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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은 감정이 너무 많을 때 온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일어나기가 너무 버겁고,

평소엔 아무렇지 않던 일조차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다.


딱히 슬픈 일도 없고,

화나는 일도 없는데,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그럴 땐 스스로를 이렇게 탓하게 된다.

“왜 이렇게 의지가 없지?”

“나 왜 이렇게 게으르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 알게 됐다.

그 무기력의 정체는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온 것이었다는 걸.


하나하나 정리하지 못한 감정들이

마음 안에서 뒤엉켜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지 모를 정도로

복잡하게 엉겨 있는 상태.


그래서 마음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방어적 마비 상태에 들어간다.


무기력은 ‘의욕 부족’이 아니다.

그건 오히려

지나치게 많은 감정의 흔적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날들,

감정을 눌러 참았던 순간들,

상처받고도 말하지 못했던 기억들.

그 모든 것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날,

몸이 먼저 멈추는 것이다.


나는 그런 날들을 부끄러워했었다.

남들처럼 부지런하지 못하고,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소파에 앉은 채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나를.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마음이 나에게 보낸 구조 요청이었다는 걸.


그래서 요즘은

무기력한 나를 다그치기보단

조금 더 내 마음에 귀 기울여보려 한다.


“너 지금, 감정이 너무 많아서 그런 거지?”

“괜찮아, 다 느끼지 않아도 돼.

오늘은 그냥 조용히 있어도 돼.”


그렇게 나를 향해

한 발짝 물러나는 순간,

마음은 아주 조금,

다시 움직일 준비를 시작한다.





"이 글은 상담심리학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동행하며 그들의 감정 여정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한 가상의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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