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동경을 "수치"화하는 나

허용 가능한 경향성일까, 아닐까

by 박놀

사실 동경하는 것이 참 많았어요. 그만큼 "이것만큼은 안 된다"라고 두려워하는 것도 적지 않았나 봐요.

당장 저 자신에게 진솔하게 집중해서 글을 조금이나마 규칙적으로 완성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들에 대한 가능성을 급하게 겹겹이 쌓아 올렸어요.

자연스럽게 짧지 않은 길이만큼 성찰은 복잡해졌죠. 그래도 해야 한다고 판단해 버릴 말만큼은, 정답만큼은, 그리고 단순함만큼은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니, 생각해야 했던 걸까요.

"어려워, 너무 어려워. 아직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죽음보다 복잡함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심장이 깊이 추락하는 느낌이야."

경직됨을 인정해야 했어요. 그 글에서 저는 죽음을 너무 복잡하게 서술해 버렸어요. 마치 죽음보다 복잡함이 더 중요했던 것처럼요.

왜 거부감이 들지.
그냥 다시 풀어내면 되는데, 나는 무엇에 어떤 감각이 예민해지고 있는 거지.

사실 두려움이었던 것 같아요. 머리에 아무리 힘을 줘도 전달되지 않았거든요.

죽음을 좋아하는 것이든,
죽음을 좋아하는 나를 좋아하는 것이든
하나가 전부가 되지 않는다면 괜찮을 거라는 말이 말이에요.

그 하나가 무엇인지 모르겠어서.
아니, 어쩌면 그 하나가 죽음이지 않을까 싶어서.
아니, 그보다도 그 하나가 죽음도 아닐까 싶어서.

기어코 몸에서 힘이 빠졌어요. 제가 만들었기에 더욱 낯설 정도로 매서운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거예요.

솔직히 종종 있는 일이에요. 안팎으로 존재할 법한 시선보다도 제 안에서만 존재할 법한 시선이 더 두려웠어요.

"나만의 죽음"을,
꿈꿔보고 싶다고 외치고
정답보다는 가능성으로서 '새롭게' 성찰해보고 싶다고 외치는 건 괜찮았지만.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건 견딜 수 없었어요.

솔직히 성과에 매달리고, 성장을 의식하다가, 드디어 성찰에 주목할 수 있었다고 믿었는데....

하지만 성찰도 결국 저에겐 하나의 부담스럽지 않은 성과에 가까웠다면.

죽음도 죽음이라서 성찰한 게 아니라 그것이 복잡함이고 긴장감이고 움직임이라는 노력이고 그래서 생명력이라는 삶을 유지할 수 있어서 성찰한 것이라면.

죽음을 위해 자살에서 벗어나 삶을 마주해 보겠다는 그때의 말은, 사실
삶을 위해 자살에서 벗어나 죽음을 마주해 보겠다는 말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항상 시작은 힘 있게 시작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것이 바로 끝이 되어버릴까 봐 조금 두려운 것 같아요.

물론 끝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예요. 잠깐 머물거나 멈추며 다가올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순간이잖아요.

하지만 그것을 어딘가에 온전히 도달해 냈다고 느낄까 봐 걱정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올해의 시작은 이미 지나가버렸으니 동경했던 규칙적인 성찰도 당장은 더 이상 온전히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니까요.

천천히 다시 여러 갈래를 고민해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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