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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유선생 Aug 03. 2022

오줌 눌 사람

맹관수 선생은 오늘도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부에 도장을 찍으려는 듯이 화장실로 향했다. 도열하듯 죽 늘어선 하얀 소변기들 사이로 지나가는 11월의 을씨년스런 바람과 부르르 떠는 맹선생의 어깨가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중소도시에 위치한 비교적 시설이 좋은 남자중학교에 근무하는 맹선생이 퇴근하기 전에 꼭 화장실에 들르는 것은 퇴근길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집은 학교에서 걸어서 20분 정도밖에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남들이 들으면 실소를 머금게 할 그 이유는 전혀 뜻밖에도 물 때문이다.


오줌과 물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혹자는 반문할 것이다. 그 의문을 풀기 위해 맹선생의 집안을 하루만 기웃거려 보자.


도시의 변두리에 위치한 조그만 아파트에 맹선생네 4식구는 10여 년째 살아오고 있다. 아침에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는 맹선생은 세수를 하고 나서 신문을 보며 처자식들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열 살이 가까워오는 두 아이 중 하나가 일어나서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누군가가 옆에 대기하고 있지 않으면 방안을 향하여 소리를 지른다.


“오줌 눌 사람!”


또 한 놈이 오줌을 누고 아내까지 볼일을 보고 난 다음에야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노란 오줌으로 가득 찬 좌변기로 다가가 참았던 물줄기를 쏟아놓는다. 결국 4통의 물이 1통의 물로 해결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맹선생댁의 남다른 아침 풍경은 하루아침에 쉽사리 형성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아내와의 별로 아름답지 못한 입씨름 끝에 어렵사리 쟁취한 것이었다. 맹선생은 이런 문제로 아내와 말다툼을 벌일 때면 국민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라 더욱 치열한 전의를 불태우곤 했다.


60년대 말의 어려운 시기에 교편을 잡고 있던 그분은 천성 때문이었는지 시대의 영향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무엇이든지 아끼는 버릇이 생활화되어 있었다.


라인강의 기적을 이룩한 독일 사람들의 근검 절약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는 훈화를 자주 했는데, 그 중의 하이라이트가 담뱃불 이야기였다.


“독일 사람들은 성냥 한 개피를 아끼기 위해 다섯 사람 이상이 모여야 담배에 불을 붙인다. 우리 나라도 잘살기 위해서는 아끼고 또 아껴야 한다.”


이 말은 맹선생의 가슴에 화인(火印)처럼 찍혀져 소년 시절부터 불혹의 나이를 넘기고 있는 지금까지 거의 무의식적인 절약습관으로 나타나곤 했다.


종이 아끼기, 전기 아끼기, 음식물 아끼기... 그 중에서도 물 아끼기는 맹선생에게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앙과도 같은 것이어서 매일매일 화장실에서의 진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세월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 속에서 맹선생의 서릿발같은 권위는 점차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전에도 불퉁거리긴 했지만 남편의 뜻을 거스르지는 않던 아내가 요즘 들어서는 노태우씨 비자금 사건을 보고, 간이 커졌는지,


“남들은 수천 억씩 가지고 노는데, 당신은 그깟 10원도 안 나갈 물 몇 방울가지고 난리예요? 제발 남자가 통 크게 놀아보세요”


하면서 비아냥댔다.


뿐더러 아이들도 머리가 좀 굵어지더니 제 엄마 쪽에 붙어서, 냄새가 난다느니, 아직 안 마렵다느니 하면서 그의 심사를 뒤틀어놓고 하였다.


그러자 맹선생은 방향을 바꿔 학교에서의 물자 아끼기 운동에 돌입했다.


빈 교실의 전등 끄기, 그냥 틀어 놓고 간 수도꼭지 잠그기, 재활용할 물건 모으기……. 그 중에서도 맹선생의 관심의 초점은 화장실로 집중되었다. 그건 어쩌면 집안에서 떨어진 권위를 밖에서 회복해보려는 당연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몰랐다.


맹선생은 틈나는 대로 자주 학생 화장실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칸막이 안의 좌변기에 소변을 보는 아이들을 단속했다. 당신 집안의 ‘오줌 눌 사람’을 예로 들어가면서, 좌변기의 물이 소변기의 10배도 넘게 들지 않겠느냐고 나무랐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학생 화장실까지 들어와서 시시콜콜 간섭을 하는 것에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급기야 선생의 잔소리를 피하고, 선생의 시선으로부터 자기들의 고추를 감추기 위해 더욱 기를 쓰고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맹선생은 칸막이 안으로 들어간 아이들이 한참씩 소리도 없이 문을 잠그고 있어서, 똥을 누는지 오줌을 알 수 없을 때는 너무나 답답해서 화장실마다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하루 종일 지켜보고 싶은 심정이 되곤 했다.


전에는 학생들 사이에서 모든 면에 열성적이라서 좋은 평을 듣던 맹선생이 이제는 은근한 비웃음을 당하는 쪽으로 바뀌어 갔다. 며칠 전에는 화장실로 들어서는 맹선생의 뒤에서 어떤 녀석이 “오줌 눌 사람!”하고 소리를 지르고는 도망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주위의 동료 교사들도 맹선생의 행동을 경원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학생들에게 하는 것처럼 직접 참견은 하지 않지만, 덜 쓴 종이를 버릴 때 슬쩍 집어 간다던가, 잠시 전등을 켜 놓은 채 교실을 비워두면 어느 샌가 들어와서 소등을 하는 등, 괜한 짜증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발붙일 곳을 잃은 맹선생의 어깨는 날개 꺾인 새처럼 축 처지고, 쉴새없이 잘못된 것들을 찾아 번득이던 눈빛도 눈앞의 것들을 애써 회피하려는 듯이 발 밑으로 내리깔고 있었다.


언제인가부터 맹선생은 화장실 출입을 피하게 되었다. 홀로 교정을 거닐기 좋아하는 맹선생의 축 처진 어깨와 허허로운 걸음걸이가 영락없이 추수가 끝나버린 논바닥에 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 꼴이었다.


토요일 종례 시간이었다. 맹선생이 주말을 알차게 보내라는 의례적인 훈화를 마치고 교실을 나서려는데 반장 녀석이 벌떡 일어났다.


“선생님, 내일 우리 반 겨울 맞으러 산에 가요.”


산을 오르며 재잘대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화답하듯, 낙엽들이 발 밑에서 기분 좋은 바스락 소리를 냈다.


겨울은 아직 시작단계였지만 산 위의 기온은 훨씬 차가워서 아이들은 뜨거운 국을 끓이겠다고 했다. 녀석들은 그 흔한 가스버너 하나 가져오지 못했다며 불이 주위로 번지지 않을 밭 가운데로 가서 땅을 파고는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와서 모닥불을 피웠다. 한동안의 소란 끝에 밥을 먹고 나서, 아이들은 모닥불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둘러앉아 손에 손을 맞잡고 목청을 높여 노래를 불렀다.


어느덧 산을 내려갈 시간이 되었다. 사그라져 가는 모닥불 주위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반장이 눈을 찡긋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며,


“오줌 눌 사람!”


하고 산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합창했다.


아이들의 풋풋한 고추에서 시원스런 물줄기가 일제히 쏟아졌고, 모닥불에선 기분 좋은 치지직 소리와 함께 따스한 김이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맹선생은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감추려고 먼 산으로 눈길을 돌렸다.


지금 막 따스한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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