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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림 May 02. 2022

우리는 통한다

'랍스터', '녹색광선'

에릭 로메르’의 ‘녹색 광선’은 1986년 작이다. 거리 풍경이나 옷차림, 여주인공의 심리적 여정 등을 보니 마치 한국의 미래를 예견한 것만 같다. 주인공 델핀의 고민은 지금의 같은 또래에게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영화를 보니 프랑스도 80년대에는 고루하고도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델핀은 개성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과 비슷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녀는 비사교적인 채식주의자다.


평범한 여성의 특별할 것 없는 취향이지만 당시에는 이런 게 모두 도드라져 보였다. 무엇보다도 그녀 스스로 자신을 문제아 취급하는 점이 눈에 띈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는 특히 더하다. 델핀은 사람들의 단순한 질문, 반응, 이어지는 다른 질문에 지치고 좌절한다.

왜 당신은 육식을 하지 않는가? 생선은, 혹은 계란은 먹는가? 꽃을 먹지 않는 이유는? 좌중이 주목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답변을 이어가야만 한다. 개인의 취향, 철학, 가치관을 타인에게 검토 받는다. 자신의 선택임에도 남들을 의식하고 변명을 나열한다.

이런 식성을 가졌으니 성격도 이상하게 볼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남들이 직접 표현하는 건 아니다. 델핀은 자의식이 강한 탓에 늘 평가절하에 시달린다. 사람들은 같이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 친구, 애인, 학교나 직장 이야기에도 스스럼이 없다. 그러나 델핀은 가벼운 만남, 스몰토크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여행지에서도 남들과 떨어져 이곳저곳 어슬렁거리다가 의기소침해지기 일쑤다.


친구들이 남자를 소개한다, 여행을 알선해준다하며 신경을 써주지만 다 귀찮다. 그저 내버려 두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은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델핀을 ‘외로워 보인다’, ‘슬퍼 보인다’며 위로를 건넨다. 사교 왕국에서는 고독한 캐릭터가 트러블메이커나 다름없다. 혼자라는 것 자체가 좀 부족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주변에서 이런 평가를 계속 듣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모자란 사람’이 다. 자기 스스로 낙인찍는 격이다.

최근에는 남자 친구와도 결별했다. 남자들이 시선을 보내지만 그녀는 달갑지 않다. 그녀는 남자들을 의심한다. 자신의 육체에만 관심이 있을 것 같고 그 관심도 며칠이면 끝날 거라고 지레짐작한다. 남자들이 접근하면 손사래를 치며 도망치기 일쑤다. 그녀에게 대부분의 남자들은 쳐다보는 것 자체로 추행범이나 다름없다. 청바지 안에 티셔츠를 집어넣고 굵은 가죽 벨트로 마무리한 80년대 남자들을 오랜만에 보고 있자니 너무 반가워 눈물이 다 났다. 델핀에게는 그 남자들이 다 아웃이다. 대화해 볼 것도 없이 한눈에 실격이다.

영화가 끝날 때쯤에야 애인이 될 법한 남자가 나타났다. 실망만 거듭한 델핀이 바닷가를 떠날 때쯤 간발의 차이로 마주친다. 남자는 그녀가 들고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를 알아보고 말을 건넨다. 그제야 델핀은 웃음을 지으며 남자를 바라본다. 그녀는 둘이 통할 만한 어떤 것을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영화 제목 ‘녹색 광선’은 쥘 베른의 소설 명이기도 하다. 날씨 맑은 날, 석양이 질 무렵이면 빛의 굴절로 녹색 광선이 보인다고 한다. 물론 해가 지는 순간 섬세한 이들에게만 보일 것이다. 남들은 일아채지 못할 매혹을 공유한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녹색 광선이 그녀에게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다.

영화가 상당히 로맨틱하다. 오랜만에 80년대 분위기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외로운 내면이 풍부하게 묘사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이라면 심심할 때마다 핸드폰을 켜고 앉지 않을까. 깊은 감성을 느끼기도 전에 화면에 홀려 자신의 기쁘고 슬픈 순간을 지나칠지도 모른다. 배우는 이 영화를 서른 살에 출연했다. 삼십 세는 아름다운 나이지만 그 시절 특유의 고민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혼자는 대부분 외롭다. 아니, 외로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애인이나 배우자가 꼭 있어야 하나. 있으나 없으나 인간은 외롭다고 여기는 이들도 여전히 많다. 혼자 있으면 남들이 그립지만 여럿이 있으면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이다.

요그로스 란티모스의 ‘랍스터’(2015) 세상의 커플 독신자들에 대한 신랄 우화다. 근 미래, 어느 호텔이다. 이곳에 모인 남녀는 45일 안에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될 운명이다. 호텔 남녀는 필사적으로 애인을 구한다. 공통점이 없으면 있는 척이라도 해서 누군가와 커플이 되어야 한다.


연인만들기에 실패한 주인공 남자는 숲 속으로 탈출하는데 곳 상황은 호텔과 반대다. 거기서는 누구든 혼자여야 한다. 그들은 누가 죽거나 다쳐도 도와서는 안된다는 원칙 아래 독자적으로 산다. 남녀가 연인이 되면 처벌을 받거나 총살을 당한다. 남자는 그곳에서 한 여자를 알게 된다. 그들의 공통점은 근시라는 . 그런데 그녀가 실명한다. 두 연인의 공통점이 사라졌다. 남자는 칼을 들고 화장실로 간다. 자기의 눈을 찌르거나 도망가야 한다.












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외로워도 그와 그녀 사이에 뭐라도 통하는 점이 있어야 한다. ‘모든 동물은 성교 후에 우울하다 Post coitum omne animal triste est’라는 라틴어 문장이 다. 사랑하는 남녀 간에도 일어나는 불상사인데 관심 없는 남녀 사이에는 말할 것도 없다.

영화 ‘랍스터’의 배경이 미래 디스토피아만은 아니다. 한때는 한국 사회도 타인에게 이것저것을 강요하는 일이 잦았다. 다수가 용인한다고 원칙은 아니다.

애인이든 친구든 서로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 찬성한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그런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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