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과거처럼 연말을 지상파 3사의 시상식을 보며 보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올 한 해에 활약했던 지상파 프로그램에 공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해 미디어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되면서 가장 큰 변화는 미디어를 집단적 매체에서 개인화시켰다는 점이다. 기존의 지상파 프로그램을 즐기기 위해서는 모두 거실 TV 앞으로 모여 정해진 시간에 집단적으로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패턴을 가졌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원하는 콘텐츠를 취향에 맞게 선택하여 개인이 원하는 디바이스와 시간에 자유롭게 개인적으로 향유가 가능하다. 특히나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콘텐츠들은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로 MZ 세대들에게 친절하다. 지상파가 현재 겪고 있는 위기는 기술이 발달하고 미디어 소비 패턴이 바뀌었음에도 지상파가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1020 세대들의 소비 패턴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단순히 지상파 3사의 내부적 변화보다는 방송국으로서 그들이 지향하는 역할과 기조, 명분에 대한 전반적인 변혁이 필요하며 이에 맞는 정부의 지원과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콘텐츠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지상파 프로그램의 타깃 연령을 다각화해야 한다. 지금의 지상파 프로그램 타깃 연령은 과거와 비교해 상승했다. 젊은 세대의 지상파 선호도와 시청률이 낮아지고 이들이 ott와 유튜브에 대한 관심도가 상승하면서 지상파는 자연스레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시청해 주는 4050 세대에 집중한 프로그램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몇 해 전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과 관련 파생 예능은 어떤 방송국이든지 모두 뛰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예능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관찰 예능 분야에서도 SBS 동상이몽, 미운 우리 새끼 등이 각 방송사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이 프로그램들은 MZ대들에게 불친절하게 다가온다. 젊은 세대는 알기가 어려운 과거 인기를 끌었던 연예인 또는 예전부터 출연하던 익숙한 출연자 들만이 출연하여 연기자들의 평균 연령도 상승했다. 문제는, 결국에 이러한 현상이 프로그램 향유에 있어 세대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1020과 4050이 보는 프로그램이 명징하게 나누어지고 결국 정보 격차가 생길 것이다. 당장 1020세대가 지상파 프로그램을 시청하지 않는다고 특정 세대만을 위한 비슷한 포맷의 양산형 프로그램만 생산해 내는 것은 지금의 지상파 위기를 극복하기에 적절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두 번째, 프로그램 제작에 유연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지금 지상파에게 인재 유출은 심각한 문제이다. 과거 지상파 예능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나영석, 김태호 PD를 비롯한 많은 인재가 CJ와 OTT 등 콘텐츠 제작에 집중할 수 있는 회사로 이직했다. 문제는 이들이 이직하여 새로운 포맷과 새로운 형식의 작품들로 예능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기성세대가 되고 능력치가 부족해져서 퇴사한 것이 아니라 이들의 뛰어난 능력을 펼치기엔 지상파의 울타리는 견고했고 TV라는 디바이스에만 갇혀 있어야 했다. 드라마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미스터션사인’은 원래 SBS에서 편성 논의가 진행되던 중 제작비 문제로 tvN으로 변경되었고 CJ는 제작비 문제를 넷플릭스를 통해서 손쉽게 해결했다. 이는 CJ가 가진 스튜디오 드래곤이라는 콘텐츠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자회사의 존재로 콘텐츠 제작 및 투자가 유연하고 활발한 환경 덕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즉, 지상파는 뛰어난 인재를 보유함에도 유연한 제작 환경을 마련해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근거로, 지상파는 단순히 프로그램을 송출하고 편성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렇듯 콘텐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마땅히 그에 걸맞은 투자가 필요하다. 현재 지상파의 주요 수입원은 광고인데, PP에게도 광고 수입이 밀릴 정도로 최근 몇 해 지상파는 적자 상태를 겪고 있다. 광고를 늘리는 것이 과연 지상파를 재정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 답은 아니라 생각한다. 지상파는 수입원을 다각화해야 한다. 구글은 유튜브에서 광고를 시청하지 않아도 되는 유튜브 프리미엄 요금제를 출시했고 이는 국내 기준 매달 1만 원이 넘는 금액으로 TV 수신료의 4배 이상의 금액이다. 하지만 21년 9월 기준 전 세계 이용자수가 5000만 명이 넘었고, 실제 유튜브 프리미엄의 사용자로서 미디어 콘텐츠를 향유하는데 광고가 없다는 것이 매우 편리하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또, 넷플릭스도 콘텐츠 전후, 중간 광고를 삽입하는 대신 기존 요금제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 가능한 요금제를 출시할 예정이라 발표했다. 이렇듯 많은 이들이 광고의 존재는 콘텐츠 향유에 있어서 불편한 것임을 증명하고 있고 매년 약 12만 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할 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지상파는 어떠 한가? 프로그램 시작 전, 후, 중간 광고가 당연히 삽입되어 있고 때로는 오디션 프로그램 등에서 광고를 프로그램의 긴장감을 고조하기 위한 요소처럼 활용한다. 이러한 소비 행태를 가진 시청자들에게 불편하고 기다려야 하고 폐쇄적인 요소를 가진 프로그램은 어떠한 장점도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광고를 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더 이상 광고에만 의존한 수익 창출은 재정 위기 극복에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상파는 과연 어떤 방식의 수익 창출이 필요할까? 나는 이를 IPTV과 OTT 등의 재송신수수료 수익에 집중해보려 한다. 특히 지상파는 프로그램을 또 다른 루트로 방송할 수 있는 OTT를 전략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OTT야 말로 개인화된 플랫폼이다. 몇 개의 OTT 업체 중 시청자들이 돈을 지불할 업체를 선택하고, OTT 사이트에 접속하여 개인의 취향에 맞는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소비한다. 이때 수많은 콘텐츠들 사이에서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콘텐츠의 경쟁력이 중요한 요소이다. 지상파 3사의 콘텐츠는 웨이브에서 독점 유통하고 있는데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웨이브의 장점은 지상파의 콘텐츠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지만 동시에 이들을 TV를 통해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는 치명적 단점을 가지고 있다. 즉, 지상파의 콘텐츠를 돈을 내고서까지 시청하기보다는 해외의 영화 드라마 또는 거대 자본을 투자받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 오늘날의 시청자들인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웨이브의 콘텐츠들이 선택받을 수 있게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첫 번째 의견과 일맥 상통하다. 프로그램 매력이 떨어지니 시청률이 줄게 되고 그에 따른 광고 수익이 줄게 되며 이는 방송사를 재정 위기에 빠지게 만들고, 예산이 줄어 결국 프로그램 질 하락으로 시청률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현재 지상파가 집중해야 할 것은 프로그램 경쟁력 향상이다. 단순히 플랫폼으로서 방송국의 역할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콘텐츠 제작과 투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이를 위한 유연한 제작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질 좋고 트렌드에 맞는 콘텐츠로 1020 세대의 귀추를 주목시킬 만한 여건을 만들고 개인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선택 소비하는 환경에 대해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프로그램 경쟁력을 높이고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여러 가지 전략적 플랫폼들을 잘 이용해야 한다. 즉, 방송국은 콘텐츠 제작 회사라는 포맷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지상파가 가진 역할인 뉴스, 시사 교양 프로그램과 같은 공공성 제고에 대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국내 방송계는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말 같지만, 실패 없는 성공은 없는 것처럼 투자 없는 성과도 없을 것이다.
-2022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