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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동안,

나는 나를 돌보지 않았다.


바쁘다는 이유로,

견뎌야 한다는 이유로,

“지금은 감정을 꺼낼 때가 아니야”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며

내 마음을 조금씩, 멀리 밀어두었다.


해야 할 일들이 늘 먼저였고,

사람들의 눈치와 감정을 먼저 배려했다.

그리고 내 안의 조용한 슬픔,

어딘가 무겁게 쌓인 피로 같은 감정들은

자꾸만

“나중에 보자”

하며 밀쳐두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어느 날 문득,

나는 나에게서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걸 느꼈다.


마음이 없어진 게 아니었다.

내가 너무 오랫동안

그 마음을 찾아가지 않았을 뿐이었다.


마치 집을 떠난 아이처럼

내 감정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조용히 남겨져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엔

조금 두려웠다.

지금 다시 그 마음을 열면

모든 게 무너질까 봐.

꺼낸다는 건 다시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이라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아주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마음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마음은 그 자리에 있었다.

도망가지도 않았고,

서운해하지도 않았고,

그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괜히 울컥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 마음이

그렇게 오래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어쩐지 미안했고,

고마웠고,

어딘가에서

조금 안도되었다.


마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자리를 지키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속상했던 기억,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

이미 잊었다고 생각했던 것들마저도

사실은

내 안 어딘가에서

그저

내가 다시 돌아와 주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마음에게 조금 더 자주 말을 걸어보려 한다.

“괜찮아?”

“오늘은 좀 어땠어?”

다그치지 않고,

재촉하지 않고

조금 더 다정하게 묻는 연습.


그건 거창한 자기돌봄이 아니라,

그저

내가 나에게

다시 말을 걸기 시작한 시간이다.


마음은 떠난 게 아니다.

잊힌 채로,

조용히,

그 자리에 앉아

우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따뜻하게.






"이 글은 상담심리학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동행하며

그들의 감정 여정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한 가상의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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