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은 안 빠지고 정만 쌓인다
나는 동네 아줌마다.
사람들은 쉽게 부른다. "아줌마."
가볍고, 하찮게. 어디에나 흔하게 있고,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존재처럼.
하지만 나는 안다. 그 하찮음이라 불리는 이름 속에
얼마나 크고 넓은 삶이 담겨 있는지.
우린 아줌마이기 전에,
이 시대를 지탱하는 강하디 강한 엄마들이었다는 걸.
그 무게와 온기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는 오늘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먼저 나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나는 아주 지극히 평범한 그냥 동네 아줌마다.
굳이 비유하자면, 편의점 삼각김밥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어디에나 있고,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근데 막상 없으면 허전하고, 가끔은 존재만으로 은근히 든든한.
우린 매일 누군가의 인생을 위해 숨 가쁘게 하루를 살아 낸다.
누구 하나 챙기지 않으면 금세 무너질 것 같은 이 삶.
그래서 내 하루는 매일 정신없는 전쟁으로 시작된다.
이제 성질머리 좀 내려놓기 시작한 막바지 사춘기 열여섯 아들과
온갖 생필품을 방 안에서 자급자족하는 열네 살 딸을 키우면서.
그렇게 사춘기 아들과 딸 사이에서 겨우 하루를 버텨내던
어느 날, 나는 뜬금없이 줌바를 시작했다.
살을 빼려고? 아니다. 그냥 살아보려고.
어찌 보면 도피였고, 나만의 비상이었고,
숨구멍 같은 해방감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춤을 잘 추는 사람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완전 젬병이다.
오죽하면 신랑이 나를 보고"야, 통나무가 움직이는 것 같다."라고 놀렸을까.
뭐 그래도 좋았다.
춤을 잘 추든 못 추든, 그 순간만큼은 '나'로 숨을 쉴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줌바를 다닌다. 것도 아주 신나게.
물론, 줌바를 가려다 보면 늘 무슨 일이 생긴다.
급한 택배, 학교 전화, 깜빡한 약속.
그래서 결국 한 달에 12번 가야 할 줌바 수업도
한 달에 두세 번 나가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아침마다 우여곡절을 넘기고 넘겨 겨우 도착한 줌바 모임.
입으로는 "오늘은 진짜 땀 뺀다" 외치지만,
운동이 끝나기도 전에 "오늘 뭐 먹을까?"를 고민하는 게 진짜 하이라이트다.
머릿속엔 떡볶이, 칼국수, 닭갈비, 커피에 디저트까지 코스별로 정복한다.
살을 빼러 왔다가, 결국 더 찌워서 헤어지는 이상한 운동 모임이다.
그런데도 우린 이상하게, 그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줌바가 끝나고 땀을 닦으며 나누는 대화도 또 하나의 일상이자 힐링이다.
어느새 자리 잡힌 주름을 어떻게든 지워보려고
제일 싼 가격에 보톡스를 맞을 수 있는 병원을 공유하고,
이주만 지나도 올라오는 흰머리를 가리기 위해
가성비 좋은 새치 염색 미용실을 추천해 주며 정을 나눈다.
자기 몸에는 야박하게 짜게 굴면서도
아이들 입에 들어갈 고기는 무항생제, 무농약, 친환경을 찾아다닌다.
내 몸은 덜 챙기더라도,
내 새끼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걸 먹이고 싶어서
언제나 아등바등 날아다닌다.
그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줌마 방식이다.
우리는 줌바를 빠지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다.
그 이유는, 살을 빼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인원이 부족하면 줌바가 폐강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몇 년을 함께 웃고 땀 흘린
우리 선생님의 생계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수업이 사라지면,
정든 얼굴들도 뿔뿔이 흩어질 테고,
누군가는 다시 하루하루 버텨야 할 이유를
잃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줌바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그렇게 삶의 작은 숨구멍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몸이 아파도, 스케줄이 바빠도,
수업료는 꼬박꼬박 내며, 의리로 자리를 지킨다.
요즘 어른들이 말하길 지금의 시대가 예전보다 정이 없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작고 깊게 자리 잡은 정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그 정은 어느새, 일상의 작은 의식처럼 우리를 묶어 준다.
신나게 땀을 흘리고 함께 밥을 먹으며 오늘의 에너지를 모아 본다.
마음 어딘가에 작은 여운이 남고,
1시가 되면 줌마들은 부랴부랴 흩어지기 바쁘다.
초등학교 엄마들은 허겁지겁 뛰어가고,
중학교 엄마들은 커피 한 잔 들고 여유롭게 집으로 걸어간다.
아이들이 크면서, 그렇게 엄마들도 조금씩 놓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겐 본격적인 진짜 하루가 시작된다.
말보다 오래 남는 감정을 씁니다.
각기 다른 시선에서, 당신의 마음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이야기로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