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느끼는 게 두려웠던 사람들

회복은 그렇게 시작된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그것을 안전하게 느끼며 살아온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감정을 꺼내는 일이 곧 위험의 신호였고,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곧 이별을 불러오는 일이었다.


감정을 표현하던 순간에 벌어진 외면, 조롱, 혹은 무관심.

그 기억은 사람을 조용히 굳게 만든다.


이야기를 들으며 눈동자가 자꾸 아래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의 의미보다는 표정의 흐름을 먼저 살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감정보다 분위기를 먼저 읽으며 자란 사람일 확률이 높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껴도 괜찮았던 시절이 없었던 이들.

누군가가 화를 낼까 두려워 먼저 웃고,

누군가가 울까 봐 먼저 침묵하는 사람들.


이들은 종종 스스로를 ‘감정이 무딘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무딘 것이 아니라,

감정을 너무 오랫동안 눌러온 결과일 뿐이다.


위험하지 않은 말투로, 안전한 분위기로,

자기 안의 감정을 천천히 꺼내본 기억이 없다면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곧 자기 붕괴에 가까운 공포로 다가온다.


“그냥 뭐… 괜찮아요.”

“그런 일쯤은, 다 그러고 사니까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사실 누군가 말없이 손을 잡아주기를 기다리는 바람이 있다.

그 바람은 ‘도와달라’는 말조차 낯설게 만들어버린

고요한 절망 속에서 자라난다.


그래서 그들은 차라리 말없이 무너진다.

아무 말도 없이 울지 못하고, 아무 말도 없이 떠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도 변화는 온다.

그것은 거창한 다짐이나 ‘이제는 행복해질 거야’ 같은 외침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작은 연습에서 시작된다.


조금 울컥할 때 울컥했다고 말하는 것.

“속상해요”라는 말을 처음 꺼내보는 것.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누군가가

조용히 “응, 속상했겠다”고 말해주는 것.


그 단순한 경험 하나가

평생 막혀 있던 감정의 통로를 조금씩 넓혀준다.


감정은 느끼는 것만큼이나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경험 속에서 회복된다.


어떤 이는 상담실에서 처음으로 감정을 표현해보고,

어떤 이는 친구와의 늦은 밤 통화에서

“그땐 정말 외로웠어”라는 말을 처음 꺼낸다.


말하는 순간 떨리고 낯설고 부끄럽지만,

그 다음엔 자기도 몰랐던 무게가 스르르 녹아내린다.


감정을 회피했던 사람들이 감정과 다시 연결되는 순간,

삶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같은 풍경인데도 훨씬 부드럽고,

같은 하루인데도 덜 피곤하다.


왜냐하면,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을 모른 척하고 외면하며 살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큰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그래서 조심스러운 감정 연습은

결국 내면의 회복으로 이어지는 문이 된다.


그 문을 여는 데는 거창한 용기보다,

하루에 한 줄, 한 문장,

한 숨의 정직함이면 충분하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감정을 느끼는 건 약함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그걸 느끼고 싶다는 마음 하나면,

이미 회복은 시작되고 있다고.





▸ 이 글은 브런치 연재 시리즈

《내면과 회복의 심리학》 토요일 편입니다.

감정과 회복에 관한 이야기를 매주 천천히 풀어가고 있어요.


▸ 다음 편 예고

《감정을 꺼내는 연습, 조심스럽지만 해보고 있다》

“감정을 말하는 게 부끄럽고 무서웠던 사람,

그 조심스러운 입술의 떨림에서 회복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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