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각자 자기만 간직하고픈 이불 킥의 순간들이 있다. 낮에는 수많은 소음과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지만, 과묵한 밤이 되면 나 자신이 온전하게 느껴진다. 상념들이 떠오르고 때로는 밤 잠을 설치게 만드는, 과거 최악의 순간들을 다시 맞닥뜨리기도 한다. 나의 새벽에는 어떠한 한 기억이 문득 침범해 나를 자괴감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초등학생 때다. 지금 생각하면 입에도 담기 힘든 말을 친구에게 내뱉은 적이 있다. 세 치 혓바닥이 아닌 차라리 세 치 주먹으로 그 친구를 때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후회를 한다. 그럼 나는 이렇게까지 괴롭지 않을 텐데 하고 말이다. 난 참 이기적인 놈인 것 같다.
그때의 기억이 만들어내는 후회의 연속이 날 좀 성숙하게 만들었을까. 성인이 되고 청춘을 보낸 유학시절에는 딱히 생각나는 이불 킥의 모먼트는 없다. 적어도 내 기억 속에는 없다. 하지만, 자괴감으로 몰고 가진 않지만 자기반성의 시간에 빠지게 하는 순간이 하나 있었다. 내 인생에서 내가 던진 가장 멍청하고 편협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대학교를 다니며 한식당 주방에서 일을 할 때였다. 그곳의 홀 매니저가 세 명 정도 있었는데, 한 명은 나보다도 어린 스무 초반의 영국 청년이었다. 그날은 그와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궁금했던 질문 하나를 하게 된다.
"너 이 일 끝나고 뭐 할 거야?"
"오늘 일 끝나면 집에 가서 쉴 건데"
"아 아니, 오늘 말고 너 미래에 말이야, 이 일을 그만둔 다음에 너의 미래 말이야"
"... 나 이 일 계속할 건데... "
나는 다시 한번 세 치 혓바닥의 힘을 생각한다. 머리가 띵해지는 시점을 기준으로, 어디에 있는지도 무엇을 빨아들이는지도 모르는 새까만 블랙홀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순간 말을 잃었고 나는 대답을 얼버무리고 말았다.
"Alright, alright I see..."
거대한 고정관념 틀 안에 갇힌 나만의 사실은 이러했다. '아직 어린 그는 대학교를 다니는 대신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의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 즉 내가 한 질문은 '홀 매니저라는 직업은 어린 그에게는 단지 거쳐가는 아르바이트에 불과하다'라는 편견이 낳은 참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홀 매니저라는 직업이 그의 평생 직업'이라는 경우의 수는 마치 이과 수학 시험지처럼 내 계산 범위 밖이었다. 그곳에선 내 생각의 틀이 딱 들어맞지 않았다.
그곳은 그랬다. 그래도 되는 곳이었다. 사람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곳이었다. 나이, 성별, 직업, 인종과 같은 겉모습은 겉모습일 뿐이었다. 나이가 몇이라서, 여자라서 남자라서, 어떠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피부색의 종류가 이러해서, 라는 집단의 기준으로 개인을 바라보지 않는 경향이 강했다. 즉 그들이 속한 집단의 성격을 규정하지도, 또 그것으로 개인을 판단하지도 않았다. 개인을 개인으로서 존중하는 개인주의 사회였다.
또 그곳은 그래도 되는 환경이었다. 대부분의 채용 공고에서 나이 제한은 눈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들고 "여자가 어떻게 그걸...", "흑인이, 아시안이 어떻게 그걸... "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도 없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의 불평등이 물론 존재하지만, 정규직이 권력이 되어 그것을 얻기 위해 목맬 정도로 그 차이가 심하지 않다. 사회보장제도는 잘 정비되어있고 불평등의 틈은 노동복지가 잘 메꿔준다.
특히, 그곳에서 직업의 영향력은 한국에 비해 지극히 낮다 못해 없는 것만 같았다. 마치 한국에서 나이가 미치는 영향력이 그곳에선 증발되듯이, 직업은 그냥 직업일 뿐이었다. 개인을 정의하지도, 해석하지도, 대표하지도 않았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자기의 직업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했다. 그중 'Cleaner'(청소부)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는데, 자신의 직업을 숨기려는 구석은커녕 오히려 자부심과 프로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상대방이 엘리트 직업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건 그 사람의 일에서 그쳤다. "오~ 진짜?"라는 반응도 없었고 쥐뿔만큼만도 신경 쓰지 않았다. 대통령이 와도 끄떡없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나는 난데 뭐 어쩌라고'라는 식이었다. 쿨내가 사회 전체에서 진동했다.
그곳은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에 비례해서 돈을 번다기보다는 일이 힘든 만큼, 일이 필요한 만큼 돈을 벌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배관공(Plumber)은 웬만한 가방끈 긴 사람보다 돈을 잘 벌며 고연봉 직종에 속한다. 요즘 한국 뉴스를 보니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에서 화물기사를 구하기 힘들어 연봉이 1억 원까지 올라갔다는 소식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바로, 그곳은 억대 연봉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 스스로 만족하는 일을 하고도 한 평생 큰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친구는 홀 매니저라는 직업을 거쳐가는 일이라고 생각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자신이 만족한다면 먼 미래까지 해도 되는 곳에서 살고 있었다.
이에 반해, 한국은 확실히 개인보다는 집단이 우선시 되는 사회인 듯하다. 집단을 규정하는 언어의 범람을 봐도 그렇다. 나이와 성별로 집단을 구분하는 단어에는 '아저씨', '아줌마', '이모', '삼촌', '형' 등등 끝도 없이 많아 끝말잇기도 가능할 것만 같다. 구분만 하면 좋으련만, 종종 차별하는 단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꼰대', '급식', '아재', '맘충'... 직업 쪽에는 '폰팔이', '기레기', '군바리', '노가다꾼'... 인종 쪽에는 '외노자', '흑형', '똥남아'. . . 한국인들은 참 창의적이다. 괜히 한류의 바람이 세계로 퍼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 창의적으로 싸운다. 갈등이 빈번하다. 개개인으로 싸우면 재미없으니, 집단 대 집단으로 다툰다. 그래야 스케일도 크고 볼거리도 많아진다. 한국 사회는 정말 다이내믹하다.
내가 영어 수업을 하다 보면, 정말 공부랑 적성에 안 맞는 학생들을 종종 만난다.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애초에 머리 구조가 그렇게 돼있는 듯하다. 해도 해도 안 되는 공부로 인해, 좌절하고 자기 비하하는 친구들을 보며 난 생각한다. '저 친구의 머리가 책과 글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분명 다른 쪽으로 뛰어날 텐데'하고 말이다. 그러한 친구들 앞에서 항시 품고 있지만 꺼내지 못하는 말이 있다.
"공부가 안 맞으면 하지 마 네가 잘하는 분야가 분명 있어 그걸 찾아 나서야 돼, 맞지도 않는 공부 하면 나중에 너 불행해져"
나는 저 말을 참 하기가 힘들다. 학생을 덜 생각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남의 인생에 참견하기 싫어서도 아니다. 저 말의 끝 문장 '맞지도 않는 공부 하면 나중에 너 불행해져'라는 말 때문이다. 과연 불행해질까. 불행해도 불행하다고 느낄까라는 불안이 생겨 저 말을 할 수가 없다. 개인은 행복하지 않겠지만, 한국 사회는 집단이 조금 더 우세하니깐, 억지로 공부를 해서라도 좋은 직업 타이틀을 따면 결국 더 행복하지 않을까, 공부 대신 자기 적성에 맞는 일을 찾으면 개인은 행복하지만, 자기 집단은 행복하지 않으니깐, 그러면 사실상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닐까.
나는 사회를 바꿀 힘이 없다. 그보다 더 중요하고 훨씬 어려운 사회 인식을 바꿀 능력은 더더욱 없다. 미안한 마음이 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