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희망으로 느껴질 가능성
사실 구체적인 관심 내용이나 생각은 항상 변하는데 요즘은 "죽음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보는 것 같아.
오랫동안 죽음을 꿈으로 정의해 온 나 아니면 막연한 도피처로 생각해 온 다른 사람들, 또 그것에 접근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공포나 불안을 느꼈던 사람들까지 각자에게 ‘그’ 죽음은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한 것 같아.
자연스럽게 자살 공부도 고민하고 있어. 죽음에 대해 비교적 소극적인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바뀌는 경우는 대개 그럴 수밖에 없는 '긴박한' 양상일 때가 많고, 그러다 보니 더욱 죽음과 자살을 동일시하게 되는 것 같아.
그러나 종종 나는 죽음을 묘사하는 검은색은 자살이고, 죽음은 그보다는 어떤 색으로도 물들 수 있는 하얀색에 가깝다고 생각하거든.
우리는 종종 자살의 죽음적 면모에 몰리는 것 같아. 죽음을 고민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중심에는 자살이 있을 때가 종종 있는 것처럼 말이야.
나 같은 경우에는, “나는 정당하고 자연스럽고 언젠가 다가오는 운명을 마주하고 있다.”라고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아. 특히 죽음을 ‘고귀하게’ 보기도 했어.
하지만 사실 우리는 죽음의 자살적 면모에 주목할 수도 있어. 육체적 자살 말고 심리적 혹은 영적 자살을 고민해 본다면, 내가 다시 태어나는 또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게 최근에 든 생각이야.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는 건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죽음을 온전함에 가깝게 경험한다는 건 아마 사람마다 그 의미가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숨을 돌리는 여유로서, 아니면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게 숨을 돌리기 위한 가능성으로서 이 제안을 조금은 ‘달갑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나 같은 경우에는 왜 이것이 숨을 돌리는 여유와 숨을 돌리기 위한 가능성으로 작용할 수 있었는지,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고민해 보고 싶은 것 같다.)
여기에서 또 좀 더 최근에 덧붙여진 생각은, “죽음으로 제안하는 것 이전에 죽음에서 넓혀나가는 것도 좋겠다.” 정도야.
죽음이 압도적인 메인이 아니라 함께 가는 중요한 개념이 되는 거지.
-26년 3월 8일 오랜만에 성찰을 기록하며-
저는 거의 항상 사로잡히는 존재였던 것 같아요.
가장 먼저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발목이 붙잡혔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를 빤히 바라보며 분석하는 또 다른 저에게 온몸이 잡아먹히곤 했죠.
그때는 당장 어둠이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큰 의미가 없는 걱정이었을지도 몰라요.
이미 어둠과 저는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거든요.
손이 내 손이 아니고, 눈이 내 눈이 아니고, 오로지 입술만이 그리고 그것이 내뱉는 말만이 저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 짐작해 보면, 그 제안들은 결국 이것을 묻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나는 왜 존재하지도 않는 어둠이 상상되고 느껴지는 것만 같을까.
‘모든 안 되는 게 X 같고, 모든 되려고 하는 것도 X 같아.’
물론 그게 잘 되지만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지만요.
사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어쩌면 저는 자유로워지려는 뭔가를 사로잡아놓고는, 오히려 사로잡혔다고 외치는 모순덩어리였을지도 몰라요.
모순이 나쁜 것만은 아니겠죠.
하지만 가끔 올라오는 감각에, 그리고 의욕 같은 것에 너무 ‘혹시나’ 싶어서 ‘역시나’ 안 될 도전을 무턱대고 시도하면서 누구보다도 두려워했던 추락을 기어코 직접 보려고 한 적이 몇 년이고 반복되었으니까요.
막막했어요. 저보다 강하면서 조금이나마 더 약한 부분도 없는 ‘약하지 않은’ 희망이, 결국 희망이라서 좌절될 수밖에 없었나 봐요.
최근 “희망은 인간으로서 받은 최고의 선물 중 하나”라고 얘기하는 듯한 가능성을 들을 수 있었어요. 그렇지만, 때로 그것은 선물이고 본인에게조차 소중하지 않은 존재를 대신 소중히 여겨보려는 시도라서 더 괴로울 때가 있나 봐요.
감당하기 힘든 따스함이었을지도 몰라요. 그건 좀비처럼 느껴질 정도로 거의 움직이지 않는 몸에서 유일하게 계속 뛰는 심장박동에 가까웠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에게 죽음이 희망이되 좌절이고, 사로잡히되 사로잡기도 하는 존재였다가 어둠이란 검은빛에서 어떤 것으로도 물들 수 있는 하얀빛으로까지 확장된 것이지 않을까 요즘은 감히 짐작하고 있어요.
사실 짐작만 겨우 하고 있어요. 요즘 또 글도, 성찰도 잘 나오지 않는 것 같거든요.
이젠 손과 눈은 자유로운데 입술이, 말이 이전에 던져졌던 또 다른 자신들에 의해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요즘은 앞에 서 있는 존재가 항상 어둠인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정확히는 그냥 투명함에 가까워요. 덕분에 그 너머에 있었을 다른 것들도 이제는 볼 수 있어요.
아직 저 자신은 사랑하지 못하고 있지만, 항상 함께했던 주변인들 그리고 함께해 줄 새로운 사람들, 마지막으로 너무 진심이라서 하루 1시간도 채 할 수 없었던 쉬는 시간과 공간들을 먼저 사랑해 보려고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죽음은 저에게 도달해야 하는 마지막 집중이 아니라, 다른 것들도 감상할 수 있는 넓힘의 시작이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자칭 죽음 성찰가에게 죽음을 미룬다는 건 또 아마도 더욱 다양해지겠네요.
그건 마치 한동안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을 외면하다가 지금 당장 쓰고 싶은 글을 적어보는 이 순간과 비슷할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수단이 대상이 되는 순간. 한순간이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