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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낼 수 없을 때, 마음은 아프게 잠든다


화를 낸 적이 별로 없다.

기분이 상해도 웃어넘기고,

속이 끓어올라도

“아니야, 그냥 내가 예민한 거지”라고 넘겼다.


분위기를 망치기 싫었고,

나 때문에 누군가 기분이 나빠질까 봐 두려웠다.

화를 낼 줄 몰라서가 아니라,

화를 내는 나를 누가 싫어할까 봐,

그게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조용히 상처받는 쪽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마음속 어딘가는

계속해서 붉게 멍들고 있었다.


화를 삼키는 게 익숙해질수록,

감정 표현은 어색해지고,

결국 나는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화를 내지 않는 건,

착한 게 아니다.

그건 대개

두려움에 익숙해진 방식이다.

갈등이 곧 거절이었던 기억들,

말을 꺼냈다가 상처받았던 순간들.

그 모든 것들이

마음을 조용히 닫게 만든다.


그렇게 오래 참은 마음은

나중엔 분노조차 느끼지 않는다.

그저 멍하니,

조용히,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하루를 넘긴다.

그리고 밤이 되면

감정 없는 얼굴로 잠에 든다.


하지만 그건

감정이 없는 게 아니다.

마음이 아프게 잠들어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야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화를 건강한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건

상대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나를 지키는 감정의 언어라는 것.


그 언어를 몰라

마음이 멍들고,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졌다는 걸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보다

더 큰 용기는

감정을 꺼내는 일이었다.

나는 지금,

내 마음이 다시 깨어나길 바라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를 연습하는 중이다.





"이 글은 상담심리학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동행하며 그들의 감정 여정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한 가상의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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