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감정을 살아낸 딸, 나는 누구였을까

※ 이 글은 심리상담학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만나며 관찰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정서적 희생과 자기 상실을 겪은 수많은 딸들의 이야기를 ‘한 사람’의 목소리로 재구성한 마음의 기록입니다.

연재 중인 『상처 입은 내면과 회복의 기록』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세 살 무렵이었다.

내가 무심코 던진 나무 블록이 엄마의 이마에 맞았고,

엄마는 고개를 돌려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 이유도 모른 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다시는 엄마를 울리지 않겠다고.


그 다짐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었다.

그건 내 삶을 지탱한 생존 전략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엄마의 감정을 먼저 살피는 아이가 되었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담긴 기색을 민감하게 감지했고,

내 마음보다 엄마의 반응을 먼저 헤아렸다.


그렇게 나는 자신을 지우는 법을 배웠다.

사람들은 그런 나에게 “참 착하다”고 말했다.

그 칭찬은 달콤했지만, 동시에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감정의 우선순위는 바뀌지 않았다.

“나는 괜찮아”라는 말은 내 마음을 보호하는 주문이 되었고,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나는, 그것을 ‘배려’라는 이름으로 감췄다.


그러나 그런 배려는 종종 자기 상실이라는 그림자를 남겼다.


어느 날 문득, 마음속에서 이런 질문이 올라왔다.

“엄마가 아니라면,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이 질문은 금세 사라지지 않는다.

한 번 마음을 울린 사람에겐, 다시는 잊히지 않는다.


거울 속 내가 낯설었던 이유는,

오랫동안 타인의 기대 안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이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나는 엄마를 사랑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엄마를 사랑하는 것과 내 감정을 사랑하는 일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랑을 핑계 삼아, 나는 내 감정을 오래 밀쳐두고 있었다.


누군가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건 진짜 사랑이 아니다.

오히려 건강한 분리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엄마의 딸’이라는 역할 이전에,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엄마의 눈물이 더 이상 내 삶의 방향이 되지 않도록,

내 감정에도 이름을 붙이고, 더는 숨기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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