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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울타리였다


나는 한때

화를 내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목소리가 커지고,

표정이 굳고,

선 말이 튀어나올 때마다

그 사람의 본심보다

그 태도에 먼저 겁이 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 알게 되었다.

분노는, 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울타리일 수 있다는 걸.


사람은 참는다.

불편한 말을 꺼내지 않고,

상대의 말에 맞춰주고,

화내고 싶을 때조차

그 감정을 억누른다.


왜냐하면

사랑받고 싶고, 거절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관계를 위해

마음을 접고,

자존을 꺾고,

그렇게 조용히 물러선다.


그렇게 물러선 마음은

어느 순간 벽이 된다.

작은 무시, 반복되는 상처, 말 없는 외면.

그리고 끝끝내 누군가 내 울타리를 넘보는 순간,

마음은 마지막 방어기제로 분노를 꺼내 든다.


그건 누군가를 공격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여기까지가 내 한계야”라고 외치는 절규에 가깝다.


분노는 본심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 훨씬 먼저,

슬픔이 있었고, 서운함이 있었고, 기대가 있었고,

참아왔던 애씀이 있었던 사람의 감정이다.


화를 내고 나서

뒤돌아 앉아 조용히 우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면,

우리는 그제야 안다.

그 분노는 누군가를 밀쳐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붙잡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걸.


나 역시 그랬다.

참고, 참고, 또 참다가

터뜨리듯 쏟아낸 말들 뒤에

남는 건 후회와 자책뿐이었다.

하지만 뒤늦게 알게 됐다.

그건 내가 미성숙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나를 보호하지 못한 채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걸.


분노는 나쁜 게 아니다.

다만,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그 울타리 안에는

외롭고 지친 마음이 앉아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사실 누구보다 안전하고 따뜻한 이해를 원하고 있었다.






"이 글은 상담심리학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동행하며 그들의 감정 여정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한 가상의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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