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 앞에 조용한 친구
정말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서운하거나 속상했던 기억,
누구나 한 번쯤은 가지고 있을 거다.
친하니까 편하게 대하고,
그래서 오히려 쉽게 생각하게 되는 관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친구’의 느낌이란 게 그렇다.
그런데 그 친구가 정말 내 친구인지 아닌지는
‘내가 잘 될 때’ 드러난다.
내가 힘들고 고생할 땐, 응원의 말들을 들을 수 있다.
왜냐면 아직은 내가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 친구라는 이름으로 건네는 응원은
어쩌면 ‘나보다 더 잘되진 않을 거야’라는 안도감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 응원이 고맙다.
그 친구의 진짜 마음을 모르면서도,
그냥 고마워하면서 그렇게 또 한 걸음 내딛는다.
그리고 결국 ‘성공’이라는 말 언저리에 가까워졌을 때,
나는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가장 가까이 두고 지냈던 친구의 축하는
건조한 말 한마디나,
하루 이틀 늦은 뒷북이 전부일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혼란스러워진다.
진짜 나를 아는 사람이 왜 이럴까?
나만 그 관계를 소중하게 여긴 건 아닐까?
말로는 ‘절친’이라 해도, 행동은 다르게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오히려 먼발치에서 나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더 따뜻한 축하와 진심을 건넸을 때,
나는 흔들린다.
‘나는 과연 진짜 친구가 있는 걸까?’ 하는 회의감이 고개를 든다.
그래서 잠시, 과거를 돌아본다.
내 친구들이 잘됐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해 보니 나도 불안했던 것 같다.
나는 계속 제자리인 것 같고,
친구가 앞서 나아가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나의 앞날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이라
누구보다 먼저 축하 인사를 건넸다.
겉으론 환하게 웃었지만,
마음속은 씁쓸하고 복잡했었다.
문득 이하영 원장님의 유튜브 속 말이 떠올랐다.
“친구란, 친할 친(親)에 입 구(口).
옛 구(舊)가 아니다.
즉, 과거를 붙잡고 나의 성장을 막는 관계가 아닌,
지금의 나와 같은 언어로 성장하는 관계가 진짜 친구다.”
우린 어릴 때 친했다는 이유로
오랜 추억을 공유했다는 이유로
‘절친’이라는 이름에 오래 기대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끊어질 듯한 끈을 억지로 바늘로 꿰매며 이어온 것처럼.
이젠 그 끈을 애써 붙잡지 않아도 된다고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내 결과를 진심으로 기뻐해줄 사람,
내 곁에 머물며 축배를 함께 들어줄 사람을
지금부터라도 곁에 두면 된다고.
인생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축배 같은 순간들로 가득 찼다면 너무 빨리 지나갔다고 느낄 것이고,
억지로 끌고 온 인연에 매달리며 살아왔다면
지겹도록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인생을 축배처럼 사는 건 어떨까.
그리고 나는 조용히 묻는다.
내 인생의 축배 앞에서, 누가 진심으로 웃어줄 사람인가.
그래서 오늘, 나는 축하 앞에 조용했던 친구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마음을 정리한다.
진심은 말보다 분명하다는 걸,
그래서 이제는 안다.
괜찮은 척, 그 사이를...
말보다 오래 남는 감정을 씁니다.
각기 다른 시선에서, 당신의 마음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이야기로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