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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유선생 Jul 06. 2022

냉장고 속으로 들어간 똥

영미씨는 냉장고를 열었다. 지난 주 물놀이를 갔다 와서 넣어둔 된장 봉지를 꺼냈다.


“누가 이렇게 꽁꽁 묶어 놓았지?"


그러나 낑낑대며 풀어놓은 검은 비닐 봉지 속에서 나온 것은 노랗게 잘 익은 똥이었다.


이건 내가 구상해 봤던 꽁트의 첫 부분이다. 지금부터 실제 있었던 그 내력을 적어 본다.


재작년 여름 방학 때의 일이다. 방학이 거의 끝나갈 무렵, 우리 네 식구는 지리산 대성리 계곡으로 때늦은 피서를 떠났다. IMF라는 말은 조금치도 예상치 못했던, 그야말로 흥청망청 즐기던 시절이었다. 길게 이어진 계곡엔 처음과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행락 인파들이 가득 찼고, 도로에는 빠져나갈 틈도 없을 정도로 승용차들이 줄줄이 주차되어 있었다.


우리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다. 7 살, 10 살 된 두 아이는 물 속으로 뛰어들어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른 뒤 사고가 터졌다.


막내딸이 자꾸 엉덩이 쪽으로 손을 가져가는 폼이 이상하다 싶더니 똥이 마렵다고 했다. 저 만큼 두 곳에 간이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기에 가 봤더니 오물이 마구 넘쳐 나서 근처에 접근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하기야 그렇게 많은 행락객들의 뒷처리를 몇 개의 간이화장실로 해결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턱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동안 배고팠던 시절을 한풀이라도 하려는 듯이 갖가지 음식들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아귀아귀 먹어대고 있는 터였으니........


하는 수 없이 적당한 장소의 땅을 파고 급한 일을 해결하기로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개울가 사람들이 앉아 있는 곳에서 조금만 숲 쪽으로 들어가 보면 어김없이 누군가가 실례한 그것이 널려 있었다. 여기도 똥, 저기도 똥...... 그곳은 김지하의 시에 등장하는 장면처럼 온통 똥의 바다였다. 더구나 그곳은 거의 큼지막한 돌들로 형성되어 있는 계곡이라 파고 묻고 할 방법이 없어서, 그것들은 결코 아름답지 못한 자신들의 나신을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눈부신 햇살 아래 송두리째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들은 바로 부끄러운 우리들의 얼굴이었다. 나는 그곳으로부터 한시라도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울며 보채는 아이는 피할 수 없는 현실. 나는 비닐 봉지를 가져와 그 속에다 아이가 볼일을 보도록 했다. 계곡 구석구석에는 아무렇게나 쌓아둔 쓰레기 봉지들이 수없이 널려 있었지만, 이것을 그것들 옆에 슬쩍 끼워 넣는 행위는 조금 전의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나로서는 이미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을 새로운 비닐 봉지에 넣고 꼭꼭 싸맨 다음 결연한 동작으로 차 트렁크에 싣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차를 타고 오면서 계속 이런 걱정이 들었다. 혹시나 그 비닐 봉지를 잊어버려 아내가 그게 남은 반찬이 아닌가 생각되어 냉장고 속에 집어넣지나 않을까 하는.....


물론 ‘냉장고 속으로......‘의 서두는 허구다.


그 다음 날 남부 지방엔 집중 호우가 내렸다. 나는 하루 종일 지리산 자락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그 똥들이 냇물 속으로 쓸려 들어가 결국은 청정 해역인 우리 광양만을 시화호처럼 오염시킬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산더미처럼 거대한 똥물이 파도처럼 나를 덮치는 악몽에 시달렸다.


며칠 전 서울에 갔다가 중랑천을 지나게 되었는데, 10여 년 전 악취를 풍기던 검은 냇물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얼굴로 낚시꾼들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자연은 우리들의 마음 자세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모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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