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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아래 좌절이 있고, 좌절 아래엔 수치심이 있다


처음엔 그저 슬펐다.

어떤 기대가 어긋났고,

마음 한편이 쓸쓸하게 무너졌다.

그때는 몰랐다.

그 감정의 바닥이 그렇게 깊을 줄은.


슬픔은 겉으로 표현하기 비교적 쉬운 감정이다.

눈물이 있고, 말이 있고, 어쩌면 공감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슬픔이 정말 말하고 싶었던 감정은,

그 아래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다는 걸.


슬픔을 더듬어 내려가면

좌절이 나온다.

몇 번이고 기대해 봤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이해받지 못한 느낌.

말해봤자 바뀌지 않는 현실.

그래서 결국 포기하게 된 마음.


좌절은 조용한 절망이다.

화도 내지 못하고,

뭘 더 시도할 힘도 없을 때,

마음은 말없이 고개를 떨군다.


그 좌절의 밑바닥엔

수치심이 있었다.


‘내가 뭔가 잘못했나?’

‘괜히 기대했나?’

‘내가 과했나?’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작게, 깊게, 천천히

마음을 잠식해 들어왔다.


그래서 어떤 감정은

표현할 수가 없다.


‘괜히 민망해질까 봐’

‘감정이 크다고 보일까 봐’

‘나약해 보일까 봐’


그런 생각에

슬픔조차 억누르고,

좌절은 숨기고,

결국 남는 건

“나는 그냥 괜찮아”라는 말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싶다.

내가 느끼는 감정의 ‘첫 목소리’가 아닌

마지막 울림을.


내 슬픔 아래에 있는 좌절,

그리고 그 좌절이 품고 있는 수치심까지도

내 감정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나는 더 이상

내 감정과 싸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 글은 상담심리학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동행하며 그들의 감정 여정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한 가상의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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