구들과 어울리며 즐겁게 놀아야 한다. 그래야만 영어가 늘고 따라서 유학의 본전을 챙길 수가 있다. 뽕을 최대한 뽑을 수가 있단 말이다. 


결론으로 돌아온다. '유학 생활을 잘하기 위해 제일 열심히 준비해야 할 것'은 바로 스피킹이다. 한국에서 스피킹 실력 향상의 한계는 있지만 그 한계까지 도달하고 가느냐 안 가느냐는 큰 차이점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닫힌 입을 달고 무작정 떠나버린 과거의 나를 후회한다. 내 입이 온전한 구실을 하기까지 처음 1~2년의 시간이 참 아쉽다. 그때 만약 조금만 더 영어로 말을 잘했더라면,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경험을 통한 더 많은 생각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이다. 영어의 시간을 보내면 언젠간 영어가 늘겠지라는 생각은 했지만 영어의 시간이 언젠간 끝날 거라는 생각엔 미치지 못했다. 유학의 끝은 분명 어딘가에 있다. 그리고 그 끝과 시작 사이는 유한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유학의 시간을 정말 알차게 보내고 싶다면 영어회화를 열심히 공부하길 바란다. 끝맺음을 하고 보니, 그 아름다운 시간들의 일부를 영어 연습하는 데 사용했다는 사실이 난 참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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